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전쟁의 서막

by 이인규

지리산 서쪽의 일명, 좀비 마을 촌장, 허구도는 최근 이상하게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집성촌이던 이 마을은 외지 사람들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이상하게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돌았고, 여전히 발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유가 뭐지? 촌장인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허구도는 무속과 유교적인 사상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이런 사태는 조선 왕조 때 비가 오지 않은 것도 왕의 잘못이라고 여겼던 그런 것과 일맥상통하였다. 그러니까 그의 마을에 첫 발병이 시작된 건 난리가 난 뒤 3년 후쯤이었다. 농부였던 그는 그날도 논에 나가 물을 주고 돌아왔는데, 오후쯤에 사촌 동생이 탁주나 한잔하자며 집에 찾아왔다.

“앗! 동생, 왜 그래?”

크크크, 크렁, 크크크.

그런데 동생의 몰골이 전보다 이상했다. 탁주를 쥐던 손은 수시로 떨렸고 거기에다 탁주를 마시면 입에서 침과 함께 줄줄 흘러내렸다. 괴이하게 여긴 허구도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추궁했지만, 급기야 동생은 눈동자가 풀리고 말도 불안정하게 되면서 바닥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여기까지야 한여름이니 동생이 더위를 먹었다고 치부했다.

동생이 돌아가고 허구도는 아내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별일 아니겠지요?”

그의 아내 역시 이 기이한 일에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으려구. 그냥 더위를 먹은 거야. 그래, 우리도 가끔 더위 먹어 정신이 이상할 때가 있잖아.”

그런데 며칠 후, 그가 없는 사이에 동생이 찾아와 자신의 손주를 물어뜯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 허구도는 옆 마을에 마실 나가고 없었다. 소식을 들은 그가 깜짝 놀라 집으로 돌아오니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중 그의 아내가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어찌 된 거요?”

허구도가 건장하게 생긴 마을 사람에게 물었다.

“사촌 동생분이 촌장님 손주를 갑자기 물어뜯었습니다.”

“왜? 이유도 없이?”

“네, 그렇습니다.”

허구도는 지난 사건을 떠올렸다. 그제야 그의 아내가 겨우 말을 꺼냈다.

“마침 지나가던 마을 분들이 말려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우리 손주가 죽었을 수 있었구먼유.”

그때 그의 사촌 동생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묶여 있었는데, 언뜻 보아도 눈이 돌아갔고 입에는 피와 침을 흘리고 있었으며 온몸이 뒤틀려 있었다.

크크크, 카아아악, 크렁.

마침내 이 일로 허구도는 한의사를 불렀지만, 명쾌한 이유를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허구도는 이웃 마을에 은퇴하고 귀촌한 의사를 데려와 동생을 한 번 더 진료하게 하였다. 그때 의사의 말을 듣고 허구도는 너무 놀라 기겁했다. 동생이 사람 살을 먹는, 되살아난 시체가 인간 뇌를 간식으로 먹는다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아니, 선생님, 난생처음 듣는 말입니다. 좀비 바이러스라뇨? 도대체 이런 병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의사 역시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도시에서 의학 지식과 수많은 경험을 했어도 이런 환자는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 환자를 이리 진단한 것은 도시에 있을 때 해외 의학 학회에 자주 참가하여 유사한 사례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이 전염병 발병 이유를 허구도가 알기 쉽게 설명했다.

“나는 발병 원인을 대체로 세 가지로 들겠습니다. 첫째, 난리가 난 뒤 아무리 반구형 막이 있어도 오염된 방사성을 지나치게 쬐어 동생의 뇌가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둘째, 몇 년간 계속된 이상 기온(폭염과 폭우, 장마) 등으로 습한 상태가 지속하여 마을 사람 대부분이 박테리아에 노출되었을 가능성 그리고 세 번째 특이 기생충 발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답니다.”

‘뭐야? 도대체 무슨 말이야?’

허구도는 마른침을 삼켰다.

“치료제는 있습니까? 아니, 약이라도?”

“글쎄요. 도시면 모를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의학 지식으로선 불가능합니다. 약도 없고요.”

“그러면 어떡하란 말입니까?”

“일단 죽이거나 그게 안 된다면 격리하십시오. 그리고 상태를 지켜봅시다. 내가 한번 치료제를 개발해보도록 하죠.”

허구도는 차마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의사의 말을 인정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동생의 발병을 계기로 얼마 되지 않아 마을 사람 절반이 감염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허구도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을을 둘로 나눠서 격리하는 것과 감염된 사람들을 위해 산에 올라가서 혹시나 도움이 될까, 어성초 등의 약초를 캐서 달여 먹이는 것뿐이었다.

‘옳지, 이거다!’

그런데 이게 과연 조금은 약효가 있는 모양이었다. 감염된 사람들이 더는 마을 사람들이자, 자신의 인척들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대신 그때부터 그 사람들은 떼를 지어 다른 정착촌에 다니기 시작했다.

허구도는 이게 도의상 어긋난다고 생각했지만, 별 방법이 없었다. 그들을 제지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마을 주민 반 이상이 감염되어 농사지을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감염자도 감염자 무리에 끼어들어 다른 정착촌을 습격하여 닥치는 대로 그들의 식량과 가축을 도둑질하곤 했다. 그래서 결국, 허구도는 지금은 비상 상황이어서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을 속였다. 감염자들이 알고 보면 한길 건너 자신의 인척이니 의사 말대로 모조리 죽일 순 없는 까닭이었다.

‘아아,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한단 말인가.’

그런데 날이 갈수록 감염 방법이 달라지는 게 문제였다. 초기에 방사능에 오염된 박테리아가 숙주 세포에 들어가는 단백질을 분비하고 숙주 유전자발현을 조절하는 식이었다. 즉, 정상적인 세포 반응을 재프로그램할 수 있고, 유산소성 박테리아 집단에서 시작해 무산소성 집단에 이르는 박테리아 이동이 있었다. 그래서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 박테리아 마이크로바이옴이 침투해 인간 숙주에게 기생하다, 숙주가 죽으면 좀비로 변형시킨다는 것은 의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이 원인이 아닌,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마을 사람들이 감염되기 시작하였다. 그건 바로 특이 기생충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쥐에게 발견되는 ‘톡소포자충 감염’은 쥐가 고양이를 덜 무서워해서 잡아먹힐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처럼, 감염자가 배출한 똥에서 살던 기생충이 어떤 방식으로든 비감염자에게 옮겨 발병하는 경우였다.

또한, 의사는 언제부터인지 핵산 없이 단백질만으로 이루어진 전염병 병균체, 프리온을 발견했는데, 이 역시도 비감염자를 즉시 감염하게 하는 위협적인 병원체였다. 결국, 일부 주민을 제외한 모든 마을 주민이 이 새로운 병원체에 감염되면서 허구도는 자신이 정말 듣기 싫어하는 ‘좀비 마을’이 완성되어 버렸다. 그러니 이젠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나서서 이웃 정착촌을 습격해야만 했다. 할 수 없이 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허구도는 비감염자들을 회의에 소집하였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리가 살자고 다른 정착촌 사람들의 식량을 약탈하는 건 마음에 좀 걸립니다.”

그런데 다른 이가 나섰다.

“아닙니다. 농사지을 사람이 태부족입니다. 그러니 식량이 거의 다 떨어졌어요. 우리 집만 하더라도 나와 막내아들만 걸리지 않았지, 마누라와 장인, 장모 그리고 두 아들이 이미 감염되었습니다. 축사에 감금하였지만, 밤새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허구도가 물었다.

“그들도 우리 같은 식량을 먹나? 이를테면 쌀, 보리 같은 것 말임세.”

“참, 촌장님도. 그들은 그런 건 먹지 않죠. 대신, 축사에 있는 돼지, 닭, 소들의 대가리와 내장을 다 먹어 치운단 말입니다. 이제 남은 가축이 없어요. 그들을 감시하느라 외려 저와 아들이 농사지을 힘도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어떡하잔 말인가?”

“방법이 없습니다. 의사 말대로 치료제가 나오기까진, 다른 정착촌을 습격하여 식량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허구도는 이 문제를 표결로 부쳤다. 놀랍게도 회의 참석자 대부분은 이웃 정착촌 습격을 지지하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 허구도가 비장한 각오로 나섰다.

“굿을 해볼까? 명색이 그래도 내가 무당이잖아.”

“굿요?”

“그래, 약도 없는 현실에서 혹시나 우리 ‘장군 신’이 병자들을 치료해 줄지 어찌 알겠나?”

“자신 있습니까?”

“해봐야지. 뭐.”

마을 사람들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허구도는 굿을 준비하였다. 그는 이 이상한 좀비 병에 걸린 감염자 중 자기 사촌 동생부터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대략 10시경에 진행될 굿은 허구도의 지시에 따라 새벽 일찍부터 일사불란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장소는 허구도의 집 마당이었다. 그는 제일 먼저 마을 사람들에게 현관 옆에 경당을 짓게 하고, 자신은 가마니를 깔아놓은 마당에서 점사를 통하여 점괘를 치고 있었다.

경당에는 위목(位目)이라고 해서 신장의 명칭을 창호지에 정명 주사로 써서 가득하게 부쳐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당 제일 앞에 차려놓은 제상에는 시루, 공양미, 쌀, 삼색실과 포, 옥수(玉水) 등이 있었다. 모두 마을에 없는 돈을 모아 준비한 것들이었다. 그새 마당에는 이웃 마을 사람들도 와서 허구도의 굿 장면을 기다렸다.

정각 10시가 되자, 허구도는 아내에게 그의 사촌 동생을 마당으로 나오게 했다. 미리 각오한 일이지만 허구도는 심장이 뛸 만큼 두렵고 혼란스러웠는데, 당사자인 사촌 동생은 어떨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 마을은 자신이 책임지는 마을이었다. 아내의 손에 이끌려 할 수 없이 마당으로 나오고 있는 사촌 동생은 벌써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이상한 울음을 내었다.

크크크, 크렁, 크렁,

허구도가 큰 소리로 독경무의 ‘앉은굿’의 시작을 알렸다.

“내 먼저 동생의 몸속에 있는 귀신을 잡으려 하니 신장대의 대잡이와 사귀대의 대장은 나를 도우라!”

허구도가 위엄있게 소리를 지르자 그의 제자쯤 되는 마을 사람이 언제 준비했는지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와 왼새끼를 꼬아서 그 끝에 홍색 헝겊을 단 막대기를 옆에 세워두었다. 허구도가 양반다리를 하고 먼저 신장대에 귀신을 퇴치할 수 있는 선신(善神)의 강림을 기원하는 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장에 매달아 놓은 북과 바닥에 있던 징이 마치 구름을 달리는 것 같이 격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태징과 북소리가 커질수록 허구도의 경 읽는 소리는 빨라졌고 그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신장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허구도가 경을 멈추고 신장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신장이 하강한 것이옵니까?”

그가 묻자 신장대가 더욱 흔들렸다. 이에 허구도는 선신이 자신에게 대답한 줄 알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하노니, 지금 당장 동생의 몸속에 있는 귀신을 잡아 오너라.”

태징과 북소리는 더욱 요란해지면서 허구도는 온 힘을 다해 옥추경, 옥갑경, 박살경, 철망경 중 몇 군데 있는 경을 읽으면서 귀신을 빨리 잡아 오기를 재촉했다. 옆에 앉아 있던 조수들도 허구도를 도와 경을 읽고 주문을 외었다.

“썩 물러가라!”

허구도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해도 멍석 위에 있던 사촌 동생의 몸에 별 변화가 없자, 허구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가 마당 뒤에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처녀 무속인에게 눈짓하자, 그녀들이 사촌 동생 앞에 나타나 능숙하게 쌀을 담은 되를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대었다 떼었다, 하며 소리를 했다.

“강남에서 나온 되빡 각시. 영금하고 기엄한 되빡 각시. 이 한 되 곡식 다 먹고, 머리 아프고 삭신 아픈 것 다 걷어 썩 물러나시오. 하나 쎄-둘 쎄- 넷 쎄- 다섯 쎄-여섯 쎄- 일곱 쎄-, 세 일곱 스물 하나 멕여도 안 물러나면 나무칼로 목을 베어 대강(大江)에다 띄울 것이니 어서 먹고 썩 물러가거라.”

처녀 무속인 한 명이 ‘귀신 쫓는 소리’를 연이어 할 때, 옆에 있던 또 다른 무속인이 소금을 불에 태워 탁, 탁, 탁,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도 조금 전과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은 사촌 동생에게 허구도가 나서서 복숭아나무 가지로 그의 몸을 세차게 치며 “썩, 물러가라!”, 하고 고함을 쳤다.

그때였다. 별 변화가 없던 사촌 동생이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크크크크크크억!

허구도는 이때다 싶어, 복숭아나무 가지로 재차 그를 세차게 때렸다.

“썩 물러가라!”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아까만 해도 몸을 벌벌 떨며 쓰러졌던 사촌 동생이 갑자기 위로 튀어 올랐다.

크아아아아앙!

그러면서 옆에 있던 처녀 무속인을 물기 시작한 것이다.

“악! 사람 살려요.”

마을 사람들은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사촌 동생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저놈을 잡아, 어서!”

허구도가 지시하자, 건장한 비감염자 몇이 달려들어 겨우 사촌 동생을 제압했다.

그날 밤, 마을 회의가 다시 열렸다.

“촌장님, 이건 굿으로도 안 된다니까요.”

“이제 우린 무슨 수로 먹고삽니까?”

이에 할 수 없이 허구도는 다시 이 문제를 표결로 부쳤다. 예상한 대로 회의 참석자 대부분은 이웃 정착촌 습격을 지지하였다.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래, 이건 도무지 내 힘으론 어려워.’

그렇게 회의가 끝날 즈음, 허구도는 평화마을의 율도 소식을 접했다. 이미 율도가 그곳 정착촌의 촌장이 되었고, 습격을 대비해서 마을 입구에 해자를 팠으며 동쪽 부촌 마을과 연합하여 공동 대응한다는 것을 첩자에게 들은 것이다. 그러자 허구도는 올가을 수확기에 어떻게 하면 순조롭게 평화마을의 식량과 가축을 갖고 올지에 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허구도는 율도와 부촌, 마충기의 협상이 결렬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한편, 북쪽 정착촌, 거인 마을의 사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게 뭐야? 어제만 해도 더워서 부채질했는데, 벌써 겨울?”

“우리 마을엔 당최, 가을이 있긴 한 거야?”

마을 사람들은 동네 입구에서 모닥불을 피워가며 수군거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여름이 지나갔을 뿐인데, 여긴 가을이 아닌 겨울이 오고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곧바로 들이닥치는 찬바람과 폭설 등 10년째 비슷한 이상 기온이 오자, 촌장, 차돌박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지난겨울에 입던 모피 등을 꺼내 입고 사냥에 나섰다.

“모두 두껍게 입고 사냥이나 가세!”

차돌박은 이 시기가 사냥하기에 가장 좋은 때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여름에서 겨울로 급격하게 바뀔 때 동물들은 미처 대비하지 못하여 우왕좌왕했고, 그것 중에는 이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이 되지 않아 동사하는 것들도 있었다.

오늘은 지리산 북쪽에 가장 흔한 사냥감인 노루 사냥이었다. 사람들은 천왕봉 북쪽 산기슭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헉, 헉! 오늘따라 노루 놈이 날래네.”

“어이 거기! 잔소리 말고 얼른 이쪽으로 놈을 모세!”

차돌박의 주도면밀한 지도하에 마을 사람들은 절벽으로 노루를 몰았다. 여름 한 시절 야생 풀을 잔뜩 먹어서인지 제법 통통한 놈이었다.

“저기다!”

“아따, 그놈 참, 통통하니 맛나겄네.”

차돌박은 난리가 난 뒤, 이런 사정에 대비해서 만든 튼튼한 활에 사위를 당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노루가 쓰러졌고, 마을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정통으로 맞았다.”

“촌장님 활 실력은 정말 죽여줘.”

이제 마을 사람들이 죽은 노루만 가져오면 오래간만에 고기를 맛볼 수 있었다. 그래서 차돌박은 느긋한 마음으로 활 통을 챙기고 있었는데, 그때 갑작스러운 이변이 일어났다.

“뭐야? 웬 놈들이야?”

“혹시 우리 마을 청년들 아닐까?”

“아니야, 그 게으른 놈들이 별도로 사냥에 나설 리 없어.”

죽은 노루에 먼저 도착한 자들은 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 셋이 달려들어 놈의 몸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먹는 게 아닌가. 가까이서 보니 그들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이었다.

“헉! 웬 냄비들?”

놀란 차돌박은 마을 사람들을 제치고 재빨리 달려가 그녀들을 제지했다.

“당신들 뭐야? 이건 내가 화살로 잡은 거라고!”

하지만 그녀들의 답변은 묘했다.

“지리산 산속에서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지, 누구 화살인지 뭐가 중요해?”

“뭐라?”

“근데 왜 반말이람? 고추 달린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 년들이!”

차돌박이 어이없는 몸짓을 하자, 그녀들은 되려 자신들이 먼저 노루를 발견하고 쫓고 있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아, 아니! 당신들!”

가만히 보니 여자들의 생김새가 남달랐다. 그녀들은 평소 북쪽 마을에서 보던 여자들이 아니었다. 쫙 벌어진 가슴과 탄탄한 어깨, 근육질로 단련된 허벅지, 무엇보다 입이 걸걸한 그녀들은 누가 봐도 남성들이었다.

“왜? 우리 같은 여자들을 처음 봐?”

‘음…….’

그제야 차돌박은 그녀들이 남쪽 마을에 사는 자웅동체 인간들인 걸 눈치채었다. 이 자들은 이전에도 여름에서 겨울로 바뀔 때 이런 식으로 사냥감을 가로챈 적이 있었다.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있나.’

차돌박과 마을 사람들은 이건 말로 해결할 수 없는 일로 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연장을 들이댔고, 차돌박도 옆구리에 찬 칼을 빼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여자들이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죽은 노루 심장을 칼로 도려내어 벌써 피를 빨아먹는 자도 있었다.

“킁킁, 이거 정말 맛 나는 노루일세.”

“나도 좀 줘봐. 한 며칠 굶었더니 피 냄새가 마치 꿀 향기 같아.”

“동작 그만!”

이에 차돌박은 마을의 촌장답게 고함을 질렀다.

“뭐? 뭔데?”

그런데도 여자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노루만 포기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여자들을 둘러싼 북쪽 마을 사람들도 한마디씩 했다.

“그래, 그래 우리도 당신들같이 연약한 여자들과 싸움하는 건 싫어.”

“암, 우리는 노루만 있으면 돼.”

앞서 말한 대로 마을 사람들은 상대가 여자여서 웬만하면 봐줄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크아앙. 칵, 칵!

여자 중 가장 날렵한 이가 거부의 뜻으로 이빨을 드러내며 흉악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머지도 이내 전투 대세로 접어들었다.

“기가 차네!”

“이놈의 계집애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차돌박과 마을 사람들은 평균 신장 2m가 넘고 체구가 거대했다. 그래서 그들을 남자도 아닌, 여자의 몸으로 자기들을 어떻게 상대할는지 기가 찼다.

“그래, 어쩔 건데 너희들이?”

그래서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장난치듯 작대기로 여자의 몸을 찔렀는데, 여기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크크크아아아악, 카아아악!

상남자 같은 여자들의 얼굴이 마치 악귀같이 바뀌면서 어깨와 팔 그리고 등에 울퉁불퉁한 근육이 생겨났다. 거기에다 대치하던 그들과 달리 여자들의 손이 점점 커지면서 한 대 맞으면 골로 갈 만큼 강인하게 변했다. 별명 그대로 자웅동체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제 여자들은 생존 투쟁에 맞서 강인한 남자로 바뀌었다는 말이었다.

‘헉!’

“뭐야? 뭐야? 저것들이 인간이야, 악귀야?”

“저 근육 좀 봐!”

“손은 어떻고. 한 대 맞으면 진짜 뻗겠다.”

그때 차돌박이 외쳤다.

“전투 준비!”

결국, 절벽 위에서 먹이를 두고 두 정착촌 사람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제일 먼저 기습한 자는 북쪽 마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포악스러운 얼굴과 육중한 몸으로 여자 중 한 명을 덮쳤는데, 그만 여자의 투박한 손에 맞아 절명하고 말았다.

억!

“이런 씨벌!”

그러자 차돌박은 더는 참을 수 없어 모두 연장을 사용하라고 지시하였고 그 자신도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북쪽 마을 사람들은 쟁기와 곡괭이를 휘둘렀고 여자들은 치고 빠지는 방법으로 그들을 방어하였는데 모두 맨손이었다. 그렇게 죽고 살기로 싸운 게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거기에다 강한 바람과 폭설이 내려 모두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촌장님! 너무 춥습니다. 이제 모두 지쳤어요.”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소리치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보아하니 여자들도 숨을 헐떡이는 거로 봐서 아무래도 이 사태를 길게 끌고 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차돌박은, 이런 식이라면 모두 공멸할 게 뻔해서 죽은 노루를 두 동강이 내서 반쪽씩 가져가는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어때? 만족하는가?”

그러자 상 남자 같은 여자들도 동의하였고, 이 사태는 북쪽 마을 사람 한 명이 죽는 것으로 일단락이 났다. 그렇게 결론 내고 마을로 내려온 차돌박은, 반쪽짜리 노루를 보며 명령했다.

“일단 이 노루부터 불에 굽게. 그리고 마을 사람들 모두 불러. 함께 나눠 먹어야지.”

하지만 일부에서 불평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노루 반 마리로 배를 채운단 말인가.”

“그래도 이 사람아! 이기 어디고? 고기야 얼마 안 된다고 하지만, 내장을 솥에 넣고 끓이면 모두에게 돌아갈걸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차돌박은 이 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오늘 겪었듯이 남서쪽 사람들 그러니까, 자웅동체 마을과 좀비 마을은 그들이 대적하기엔 솔직히 버거웠다. 대신 동쪽의 평화마을을 비롯한 부촌 마을을 습격하여 겨우내 먹을 식량을 확보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자넨 어떻게 생각하는가?”

차돌박은 그의 심복에게 물었다.

“별수 있습니까? 약육강식, 이게 우리 마을의 정답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이어 자신의 의견을 꺼냈다.

“우선, 마을 근처 흩어져 사는 원주민들의 집부터 텁시다.”

“원주민들의 집?”

“네, 그놈들 집과 창고엔 우리가 먹을 게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무리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긴 북쪽 지방이라 해도 원주민들은 조상 때부터 습득한 농사법이 있었다. 그들은 짧은 여름 동안에 잘 자랄 수 있는 농작물을 심어 수확하였고, 긴 겨울에는 얼기설기 엮은 하우스를 이용하여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채소를 얻었다.

“그건 그렇게 하세. 그보다,”

“무슨?”

“동쪽 평화마을과 부촌 마을의 동태를 한번 살피고 오게.”

“동쪽 마을요?”

“그래.”

“습격하시게요?”

“물론이지.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야.”

차돌박은 심복을 시켜 평화마을과 부촌 마을의 동태를 살피게 하고, 다음 날부터 마을 사람들을 두 개의 조로 나누었다. 한 조는 원주민 마을을 습격하게 하고 나머지 한 조는 사냥을 이어갔다. 북쪽 지방에서도 유난히 큰 몸짓과 좋은 무기는 이웃 마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가기에 충분했고, 동물들조차 겁을 먹었다. 그들은 빼앗아 온 식량을 자신들의 은신처인 동굴 안에 비축하고 동물들의 가죽을 벗겨 모피로 만들었다.

“촌장님 만세!”

“이 정도면 올겨울 반은 먹고살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차돌박은 이제 조금만 지나면 비옥한 동쪽, 평화마을엔 추수가 끝난 뒤 수확물이 있는 평화마을과 언제나 풍요로운 부촌 마을 습격을 감행한다 생각하니,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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