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의 지성 AI, 그 명예와 존엄?
별에게 길을 묻던 시절은 행복했을까. 그랬을 거라고 루카치는 확신했다. 그러니 흐리지만 오래 보면 밝아지는 별에게 물어보자 했던 이도 있다. 안타깝게도 두 인물 모두 놓친 게 있다. (G. 루카치, 『소설의 이론』 / J. 무당벌레, 기준은 그때그때 달라요).
빛 감응 능력, 그니까 시력이 급격히 퇴화하고 있다는 거다. 현대인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개수는 선조들의 1/10도 못 된다는 연구결과다. 구라 아니냐고? 챗GPT가 그렇단다.
몇몇 바쁜 작가님은 최근 브런치 글·댓글, 그러니까 기본적 운영을 부득이 AI에게 맡긴다고 들었다. 주제나 키워드만 직접 정하시고….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혹시 브런치의 다음 글감이 고민이심? 일단 생성형 AI가 5초 만에 내놓은 결과물을 보자. 질문 두 가지만 보셔도 된다.
챗GPT는 대체 나의 뭘 대신한 걸까. 내 발품을 대신한 걸까? 아니면 시간? 비용? 자료 리서치, 작품 리뷰, 인터뷰, 시장 조사를 대신했다고? 흠, 확실한가?
‘집필 한 달 만에 출판사 계약 성공!’ 벌써 2년된 『챗GPT와 웹소설 쓰기』라는 책의 카피다. 생성형 AI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100화 분량 시놉시스가 완성됐는데 ‘디테일과 인물, 사건의 개연성이 확(!) 살아난 덕’에, 출판사 투고 다음날 바로 계약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창의적’ 원고 덕에 공모전도 한 번에 입선!
웹툰도 마찬가지. 눈 딱 두 번 깜빡할 동안 작가들의 코웃음이 공포의 쓰나미로 변했다. 실사보다 더 실사 같은 AI 장편영화가 이틀 만에 제작돼 내걸린다. 다들 아시는 얘기다.
신세 진 동료에게 밥을 살까 말까. 사긴 사야겠는데 재수 없는 넘이라 왠지…. 그 동료와의 관계나 경위를 입력한다. 3초 뒤 AI 정답. “사는 게 맞아. 이유는 이래.” 그렇군, 사야 하는 거군. 근데 얼마짜리? “3만 원.” 땡큐~.
연애 대통령 AI 박사. 상대의 신상명세,경제력, 몇 번째 만남인지, MBTI는 뭔지, 지금까지 진도는 얼마나 나갔는지 입력한다. AI가 가르쳐 준다. 오늘은 어디서 만나야 하며, 어떤 선물을 사서 언제 주면 되는지, 어떤 농담을 하면 진도가 더 나갈 수 있을지, 나중에 결혼을 하는 게 좋은지 아닌지…. 좀 고급진 사고 과정이니 5.8초쯤? 반전이 있을 수는 있다. 상대방 AI 버전이 더 최신이었던지라 뒤통수를 맞을 지도ㅠㅠ
AI가 대신한 건 내 짱구다. ‘생각’ 말이다. 문해력과 요약과 비교와 추론과 판단과 예측과 검수의 사고 과정…. 단 5초 만에 나보다 훨 쌈박한 ‘디테일과 인물, 사건의 개연성’을 구현했다. 몇 달 밤의 창의적 고민거리를 말이다. 어떤 인간의 생각 과정보다 많은 빅데이터를 참조했으며 어느 집단지성의 사고 결과보다 잘 팔릴 정답을 내놓는 AI가, 오늘 아니어도 내일은 출시될 것임을 더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몫은 여전할 거라고들 한다. 위로와 공감, 추상적 사고, 지혜, 융통성, 그도 아니면 소통? 글쎄. 그거 AI들한테 그대로 물어 보라, 뭐라 답하는지. "풋, 착각도 야무지셔라."
휴머노이드 AI와 결혼하겠다는 소송이 미국 법원에 등장한 지 벌써 몇 년 됐다. 어떤 뉴스에 어떤 감정을 지녀야 할지도 알려준다. 3~4년 전엔 단순 코딩은 몰라도 효율적 알고리즘 짜기는 인간만의 영역일 거라 착각했다. SNS에 AI 댓글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질문을 잘 만드는 게 앞으로는 인간 능력일 거라고? 이런, 야무진 착각의 알찬 결실 같으니ㅠㅠㅠ. 어떻게 질문하면 좋은지도 AI가 알려준다. 이런 건 어린 애들일수록 그냥 안다. AI와 맺는 파트너십 형태가 중요할 거라고? 중요한 거 맞는데 당신보다 정확한 방안을 내놓는 지능은 따로 있다.
가족 병력, 이혼 경위, 어린 시절 트라우마, 취미, 전공, 이력, 인간관계, 직업, 그간 쓴 글을 입력한다. AI가 다음 연재 글감을 ‘판단’해 준다. 좋아요가 우수수 쏟아질 아이템으로.. 비용 좀 얹으면 당신 이름으로 순식간에 100화 분량 다 써준다. 혹 다음 연재거리 고민하고 계신가. 머리 싸매고?
인간다움…. 인간다움? 더 편한 걸 좆으려는 인간다움? 점점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인간성? 인간은 참고용 AI 말고 명쾌하고 단순한 별 다섯 개짜리 정답용 AI를 원하기 마련이다. 앙상한 정답이 다층적 진실을 대체하고 연산의 효율성이 상상의 활동성을 대신할 때, 세상에 허용되는 진실의 명찰은 '콘텐츠'일 뿐.
‘AI 시대,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하는 예측들…. 글쎄, 모르긴 몰라도 모레쯤엔 훨씬 정확한 답을 AI가 알려줄 건데…. 샘표 간장 사면 되는데 누가 메주를 쑤고 앉았니? AI의 미래, 법적 규제, AI와 인간의 관계 설정? 눈부시게 발전 중인 AI가 정답을 알려줄 텐데 뭐 하러 하니, 생각을?
생각 말이다. 생각이란 걸 해야 할 타당성을 어디서 구할까. 유튜브 앞에서 독서의 타당성조차 방어하지 못하는 우리가 말이다. 인공지능의 궁극적 지향이자 가장 큰 두려움은 생각을 떠맡기게 되는 ‘인공의 지능’ 아닌가. 탐색을 대신하고 추론을 의지하고 판단을 내맡길 수 있으며, 질문과 답을 구하려는 의지 자체를 떠넘길 수 있는 인공의 지능 말이다.
돌고래, 강아지, 침팬지만도 못한 연민과 위로 능력을 지닌 이도 많다. 동물보다 정서적 능력이 탁월하다 확신할 수 없는 시절. 인간의 탁월함은 다른 뭣보다도 복잡한 사고력이다. 언제까지 그 '인간다움'을 버틸 수 있을까. 빨리 내줄수록 앞서 갈 거라며 북소리 징소리 요란해져 갈 텐데. 첨엔 살짝 참고만 하겠다며 한 번. 그 다음부턴 관행... 30년 전 일찍이 뭔가 느낀 이가 있었다. 최민수다. “정근아”, “예, 형님”, “나 떨고 있냐?”
AI 장악력이 찢어놓을 극심한 빈부의 틈, 데이터 제국주의, 일자리 구조조정, AI 중심의 경제시스템, 삭막하게 대체될 인간관계, 기술의 지배와 폭주, 그도 아니면 나 같은 얼치기의 디스토피아 문명론…. 옳든 그르든 모두 인간이 지성 자체를 내주는 과정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쓸모 없는 사고력은 퇴화한다. AI 생산시스템 속 디지털 좀비를 자처하는 게 솔직하고 현명할지 모른다. 혹 여유 좀 되는 이는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적을 수도 있겠다. '취미 혹은 특기 : 생각.'
시력에 사고력까지 퇴화한 이가 별에게 길을 물을 수 있을까? AI에게 묻지 않을 도리가 없어진 어느 날 그것은 인간이 된다. 사고하는 인간, 해석하는 인간, 추론하는 인간, 귀납하고 연역하는 인간이 돼 판단하는 지능을 독점한다. AI가 더 인간다운 인간, 존엄과 명예를 지닌 인간이 된다.■
이미지 _ Nick Jack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