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투자하다

나를 사랑하는 법 시작하기

by 살리미

기억도 안 난다. 미용실에서, 펌 시술을 받아본 때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누굴 탓할 일이 아니다. 내가 게을러서 이다. 따지고 보면, 성격이다. 사람에게 빼앗기는 에너지가 피곤하다. 기억이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아빠 엄마의 치열한 부부싸움 공기, 중간에 끼인 참 불편한 역할이었다. 그때 부터였던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상대를 웃게 해 줘야, 내 마음이 안심이 되는 오지랖책임감이 내게 있다. 일반적으로, 한 시간,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 할 펌을 시술받는 시간, 헤어디자이너분과 나와의 온전한 시간이니, 나의 혼자만의 책임감이 부담이다. 그리고 나는 운전에 서툴다. 주차는 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중심상가에 있는 미용실까지 가는 거리가, 걷기도 부담이고, 버스도 번거롭고, 운전은 무섭다. 누군가 들으면, 어처구니없는 내가 내 헤어스타일을 방치한 변명들은 내게는 심각했다.

지난 며칠 간, 거울 속 내 얼굴이 너무 낯설다. 늙었다. 무척이나 늙어버렸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는 않지만, 나에게 너무 게으른 나 자신이 미안해졌다. 더군다나, 얼마 전 나의 외모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남편의 입술에서 “ 미용실도 좀 가고 그래! 그 한마디가 신경 끄려 했는데, 무척이나 거슬린다. 여전히 그에게 어여쁜 여자이고 싶은가 보다. 그리고 또, 외모를 심할 정도,중시하는 아들 세 분의 참견이, 오늘 나를 이곳에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용기를 내어 운전해서 도착했다. 신호등 두 개만 지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긴 동굴처럼 무섭고 두렵게 느꼈던, 주차장은 작은 비탈만 내려오면 되는 거였다. 할렐루야! 마침 아주 넉넉한 빈자리가 있으니, 거뜬히 후진주차 완료했다. 마음이 열린다. 내가 대견스럽다. 지하주차가 어려워, 항상 중심상가에 올 때면 비상깜빡이 틀고, 길가에 불편한 마음으로 숨어 주차하던 쪼그라들던 내 마음이 당당하다 오늘은. 그리고 2층 미용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으로, 행진하듯 올라왔다. 귓가에 터키행진곡이 들린다.


늘 예약을 해놓고 번복되는 내 선택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예약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예상대로 대기시간 30분이란다. 또 흔들린다. 다음에 다시 올까? 막내 하교 저녁밥 챙겨야 하는데? 여러 고민이, 내가 또 나를 위해 내어 주는 시간을 포기해야 할 변명을 만든다. 단호히 뿌리쳤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한마디의 결정이었다. 근데 내 마음이 또 당당해졌다. 미용실 옆에 안경점이 보인다. 수개월 전, 우리 집 강아지 바리 녀석이, 내 안경을 개껌처럼 물어뜯었다. 찰나의 발견이라 서너 곳에 이빨자국뿐이라며, 주야장천 무신경으로 착용했다만, 오늘 마음이 당당해진 나에겐 그 안경도 바꾸고 싶다. 결정은 타이밍이다. 마침 기다려야 할 30분이라는 시간을, 안경점을 다녀오면 선택적 이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눈앞에 펼쳐진 수백 개의 안경테들, 다른 고객이 없어, 너무도 친절한 사장님이, 나에겐 또 급 부담이다. 이분을 웃게 하려는 나의 친절함이 나오기 전 서둘러 테를 골랐다. 고르고 보니, 쓰던 안경과 색만 다를 뿐 똑같은 디자인. 나는 나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다 보면, 나의 서비스정신과, 사장님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책임감으로 나는 또 수만 원 오버해 비싼 안경을 맞출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내내 ” 앞으로 십 년을 써야지! “ 다짐하고 속상할 터이다. 오늘 나는 다르다. ” 안경알은 가장 기본으로 해주세요. 세컨드안경으로 쓸 거라,여러 기능이 필요 없습니다 “. 분명한 선을 그었다고 생각되었는데, 나는 왜 사장님의 안색을 살피며 미안할까? 그런데,사장님은 나의 태도가 당연한 듯 내가 예상했던 금액의 반도 안 되는 할인가로 내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좋은 조건의 안경을 추천했다. 또 할렐루야! 마음이 더 당당해졌다. 드디어 거울 앞에 헤어디자이너분과 일대일 마주했다. 거울 속 나의 게으름이 명백히 보이니, 창피했다. “ 고객님, 지금 머릿결 상태로는 펌시술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당황스러웠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또 당당해졌던 마음이 쪼그라들 참이다. “선생님! 해주세요. 머리카락이 다 타버리면, 밀어버리면 되니까, 나 오늘 꼭 빠마해주세요!”

헤어디자이너분 엄청 당황하신다. 굽히지 않았다. 내가 나를 설명하는 순간이다. 워낙 설득력과 말재간을 타고난지라, 헤어디자이너분은 설득이 되었고, 나는 당당히 샴푸실에 드러누었다. 김남주의 미스티 단발스타일 사진을 보였지만, “ 절대 이렇게 이쁜 것 원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이런 스타일만… 말을 거의 입술 속에 씹어드리는 소극적 설명의 자세였다. 나의 설명과 태도가 안쓰러웠는지, 나의 헤어를 담당하는 디자이너분의 손끝에서 참정성이 느껴진다. 급 고마워, 재미나게 웃겨드리고 싶은데, 오늘은 참는 중이다. 그래서 브런치 글쓰기에 집중모드다.

샴푸를 마치고, 크리닉을 서너 번 하더니, 드디어 매직시술이 시작된다. 부스스 꼬지리였던 머리에 윤기가 보인다. 그닥 외모 따위와 보여지는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숭고한 삶의 태도를 지닌 나는, 철저히 게으른 변명이었다. 내 마음이 아주 당당해지고 있음을 나만 느낄 수 있다. 좋다. 너무 좋다. 이제 나는 은근슬쩍 사진 속 김남주의 시크하고 세련된 나를 소망한다. 진작 알고 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남편도 아이들에게도 당당한 사랑을 흘려보내는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작이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해 줄 준비와 자세를 갖췄다. 오늘 미용실 거울 앞에서 다짐했다. 사랑해! 목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