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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Nov 28. 2024

작은 소동 큰 사랑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던 시간에

현관 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꿈인가 했다.

곧이어 ‘세대 현관에서 호출 신호가 옵니다.’라는 기계음도 들렸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방에서 거실로 나서는데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싹 마른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며 한마디 하려 하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언니!”, “이모!”

둘째 동생과 조카가 동시에 소리 질렀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시간에 동생과 조카 그리고 자다 나온 나까지. 셋 모두 눈과 입을 벌린 채 코를 벌렁거리며 바라봤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며칠 전 일요일.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겨울이 와버렸다. 난 종일 옷장 정리에 이불 빨래까지 했다.

유리창을 때리는 바람 소리에 몸이 흔들려 온 집안을 보일러로 데웠다. 11월에 맞이한 이른 겨울이 몸과 마음을 스산하게 했지만 나에겐 출렁이는 뱃살이 있으니깐. 괜찮을 거다. 다독거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드나든 사람도 없는데 먼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한숨 섞어 가며 창문틀까지 닦았다. 목욕탕에서 나온 듯 개운한 마음으로 식탁에 앉았다. 해 질 녘 하늘을 지그시 바라봤다. 창문턱을 넘어 피로한 기운이 춤을 추며 내게 밀려오는 게 보였다. 저녁까지 먹고 나니 따뜻한 공기와 나른함이 손을 잡고 나를 더 흔들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무거운 머리가 좌우 앞뒤로 움직였다. 리모컨으로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며 화면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똬리를 틀고 자리 잡은 잠은 내 등짝과 눈을 더 두드렸다. 이젠 누워야 한다고 소리 지르며.


직장 생활을 할 땐 일요일 저녁 10시만 되면 월요일 걱정에 잠 자려 애를 썼다. 퇴직한 후엔 밤을 새워도 괜찮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굳이 자는 시간을 걱정하지 않고 잠이 오면 잠들었다. 그러다 보니 12시를 넘기는 때도 있었다. 그랬던 내게 한파가 닥친 일요일엔 9시쯤 잠이 달려든 거다. 난 손을 저어가며 안방을 향해 뛰려는 눈과 다리를 붙잡고 씨름을 했다. 장례식장에서도 이겨보지 못했던 잠에게 끝까지 버텨봤지만 질질 끌려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난 스마트워치가 생기면서부터 스마트폰은 무음으로 설정했다. 잠들기 전 둘 다 충전을 시작했다. 이게 문제였다. 생각보다 추워진 날씨에 엄마를 걱정할 딸이 있다는 걸 깜박했다. 딸은 직접 만든 저녁 반찬을 자랑할 겸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스마트워치 덕분에 문자 확인을 잘하던 엄마가 소식이 없으니 전화를 했다. 과 사위는 돌아가면서 3시간 가까이 연락을 했다.

깊은 잠에 빠진 난 스마트워치 진동음 전혀 듣지 못했다.

딸과 사위는 독거노인에게 닥친 불행한 일 중 하나인 60대 뇌졸중이 떠올랐을 거다.

외할머니도 혼자 계시다가 쓰러진 후 한 달 만에 돌아가셨으니 딸은 더 무서웠을 거다.

사위는 나에게 계속 전화하면서 다른 손엔 자동차 열쇠를 집어 들었을 테고.


모터가 돌아가듯 덜덜거리는 목소리로 둘째 이모에게 전화했을 딸.

언니 걱정에 찬 바람과 어둠 속을 아들 손을 꽉 잡은 채 달려온 동생.     

우린 목소리 가다듬고 서로 흔들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바라봤다.

깊게 내뱉는 한숨이 걱정을 날리는 숨소리가 되었다.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해일처럼 밀려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대학 입학으로 집을 떠난 딸에게 전화했다. 가끔 전화 연결이 안 될 때면 방송 속 장면들과 딸이 겹치면서 두려웠다. 그런 시간이 1시간 넘어가면 호흡이 가빠졌다.

난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수전증 환자처럼 떨리는 손으로 자동차 열쇠를 챙기곤 했다.

이젠 그 대상이 딸에서 나로 바뀌었다.

직장으로 서로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무섬증. 그때부터 연락될 때까지 피 말리는 숨쉬기 힘든 고통. 눈 구르듯이 점점 커져만 가는 무섭고 두려운 생각. 제발 끝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처참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던 순간들이었다. 


딸과 사위가 행여 홈 카메라를 설치하자 할까 봐 앞으론 무음으로 잠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 밤. 그들의 월요일이 걱정되었지만, 난 큰 사랑에 푹 빠져 깊이 잠들었다.

포근한 양털 같은 꿈 속에서 하늘에 계신 가족들을 만나 더 깊은 잠이 된 일요일 밤이었다.


** 그 후 이웃인 젊은 친구랑 딸이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 20년이나 어린 친구가 있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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