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더 사랑받는 아빠

부부는 원수일까? 은인일까?

by 살리미

명절이면, 숙제 같다. 아빠의 유골이 고이 모셔있다는, 용미리납골당에 다녀와야, 죽은 아빠에 대한 아내의 의리를 지키고 딸은 자식 된 도리을 다한다는 엄마의 확고한 강요다. 딸된 나에게는 늘 이해할 수 없는 도통 피곤한 무거운 불만이다.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없음이, 길고 어지러운 한 문장만 봐도 딱이다. 엄청 막히고 밀리고 꾸역꾸역 그곳에 도착하면, 고작 한다는 죽은 아빠에 대한 예의는, 5*****번호가 박힌, 찜질방 개인신발장 같은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차가운 문짝 앞에 빛바랜 사진에 “ 아빠안녕! 하고, 멋쩍은 인사를 하고, 가족들끼리 눈 맞추면, 일정마무리다.


우리 아빠는 키가 컸다. 182미터, 그 긴 아빠가 저 작은 사물함안에 긴 다리로 기어들어가 쪼그라 계신다는 상상이 되면, 나는 더 그곳이 숨 막힌다. 굳이, 명절이라고 남들이 다 한다고 그곳에 가서, 이런 피곤한 육체적 낭비와 시간적 허비를 해야, 나는 효를 행하고, 엄마는 효부가 된단 말인가?


살아생전, 아빠 엄마는 지긋지긋하게 싸워댄 부부다. 엄마는 항상 늘 아빠를 부족하게 여기고, 힘들어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아내였고, 그런 아내 앞에 아빠는 항상 주눅 들어있거나, 술만 마시면, 징글징글 엄마를 힘들게 했다. 그런데 그런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린 나도 알겠는데, 둘만 서로 모르는 것 같았다. 아빠는 부단히 엄마를 기쁘게 하려 애를 썼다. 불쑥 장미꽃을 사 와서, 주웠다고 했다. 술 먹는 날, 기분이라도 얼큰 좋을 때면 “ 정미야! 무서운 정미! 미안하다!” 했다. 아빠는 몸이 약했다.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소고기 뭇국을 유난히 자주 식탁에 올렸고, 보신탕을 본인은 한입도 못 먹으면서, 시시 때때 기가 막히게 끓였다. 아빠의 양복장에는 늘 하얀 와이셔츠가 가지런히 걸려있었고, 아빠 몸보양을 위해서라면 살아있는 오리도 거뜬히 잡아 대령했다. 나는 그래서 아빠랑 엄마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어느 날 밤 홀연히 죽어버렸다. 그리고 엄마는 덩그러니 과부가 되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아빠를 진짜 사랑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것 먹을 때면, “ 이것 네 아빠가 진짜 좋아하던 거다!” 내가 결혼하던 날, 그리고 내동생이 결혼하던 날 “좀 오래 살지? 이런 날 함께면 얼마나 좋니!”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가여워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되었다. 이제야 나도 결혼 20년 차이다 보니 알 것 같다. 치열하게 싸우는 것도 사랑이다. 부부는 원수인 동시에 은인이다.


그래서, 오늘 아빠 납골당 방문은,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딸의 동행이다. 마침, 납골당문이 잠겼다. 오후 5시 도착하고 보니, 4시에 문을 잠근단다. 엄마는 무지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올타꾸나, 좋았다. 공원묘지를 시원한 가을바람 느끼며, 엄마팔짱 끼고 도란도란 산책하며 아빠를 추억한다. 작은 사물함 따위가 아닌, 파란 가을하늘에 안긴 아빠를 상상하는 내 마음이 한결 만족스럽다. 한껏 엄마랑 동생이랑 하늘에 있는 아빠를 향해, 애정표현을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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