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초여름.
기후변화, 특히 원자력 발전소 대처에 관한 일부 환경 단체와 지각 있는 시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 끔찍한 환경 재앙이 일어났다. 동해 쪽 강도 7도 이상, 서해 쪽 강도 9도 이상의 지진으로 경남 고리와 전남 영광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된 것이다.
“난리가 났다.”
“원전이 파괴되었다!”
TV에서 뉴스로 나오자마자 해당 주민들뿐만 아니라 그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필사의 탈출을 시작했다. 이미 사고 현장 주위는 시꺼먼 낙진으로 엉망이 되었고 불기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고 현장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먼 곳으로 도피하였고 이 과정에서 차량이 얽히는 바람에 사고로 일부가 죽는 등 그야말로 일대는 아비규환이었다.
“계엄이 선포되었다.”
정부에서도 이 사태를 엄중히 보고 급히 조치한다고 했으나, 한 곳이 아니라 두 곳에서 사고가 일어났으므로 적절한 통제를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군과 경찰을 동원해 탈출하는 시민들을 위해 교통을 통제하는 정도였다. 그런 후 그들이 선택한 것은 충청도를 기점으로 한 고립화 전략이었다. 즉 서울과 수도권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치 한국전쟁 때처럼 지도상에 금을 긋는 거였다. 고리와 영광 그리고 남부권 시민들은 이런 정부의 허약한 조치에 억장이 무너지면서 강한 비판을 쏟아내었다.
“이런 망할 놈들! 서울과 수도권 시민만 국민이가? 우리는 어데 꾸어온 보릿자루란 말이가!”
평소 서민, 사회적 약자, 노동자보다 기업 등 기득권 편에 서서 정책을 펴는 정부에 못마땅한 사람들의 말이었다. 특히,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던 사람들은 이보다 더 심했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탈원전 정책을 재개하더니 이런 사태가 온 게 아니야?”
“3년 전 이태원 참사도 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난리고?”
“하여튼 무능, 후안무치한 정부 같으니라고!”
그날 지리산 청학동에서 부산에 강연 차, 내려온 백일도는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차를 몰았다. 하필이면 그가 강연한 제목이 ‘원전의 위험과 우리의 대응 전략’이었다. 6년 전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벌써 지리산으로 들어간 그였기에 그는 탄식이 나왔다. 운전대를 잡으면서 그가 걱정한 건 다름 아닌 그가 촌장으로 있는 지리산 마을 주민과 아들, 율도의 안위였다. 녀석은 이 소식을 까마득하게 모른 채, 산과 들로 뛰어다닐 거라고 예상했다. 백일도는 지리산에 남아 있는 친구 한기백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소식 들었지?”
“그래, 예상한 대로야. 위태위태하더니 결국, 이 정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아 일이 터지고 마네. 지금 어딘데?”
“마을로 가고 있어. 참, 율도는 어디 있지?”
“아침에 사냥 간다고 그러던데. 내가 챙겨볼게.”
“좋아, 그리고 주민들더러 전부 그때 파놓은 동굴로 들어가라고 해. 머지않아 낙진이 그곳까지 들이닥칠 거야.”
백일도는 아들과 주민들 걱정에 시속 150km까지 밟았다.
지구의 평균온도는 오르고 있었다. 국제사회가 지구 온도를 측정하기 시작한 1880년부터 100년 사이 지구 온도는 10년마다 평균 0.07℃씩 상승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구 온도 상승 속도는 빨라졌고, 1980년대 이후 100년간 지구 온도는 10년마다 평균 0.18℃씩 올랐다.
최근 들어 지구 온도 상승 속도는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얼마 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10년간 지구 평균온도는 1.0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IPCC는 보고서에서 ‘이번 세기 중반까지 지금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203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지구 평균온도는 1.5℃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지구 평균온도가 오르면 자연재해는 더욱 심화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온도가 1.5℃ 상승하면 극한기온 발생빈도는 8.6배, 폭염 발생빈도는 2.4배, 강수량은 1.5배 증가하며 태풍의 강도도 10%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올해 전 세계는 역대급 폭염과 가뭄, 잦은 폭우와 슈퍼 폭풍, 홍수 등 인류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극단적 기상이변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1986년에 발생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흑연로, 라고 불리는 구형 원자로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작 실수가 거듭되어 핵반응이 폭주해 폭발했기 때문에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재산 피해도 어마어마하였다. 이때부터 원자력의 위험성과 파괴력을 직접 경험하였지만, 사람들은 에너지 효율성만을 계산하다 보니 이를 애써 무시하였다.
이어 1999년 일본의 도카이무라 JCO 임계 사고가 있었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가 있었다. 지진으로 자동긴급정지장치가 작동해 모든 원전이 정지되었지만, 그 뒤 쓰나미가 몰려왔고 냉각 기능이 마비되면서 멜트다운이 되었다. 일본 정부는 이 사고의 수준을 레벨 7로 발표하였는데, 이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동급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던 2019년경, 환경 쪽 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던 백일도는 이게 위험 신호임을 감지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인 한기백에게 넌지시 말했다.
“지리산으로 들어감세. 아무래도 낌새가 좋지 않아. 그곳은 그런대로 우리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지리산? 어디쯤?”
“청학동에 가면 도인촌이 있어. 예전부터 아는 분들이 있으니 우릴 받아줄 거야.”
한기백은 예상했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어린 율도를 데리고 갈 건가?”
그때 율도의 나이, 여섯 살이었고 백일도는 아내와 이혼한 상태였다.
“물론이지. 제 어미도 떠난 마당에 내가 돌보는 게 맞지.”
한기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라!,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그제야 이 땅의 지각 있는 자들은 탈원전을 외쳤고, 이후,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정부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탈원전 및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 2022년 당선된 새 대통령과 정부는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5년간 지속했던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난하면서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결정했다.
“환경을 파괴하는 졸속한 정책을 당장 폐기하라! 국민의 명령이다!”
이에 많은 국민은 원전에 관한 결정은 정치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선택한 생존방식임을 깨닫고 항의했으나, 그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하였다.
그즈음 이상 기온으로 세계적으로 빙모가 녹고 해수면이 수백 미터 상승하며 도시와 나라는 아틀란티스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역시 봄부터 시작한 석 달간의 폭우와 장마로 국토 대부분 지반이 붕괴하나 싶더니, 6월 초순에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져 버렸다.
그건 강력한 지진으로 인한 두 곳의 원전 파괴였다.
이에 따라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모든 건물은 파괴되면서 다리가 무너지고 철도가 휘며 도로에 균열이 생기면서 아수라장이 되었다. 부가적으로 토양 액화와 사회 기반 시설 붕괴, 동해와 남해 그리고 서해엔 간헐적인 쓰나미가 밀려와 공공설비가 마비되면서 사람들은 난생처음 아비규환을 경험했다.
지구상에서 지진, 쓰나미, 원전의 ‘3중 리스크’를 안고 있는 장소는 미국 서해안과 일본 열도 두 곳이었는데, 여기에 대한민국이 포함된 것이다. 하긴 원전은 5중, 7중의 벽을 쌓아 안전성을 담보하더라도 결국 쓰나미 등 자연재해와 인간의 과실이 있는 한,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리산으로 돌아온 백일도와 그곳에 남아 있던 한기백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지옥이 따로 없어.”
“이건 자연재해가 아니라 명백한 인재야. 그토록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원전이었건만, 그들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교훈을 애써 무시했어.”
“이제 어떡하지?”
“동굴 안에서 잠잠히 사태를 지켜봐야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도인촌 옆 마을 언덕 쪽에 동굴을 파놓은 건 백일도의 아이디어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주민들은 백일도의 이런 황당한 조치를 무시했으나, 결국 일이 터지자 그들은 누구보다 그의 비상한 식견에 탄복했다.
동굴 안에는 한 달 치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과 물이 있었다. 그리고 입구와 출구 쪽을 틔워 공기의 순환이 자연스럽게 통하도록 하였다. 그곳에서 백일도와 한기백을 비롯한 주민들은 원전사고 후 폭풍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사고가 난 부산, 울산 그리고 경남과 호남 일대에 농업, 목축업, 어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사는 곳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잃었고, 많은 공장은 도산했다. 도심의 백화점, 슈퍼마켓뿐만 아니라, 철도, 전력, 가스, 통신 등 지역 서비스가 불가능해져,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지리산으로 가자!”
부산과 경남 심지어 광주와 전남 지역 사람들은 모두 지리산으로 향했다. 이제 남부 지방은 한군데를 제외하곤 사람들이 거의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였는데, 그 한곳이 바로 지리산 일대이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리산 중에서도 천왕봉 중심으로 둥그렇게 자리 잡은 중심부만 그렇다는 말이었다.
나머지 읍면 소재지는 인근 도시처럼 모조리 파괴되었다. 그렇다고 엄밀하게 말하면 지리산 중심부가 충분히 살만한 곳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고리와 영광의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되면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지리산 중심부 둘레에 방사성을 띤 반구형 막이 생겼다.
“저게 뭐야?”
지리산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중에 가림막이 생겼네. 어쩌면 다행일 줄 몰라. 방사능 낙진이 못 들어 오는 거잖아.”
그러자 한 명이 냉소적으로 비웃었다.
“이 사람아! 낙진만 안 들어오나? 앞으로 선선한 바람도 안 들어올 거고, 태양도 희미하게 비출거다 아이가! 그라먼 우리 농사는 어찌 짓노?”
“그러네. 이것 큰일이야.”
무엇보다 큰일인 것은 지리산 사람들은 지리산 땅을 벗어날 수도, 들어올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전력망의 붕괴가 전기 네트워크를 덮으면서 인터넷과 클라우드는 바람 속의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떤 주민이 소리쳤다.
“저기 봐. 천왕봉 위쪽 가림막엔 구멍이 있어. 그리로는 바람이 들어온다는 말이야.”
“그러네, 정말 다행이다. 우리 빨리 올라가자.”
이상 현상을 감지한 지리산 사람들은 식수와 농경지를 찾아 천왕봉 위쪽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곤 곳곳에 자급자족 정착촌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더는 화석연료를 찾을 수 없어 태양과 풍력에서 얻은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기로 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반구형 막 때문에 태양열 흡수가 더뎠고, 바람엔 방사성이 묻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정착촌이 점진적으로 성장하면서 자급자족과 잉여물 거래가 가능해진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주요 자원인 식수, 농경지, 소금, 밀가루 그리고 인력들을 둘러싸고 정착촌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문명사회가 모두 파괴된 탓에 지리산 사람들은 그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지리산 밖 사람들은 연락할 방법이 없어 그들이 몰살했는지, 살아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방사성을 띤 반구형 막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얇아졌다. 하지만 그동안 더욱 심화한 이상 기온, 특히 시도 때도 없는 폭우와 장마로 지리산 중심부와 주변부엔 지반이 약화하였다.
그뿐만 아니었다. 이제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계절이 아닌 천왕봉을 중심으로 북쪽은 미미한 여름과 극한의 겨울만 존재하였다. 게다가 미미한 여름에도 가끔 날이 추워지면서 때때로 눈이 내렸다.
“왜 이리 추워?”
“지금이 여름 아냐? 근데 왜 눈이 내리는 거냐?”
마을 사람 중 나이가 많은 원주민은 살면서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는 듯이 추위에 벌벌 떨었다.
“땔 나무도 없는데 걱정이다.”
“땔감이 문제냐? 추위 때문에 농사가 안되어 굶어 죽게 생겼구먼.”
북쪽과 비교하여 남서쪽은 극단적으로 여름과 겨울만 존재하였다. 그나마 동쪽 지방은 희미하게나마 4계절이 유지되었지만, 겨울은 남서쪽이나 동쪽 모두 혹독하게 추웠다.
“이러다 우리 얼어 죽는 거 아이가?”
“땔감도 못 떼게 하니 죽을 맛이다.”
율도가 사는 동쪽 평화촌 사람들은 특히나 한기백 소장이 화석연료를 못 쓰게 하여 고통이 더 심했다. 오직 희망은 한 소장이 연 발전기에 성공하여 풍력으로 에너지를 얻는 것이었다.
정착촌 사람들 또한 10년간 그 환경에 맞추어 변하였다.
북쪽 사람들은 ‘베르그만 법칙’에 따라 극지동물처럼 따뜻한 지방에 사는 비슷한 사람보다 신체가 크고, 표면 부위(귀, 손가락, 발가락 등)는 매우 작았다. 추운 환경에 둘러싸여 있어 이러한 거대한 몸통 크기는 내부에 다량의 체열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내부엔 부동 화학물질이 생겼고, 두껍고 따뜻한 모피로 생활하였다. 한 마디로 그들은 지리산 정착촌 사람 중에서 거인이었다.
남쪽 사람들 역시 잦은 폭우와 장마 그리고 폭염으로 인해 감염병에 취약해지면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진화하였다. 그들은 신화(神話) 속의 ‘헤므라츠로디투스’처럼 자웅 동체형 인간으로 변모해갔다. 물론, 번식과 생식용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닥치더라도 여성과 남성의 본성을 잘 이용하여 생존을 잘할 수 있는 인간형으로 진화한 것이다. 또한, 서쪽 정착촌 사람들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 프리온 등으로 좀비처럼 된 자들이 살고 있어, 지리산 사람들의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그들과 비교하여 동부 쪽 평화마을은 그나마 정상이었고 또 다른 동쪽 부촌 사람들은 난리가 나기 전 별장을 이용하던 부자들 그리고 막대한 부를 들고 전원생활을 즐기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경작할 수 있는 땅과 식수 등 자원이 여유로웠고, 미리 환경 재앙에 대비한 사람들이 있어 생존에 가장 유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