내게 사랑을 준 최초의 이, 부모님 인터뷰
내가 완전히 무능했을 때부터 사랑으로 봐준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날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는 듯 사랑을 준다.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색은 마치 칠흑 같다.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색이 섞여 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아닌 옥주와 석헌을 초대했다.
내게 너무나 당연한 존재를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 존댓말을 더했다. 과거를 걷어내고 그들을 보려니 의식해서 숨을 쉬는 것처럼 어색했다. 석헌은 운동하고 온다며 나갔다가 도무지 오지 않아 먼저 옥주에게 물었다.
“옥주 씨, 사랑의 반대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무관심이죠. 미움도 애증도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하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매사 확신에 넘친다. 태어나 처음 하는 인터뷰 자리에서도 여지없었다.
“당신의 엄마에겐 어떤 사랑을 받았나요?”
“엄마는 무한한 책임감과 믿음을 줬죠.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어주고, 잔소리 들은 기억이 별로 없어요. 물론 할 시간도 없었지만.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내가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어요. 정의롭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하지 마라’가 아니라, ‘하면 되지’, ‘해볼까’, 이렇게."
내가 대뜸 위험해 보이는 나라로 여행을 가든, 전공을 바꾸든, 동거를 하든, 두말없이 그러라고 했던 그녀의 행동양식이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당신의 아빠에게는요?”
“아버지한테 난 너무 막둥이라서 상처받은 기억이 없어. 사랑해 주고 귀염 받았다는 기억밖에 없지. 어릴 땐 왜 엄마만 고생시키고 아버지는 노력을 안 할까? 그런 생각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60대 노인이 뭘 하겠어. 그렇게 인정하게 되었지”
“어릴 땐 그런 아빠가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엄마는 늘 행복하고 감사해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부족함에 대한 얘기는 어떻게 반응할까?
“근데 그걸 나의 엄마가 채워줬잖아. 또 지금의 남편이 채워주고.”
도무지 빈틈이 없다.
“우리 집에는 엄마가 돈을 벌어와야 했으니까, 살림하는 엄마란 없었지. 그래야지만 가정이 이뤄지는데, 그게 불만이면 어쩔 거냐고. 대안이 없잖아. 수긍하고 인정하고 환경을 이해하면 상처로 남지 않아”
그녀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랑은 받아온 기간보다 기억의 깊이로 설명될 것이다. 사랑을 오래 기억하는 이라면 타인에게 건넬 사랑이 많을 것이다.
“어릴 때 내가 힘들었던 건, 내가 말이 너무 많은 거였어. 말을 좀 줄이고 내일부터 조신하고 싶다고 매일 친구한테 말했어.”
그녀를 조용하게 만드는 건 그녀 남편의 농담이라는 걸 알까. 자신은 일을 해야 한다며 인터뷰를 종료시켰다.
자유의지를 중요시하는 그들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다.
다음날, 석헌 씨를 만났다.
“석헌 씨는 사랑의 반대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미움? 아니 미움은 30퍼센트 정도밖에 안되고, 더 포괄적인 건 무관심이네요.”
이렇게 같은 답을 제출하다니.
“아내가 있죠?”
“네 많이 없어요. 자식은 둘인데 아내는 하나뿐이에요.”
그는 틈만 나면 싱거운 농담을 던진다.
“아내는 어떤 사람이죠?"
“아주 훌륭한 사람이죠. 하루종일 얘기해도 화제가 넘쳐나는 분위기 메이커예요.”
어릴 때부터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었다던 옥주 씨의 고민은, 석헌 씨에겐 망설임 없는 장점으로 변형된다.
“당신의 아빠에게 받은 사랑은 어떤 형태라고 생각해요?
“먹어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근면 성실을 가르쳐줬지요. 일상에서 스스로 솔선수범하시고, 스스로 하라는 게 강했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하면 반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잖아요.”
그들은 같은 것을 유난히도 싫어했구나. 당신이 맘 내킬 때 하는 인터뷰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같은 사람 사이의 친밀감은 농도가 더 짙다.
“아버지가 내색은 잘 안 하지만.. 그 시절엔 애들이 장에 가면 뭐 사달라고 떼쓰니까 장에 못 따라가게 하셨는데, 어느 날 한 번은 당신이 돈이 좀 넉넉했던가, 그 당시로선 상당히 힘들 텐데 물 하나 없는 소불고기를 사준 적이 있어요. 음식이 귀하니까 물을 많이 넣고 고기를 조금 넣는 전골식이 많았는데...”
석헌 씨가 표현하는 사랑은 음식의 모양이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한참을 음식으로 설명했다. 젖을 물려 키운 것, 옥수수떡, 나물무침. 먹고 입는 게 부족한 시절엔 최선이자 최고였던 사랑.
그제야 해마다 내게 기어이 보낸 묵직한 택배 상자가 떠올랐다. 당신은 내게 꾸준히도 사랑을 보내주었구나.
“비가 오니까 또 어머니 생각이 나네요.”
아이는 부모를 세상에서 떠나보낼 때 어른이 된다. 그리고 나의 아빠는 얼마 전 어른이 되었다.
“최근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마음이 어떠세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쉽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는 큰 명제 하에서는 크게 애달프기보다, 또 다른 편안한 세상에서 지내는 것도 큰 복이지 않나..”
“엄마한테 받은 상처나 아쉬움은 없나요?"
“긴 가정사 안에서 없다고는 할 수 없죠. 마지막에는 치매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고요.”
“상처가 되셨겠어요.”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이미 제정신이 아니셨던 것 같아.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투석 몇 번 하시고는, ‘이제 오래 못 산다. 무대 위, 이승에서의 역할은 끝났다’고 자각하시고는 연명치료를 더 하지 않기로 결정하셨지. 그게 마지막에 아버지 스스로 나에게 보여준 모습..
집에 오시고 20일째 되던 날, 당신 스스로 문을 건너지도 못하셔서, 내가 뒤에서 허그를 하고 문지방을 넘는 순간, 힘이 쭉 빠지고 고개가 축 늘어지셨어. 마지막 가실 때 아버지 방에 당신이 좋아하던 불을 뜨뜻하게 때 드리고 보내드렸지... 그때 당신 아내는 '그래 아프고 하디.. 어예 그래 가시노.. 짚불처럼 가시노..' 했지. 짚이 불에 타면 그렇게 퍼뜩 사그라들잖나. 인생이 그렇더라."
그는 어느새 그 순간에 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 품에서 가셨네요.”
“그렇죠. 임종을 보고.. 그 또한 내 복이지.”
시종일관 장난을 건네던 그는 몇 초간 말을 떼지 않았다. 곧 눈물이 스며 나왔다. 나는 그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황사가 부네.."
방 안에는 당신과 나의 숨소리 밖에 없었다. 장난으로 감싼 그의 젖은 슬픔은 아주 오래 잊히지 않으리라 직감했다. 그게 어떤 슬픔일지 영원히 알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의 마음을 넓은 바다에 비유하곤 했다. 그는 속으로 삼킨 눈물로 마음속에 큰 바다를 만든 걸까? 상처도, 싫어한 점도 곧잘 말하는 그 얼굴에는 울분이 보이지 않는다. 짙은 주름이 그 웃음을 더 선명히 만들 뿐.
나의 부모는 의도도 악의도 없는 자연 같은 운명을 직면했다. 운명의 땅을 피하려고 하면 디딜 곳이 없다.
운명이 삶의 방향을 바꾸더라도 통제할 순 없다. 그들의 잠재된 결핍과 상처를 자신의 삶에 들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함께 보낸 치유와 성장의 시간 덕에, 그들이 받은 상처를 난 받은 적이 없다.
그렇게 내게 자연과 같은 사랑을 주었다.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