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 봐. 막 중간중간에 하늘이 보이지 않아?”
“그렇네, 막이 물컹해지고 있어.”
“야이, 자슥아! 물컹이 뭐꼬, 막이 얇아지고 있는거제.”
평화마을 사람들은 농사짓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며 신기한 듯 제각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행이다. 평생 맑은 하늘을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러게. 오래간만에 시린 하늘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야. 안 그래?”
농부들의 말엔 진심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남도의 영광 원자력 발전소 그리고 동녘의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한 후, 만들어진 방사성을 띤 반구형 막이 10년째가 되자, 군데군데 막이 엷어지고 있었다. 어떤 곳은 맑은 하늘이 보일 만큼 구멍이 나기도 했다.
“오케이! 됐어, 됐단 말이다.”
율도에게 촌장 자리를 넘긴 후, ‘지리산 대체에너지 연구소’ 한기백 소장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난리가 난 후 그동안 진행하던 ‘연 발전기’ 연구가 거의 성공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동안 높은 고도에 띄운 연은 반구형 막 때문에 바람이 세지 않아 몇 번이나 발전으로 연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군대 생활에도 국방부 시계가 돌아가듯이 이 역시 시간문제였다. 그가 보기엔 이런 식으로 반구형 막이 엷어지고 구멍이 난다면 앞으로 몇 년 되지 않아 막은 사라질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풍차원리를 이용하여 높은 고도에서 빙빙 돌며 풍력 에너지를 내는 ‘연 발전기’는 앞으로 지리산 사람들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탄소 중립 에너지원이 될 것을 확신하였다. 그는 일단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농사짓기에 이은 식량 확보 그리고 추위가 해결되어, 더는 지리산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 죽이고 약탈하는 삶을 멈출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높은 대기 중의 공기 속에 있는 물을 응결시키는 조롱박 모양의 대형 물 수집기를 얼마만큼 정교하게 만들지에 관한 고민만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한 소장은 마지막 남은 자신의 열정을 오롯이 여기에 투입하기로 작정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건, 사실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한 소장은 율도를 자신의 연구실로 불렀다.
‘소장님이 갑자기 왜 날 부르는 걸까?’
율도는 세수하다 말고 급히 그의 연구실로 달려갔다. 율도가 오자 한 소장은 마을 사람들이 연구에 힘내라는 의미로 빚어 준 증류 소주를 꺼내 놓았다.
“이거, 귀한 소주 아닙니까?”
“그래, 율도야 우리 오래간만에 술 한잔하자.”
먹고 살기도 힘든 이 시점에서 귀한 소주를 내어놓은 것은 중요한 말이 있다는 의미였다. 소주 한 잔을 건네받은 율도 역시 이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캬아, 역시 술은 소주야. 맛이 기가 막혀.’
율도가 짜릿하게 넘어가는 소주 한잔에 넋이 나가 있을 때 한 소장이 무심코 말을 뱉었다.
“다 되었다.”
“네? 뭐가요?”
“허허, 이놈이! 소주 맛에 아직 정신이 알딸딸한 모양이구나. 그것 말이야. 그것을 이제 완성했다고.”
한 소장은 웃으면서 율도에게 또 한잔을 따랐다.
“그것이라면, 소장님이 계속 연구하시던 혹 연 발전기?”
“그래, 곧 완성될 것 같다.”
“와! 소장님! 축하드려요.”
율도가 반색하자 한 소장의 눈에선 이상하리만큼 눈물이 나왔다.
“아니, 소장님, 우시는 거예요? 에이, 이리 좋은 날, 왜 우십니까?”
“그러게, 내가 잠시 주책을 부렸구나. 자, 한잔 마시고 나도 한 잔 주렴. 오늘은 우리 둘이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보자꾸나.”
“그럽시다요.”
율도는 한 소장이 언젠가 자신의 연구를 마칠 거로 생각했지만, 이리 빨리 결과물을 낼 줄 몰랐다.
‘역시 한 소장님이야.’
“자, 한 잔 받으세요.”
“그러자.”
그렇게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기쁨의 술잔을 나눌 때였다. 어느 순간 한 소장이 술잔을 내려두고 율도에게 말했다.
“연 발전기가 완성되면 네가 할 일이 있어.”
“제가요?”
“그래, 중요한 말이니 깊이 새기렴.”
그제야 율도도 술잔을 내려두고 한 소장 앞에 정색하며 허리를 바로 세웠다.
“너도 알다시피, 연 발전 에너지는 우리 지리산 전체 마을 사람들의 생사와 깊은 관계가 있단다.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연 발전기가 앞으로 최대 에너지원이 된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한 소장은 율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연 발전 에너지로 식량 확보와 추위를 이길 수 있으니 추후 지리산 사람들을 한데로 모아, 반목을 끝내고 서로 합심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니?”
한 소장의 말에 율도는 잠시 눈을 감았다.
“네, 그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언이기도 하지요.”
“그래, 그렇지. 그러니 네가 이 목적을 이루어야겠다. 단, 무력적인 방법을 지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이웃 정착촌 사람들을 설득하면 좋겠다. 어때?”
그 말에 율도는 한 소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때 난리가 난 후, 평화마을은 일방적으로 북쪽과 남서부 쪽 마을 사람들에게 습격받아 식량과 가축 심지어 여자들을 잃은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다고 평화마을 사람들이 보복을 감행하여 그들과 제대로 맞서 싸운 적도 없었는데, 한 소장이 일방적으로 대화와 타협으로 목적을 이루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소장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대화와 타협이라뇨? 소장님은 연구실에 계셔서 그렇지, 우리 평화마을이 그쪽 사람들에게 얼마나 당했는지 정녕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율도는 한 소장에게 그동안 북쪽과 남서부 쪽 정착촌 사람들의 폭력과 약탈 그리고 방화 등으로 평화마을이 얼마나 당했는지를 소상하게 설명했다. 율도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 한 소장의 기세도 한풀 꺾이는 듯 보였다.
“네 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무력으로 전 마을을 통일하는 데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거야.”
한 소장의 말에 율도는 지지 않았다.
“폭력이 아니고 전쟁입니다. 그 무지막지한 놈들과 제대로 싸우지 않고서는 지리산 마을을 통합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지금 그걸 위해서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율도의 강단 있는 소견을 들은 한 소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친구 백일도의 성격을 율도가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생각하고 그의 고집을 꺾는 대신 타협점을 제시하였다. 그건 옛 몽골의 칭기즈칸이 자기 부족을 통일한 것 같이, 연 발전기 완성 전에 지리산을 통일하라는 고심 끝에 내어놓은 의견이었다.
율도는 그의 말에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연 발전기 완성 전에 무력으로 통일하란 말씀이죠?”
“그래, 그 정도로 용인하마.”
율도는 한 소장에게 한 번 더 허락받는 차원에서 ‘무력’이란 단어를 꺼냈고, 한 소장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참! 그리고 율도야.”
“네, 무슨 또 하실 말씀이라도.”
한 소장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을 이었다.
“수년 내에 지리산을 둘러싼 반구형 막이 사라질 거야.”
“네, 그러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만,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인지요.”
율도는 머릿속에 오로지 북부와 남서부 쪽 정착촌 통일을 생각하느라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물론이지. 막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는 말이잖니. 농사도 그렇고 사람 사는 게 예전 난리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단 말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바깥세상과 소통할 준비를 하라는 거야.”
율도는 한 소장이 말한 바깥세상이란 게 당최 어떤 의미인 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하긴, 유년기 때를 제외하곤 오롯이 지리산 안에서만 살던 그에게 바깥세상이란 그저 지구인들이 생각하는 외계인들이 살법한 그런 세상으로 인식되었다.
“어떻게 준비해야겠습니까?”
“난리 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물어봐야지. 난리 전에 그 사람들이 살았던 방식 말이야.”
하긴, 율도로서도 이곳에 들어온 후 아버지에게 늘 듣던 말이었다.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등의 대도시 이야기며, 도시에는 자동차가 넘쳐났고 하늘엔 비행기 그리고 바다엔 배가 떠다녔다는 피상적인 이야기였지만, 유년 시절 기억만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미리 준비할게요.”
그런데도 율도는 순순히 한 소장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런데 한 소장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몇 번을 쭈뼛거리더니 율도에게 넌지시 물었다.
“얼마 전에 네가 데려온 꽃비라는 아가씨는 어떤 사람이야?”
“소장님도 알고 계셨어요?”
“그럼, 알고 있지. 네가 부촌 마을로 가서 그자들과 싸운 것도 알고 있단다.”
율도는 꽃비를 떠올리자 가슴이 먹먹했다.
“그냥, 착하고 불쌍한 여자예요. 그 앤 …,”
그때 한 소장이 율도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애 때문에 부촌 마을에서 습격해온다는 말이 있더구나. 그래서 말인데, 그냥 그 여자를 부촌 마을로 보내는 게 어떻겠니?”
한 소장의 말에 율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리산 마을에 살면서 한 소장에게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그건 안 됩니다. 제가 꼭 그 여자를 지킬 겁니다. 그리고 부촌 마을에서 습격해온다 해도 저는 자신 있습니다. 반드시 물리칠 겁니다.”
“부촌 마을 사람들과 척지면 안 돼. 우리의 적은 북부와 남서쪽 사람들이야.”
“아뇨. 그건 소장님이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할 적은 부촌 마을입니다. 특히, 그 마을의 촌장 마충기는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율도는 더는 소장과 말하기 싫어 인사도 없이 그 방을 나와버렸다.
다음 날, 율도는 규찰대(군대)를 소집했다. 그들에게 어제 한 소장과 합의한 내용을 말하기 전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이게 한 것인데, 그건 꽃비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상, 부촌과의 결전을 피할 수 없다는 절박한 문제였다.
‘우, 우…….’
하지만 말을 꺼내자마자, 좌중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촌장님! 사사로운 감정으로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키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율도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의견이 또 있습니까?”
“아뇨, 그냥 그 여자를 돌려주는 게 순리입니다. 부촌 마을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비록 그 수장과 구성원들이 전직 조폭이라 하더라도 우리 마을과는 현재까지 동맹 관계입니다. 괜한 일로 그들과 틀어지면 우리만 손해입니다.”
대체로 이런 의견들이었다. 율도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여기서 밀리면 강력한 리더십이 훼손될 뿐 아니라 사랑하는 꽃비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중간쯤 앉아있던 어떤 청년이 손을 들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딱 벌어진 어깨가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전 생각이 다릅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우리 마을 사람들과 다른 자들입니다. 그자들은 막대한 부와 인원으로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 여자분을 불법적으로 감금한 극악무도한 자들입니다. 그러니 그 여자를 우리가 보호해야 합니다. 전쟁은 불가항력입니다.”
청년은 율도가 하고 싶은 말을 조리 있게 해주었다. 그의 말에 힘을 입은 율도는 좌중을 돌아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자들은 그날, 협상에 임하려는 저를 죽이려 했습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 여자분을 만났는데, 여자의 말이 저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부촌 마을의 촌장, 마충기는 난리 전에 여자의 어머니가 빚을 갚지 못하자, 강제로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와 온갖 고통에 이르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놈은 아까 저 청년의 말대로 원주민을 착취하고 또 그 여자와 내년에 강제결혼을 시도한다고 했습니다.”
율도의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좌중의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뭐? 육십에 가까운 돼지 같은 놈이 저 여리고 아리따운 처녀와 강제결혼? 에이 미친놈 아냐?”
“원주민을 괴롭힌다고? 하긴 내가 언뜻 보니 마을 주변 밭에 일하던 그 사람들의 옷차림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어. 이건 촌장 말이 맞는 것 같아.”
이에 율도는 다시 한번 좌중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평화마을이 가져야 할 가치가 뭡니까?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닌, 보편적인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
“따라서 저는 여자분을 마충기란 악당에게 돌려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아니, 우리가 모두 저 여자분을 지켜줘야 한단 말입니다!”
“옳, 옳소!”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좌중에서 동조의 말이 들리자, 율도는 규찰대 대원들에게 세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최초에 부촌과 연합전선을 펼치려 했던 건 자신의 무능함 때문이었고 둘째, 그날 협상을 통해 부촌의 마충기는 원주민을 노예로 삼은 천하의 악당인 점을 다시 깨달았으며 셋째, 따라서 북쪽과 남서쪽 못지않게 부촌 또한 궁극적으로 우리가 접수해야 할 마을이라는 것을 똑똑히 했다. 그러면서 지리산의 맹주이자, 미래세대의 주역은 우리 평화마을이 유일한 것임을 표명했다. 그러자 아까만 해도 심드렁한 표정을 짓던 규찰대 일부 불만자들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싸우자, 나아가자, 접수하자.”
“까짓것! 현직이 아니라, 전직 조폭들이라며? 그렇다면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지 않겠어?”
“촌장님 만세! 우리가 저 여자분을 우리 힘으로 지키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꽃비는 율도와 그의 친구들에게 감사함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고마워요, 율도 씨.”
율도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 칼을 높이 들었다.
“다 함께 싸웁시다!”
이때부터 율도와 규찰대는 부촌, 마충기의 반격을 대비하여 활과 화살을 더 만들고 해자를 더 깊게 파며, 방어벽을 쌓았다. 꽃비 또한, 자신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여 훈련하는 규찰대원들의 식사 준비를 거들었고, 화살이 떨어질 때를 대비하여 투석할 수 있는 돌들을 날랐다.
“꽃비 씨, 그만 해요. 이러다 몸살 나겠네.”
“아뇨,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이니 상관 마세요.”
율도는 그렇게 말하는 꽃비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난생처음으로 마음에 들어온 이성이라 그런지, 율도는 이번 전투는 의로운 싸움이라고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이로써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이젠 과연 적들이 언제 쳐들어오는지가 관건이었다. 율도는 밤에도 마을 입구에 불침번을 세웠다가, 나아가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규찰대원을 매복시켰다. 이와는 반대로 가을 수확을 앞둔 대다수의 마을 주민은 평화롭게 생업에 종사하였고, 아낙들은 옷을 짓던지, 공예품을 만드는 등 소박한 일상을 이어갔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적이 온다!”
마을 입구에 척후병이 소리쳤다.
과연 마충기가 쳐들어왔다. 언덕에서 쏘아 올린 불화살을 본 율도는 규찰대에 전투 준비를 지시했다.
“전투 준비!”
잠시 뒤 마충기 일당이 마을 입구에 나타났는데, 병력이 율도의 규찰대보다 배가 넘었다.
‘우, 우~’
“저 새끼들, 전 병력을 데리고 왔네.”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마음 약한 한 대원이 움츠러들자, 옆에 있던 건장한 청년이 크게 꾸짖었다.
“싸움은 숫자로 하는 게 아니지.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 중요한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가 이길 수 있어. 까짓, 현직이 아닌 전직 조폭들이잖아.”
그때 마충기는 어디서 구했는지 백마를 타고 있었다.
“저 새끼는 지금이 중세 시대인 줄 아나? 백마라니. 웃기는 짬뽕일세.”
규찰대 대원 중 한 명이 놀리자, 나머지 대원들은 크게 웃었다. 웃음은 전염이 되는지 이로써 한결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그는 말에서 내리더니 대치하던 율도의 규찰대 앞에서 확성기로 요구조건을 말했다.
“백율도! 요구조건을 말하겠다.”
“말하라!”
“우리는 딴 것 없다. 그 여자, 꽃비만 보내면 우린 그냥 돌아가겠다.”
율도는 그의 요구에 냉랭하게 대답했다.
“안 보내겠다면?”
“뭐? 이런 어린놈이! 만약 내 요구를 거절한다면 오늘 너와 너의 마을은 쑥대밭이 될 것이야.”
율도가 예상한 대로 꽃비만 보내주면 없던 것으로 하고 돌아가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율도는 그의 말에 대한 응답으로 활 사위를 당겼다.
‘퍽!’
히히힝!
화살은 정확하게 백마를 향했고 잠시 후, 거대한 말이 쓰러졌다. 그 충격으로 마충기가 땅으로 떨어졌다.
“이런! 쌍놈의 새끼가!”
화가 치민 마충기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전 대원, 돌격! 돌격 앞으로!”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개떼처럼 돌진하였다.
와아!
“죽여라! 모조지 쓸어버려!”
평화마을도 만만찮았다.
“궁수들은 활에 불을 붙여라. 자, 발사!”
이에 마을 방어선에선 곧바로 여러 대의 불화살을 날렸다. 돌진하던 놈들의 목과 배 그리고 다리에 명중하자, 비명과 함께 마을 입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놈들도 만만찮았다.
“총으로 제압하라. 모두 발사!”
탕, 탕, 탕!
모두는 아니지만 몇몇 놈들이 뿜어내는 사제 총의 위력이 대단하여 평화마을 규찰대 일부가 쓰러졌다. 총탄과 화살, 그 어느 쪽이 훨씬 위협적인가는 금방 답이 나왔다. 율도는 규찰대에 화살 쏘기를 중단하고, 모두 방어선 밑으로 엎드리라고 명령했다.
“모두 엎드려라. 그리고 준비하라.”
그건 이유가 있는 명령이었다. 활이 더는 날아오지 않자, 마충기는 자신들이 승기를 잡은 것으로 판단하고 마침내 해자가 있는 다리를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율도가 명령했다.
“올려라!”
마침내 방어선 밑에서 대기하던 규찰대원들이 다리를 올렸다. 그러자 뒤뚱거리던 놈들은 당황하여 모두 밑으로 빠지고 말았는데, 해자엔 미리 풀어 놓은 독사들이 우글거렸다.
“으악! 독사다!”
“이런 미친놈들! 독사를 풀어두었어. 억, 아악!”
“사람, 아니 조폭 살려!”
해자에 빠진 놈들의 비명이 지천으로 들리자, 뒤를 따르던 놈들이 주춤했다.
“이때다. 모조리 도륙하라. 돌격!”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차 다리를 내려놓은 율도와 규찰대는 죽창과 칼, 도끼 등을 앞세우고 단숨에 다리를 건넜다.
백병전이었다. 이미 율도에게 강한 훈련을 받은 규찰대원들은 한때 조폭이었던 놈들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쪽 수는 많았지만, 규찰대원이 내리치는 도끼와 칼 그리고 죽창에 조폭들은 하나씩 널브러졌다.
퍽, 퍽, 악, 아악!
그러자 기겁한 마충기는 “후퇴”,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남은 놈들과 자신의 마을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쫓아라! 한 놈도 살아서 못 가게 쫓아라!”
율도는 이 기회에 그때 마음먹은 대로 부촌의 노예가 된 원주민들을 해방하려고 마음먹었다. 율도가 손을 들자 기세등등한 규찰대원이 곧바로 그들을 쫓아가서 박살을 내버렸고, 마충기를 사로잡았다.
“이런! 천하의 마충기가 이 어린놈에게 당하다니.”
마충기는 분을 못 이겨 몸을 떨었다.
“모조리 부촌 마을로 압송하라.”
율도와 부하들은 그들을 포박하여 그들의 마을로 데려갔다.
‘우, 우 ~.’
부촌 마을 광장, 연단에 율도와 꽃비가 함께 서 있었다. 생포 당한 마충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들 밑에 꿇어앉아 있었다. 마당에는 부촌 마을에서 마충기와 상관없이 조용히 귀촌 생활을 즐기던 주민들과 그들에게 노예 취급받던 원주민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율도는 오늘 그들에게 오늘 전투상황을 설명했고 이제부터 이 마을을 해방한다고 선포했다.
“부촌 마을 만세! 백율도 만세!”
“백율도를 우리 마을 지도자로!”
“동의합니다. 환영합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연방 “백율도!”를 외쳤다. 그들은 진심으로 율도를 새 지도자로 옹립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못해 수락한 율도는 마지막으로 마충기의 처분을 그들에게 맡겼다.
“여러분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율도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민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흉포한 마충기에 당할 만큼 당했다. 놈을 죽음으로!”
“죽이자!”
“옳소!”
부촌 마을 사람들은 누구 하나 반대 없이 그에게 돌을 던졌고, 마충기는 그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