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줄만 알았다.
그는 매주 두 번은 골프를 친다고 했다. 지인들이 가진 회원권으로 나간다 해도, 그 비용이 적지 않을 텐데.
팀 사람들과 어색하게 앉아 있을 때였다. 팀장과 그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라운딩 다녀왔어요."
추운 날씨에도? 이 날씨에 어떻게 골프를?
원래도 그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그 순간 관심은 더 깊어졌다.
그는 자주 고가의 디자이너 옷을 입었다. 생로랑 가죽 재킷, 버버리 트렌치코트, 비싼 반지, 시계, 신발들.
그와 결혼을 결심했을 때, 그는 말했다. "모아둔 돈이 별로 없어."
그는 재테크에 관심이 없었다.
주식이나 투자 같은 건 조금씩 하고 있었다지만, 자산을 관리하거나 취득하는 건 해본 적 없다고 했다. 오피스텔을 증여받은 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두 번 이상 올려 받고 오피스텔의 냉장고며 에어컨이며 관리하는 경험을 했던 나는 자산을 가진다는 게, 관리한다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가던 중이었다.
오피스텔을 소유하고 나니, 명품이 예전만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매를 멈춘 건 아니다) 나에게는 작고 반짝이는 것보다, 미국의 우량주와 꾸준히 나오는 배당금이 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와 그의 부모님은 달랐다. 남자 친구의 부모님 역시 자산을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집을 사고는 싶지만 어떤 저런 이유로 시부모님도 집이 없었다. 나는 결혼 전 남편에게 시부모님 집부터 먼저 사 두자고 했다. 그는 그렇게 했다.
내가 결혼할 사람에게 돈이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의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와의 결혼은 나에게 아주 큰 문제였다.
그는 내가 생각하던 부자 집 아들이 아니었다. 자산과 투자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채 욜로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우리의 재정 목표를 월별, 분기별, 연간 단위로 세우고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투자해도 과거처럼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매일같이 그에게 설명했다. 현금이 녹아내리는 속도, 자산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내 집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집을 사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불편해했다. 남편은 내가 집 이야기만 꺼내면 하락론을 주장했다. 나의 의지와 믿음도 확신에 찬 그의 하락론에 가끔 흔들렸다.
돈 이야기를 꺼내면 마치 금기라도 건드린 듯, 듣고 싶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찌푸린 얼굴, 듣기 싫다는 말투. 자상하고 상냥하던 평소와 다르게 무성의하게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실망감이 밀려왔고, 때로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남편의 반응은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성인이 되어 연을 끊을 때까지, 엄마가 내게 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나르시시스트였던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빠를 헐뜯었다. 아빠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교수가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아빠의 성취보다는 그가 부족한 점을 더 자주 말했다.
"너희 아빠는 거지 같은 집에서 태어나서, 거지 같은 취향과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돈 이야기만 하면 저렇게 들은 척도 안하는거 봐. 돈이 있어 봤어야 알지.“
"너희 아빠는 물려줄 것도 없는 집안에서 자라서, 시부모가 나를 무시해도 엄마 편을 들어주지 않았어."
엄마의 그 말들이, 남편의 표정과 겹쳐지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결혼할 때, 엄마는 금반지도, 다이아 반지도 없었어. 외할머니의 반대와 핍박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지. 외할머니는 너희 아빠가 가난하고 못 배운 집안 출신이라며 결혼을 반대했고, 결혼식장에도 들어오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말했어.
결혼 후, 집을 사기 위해 엄마가 가진 돈을 전부 썼지. 아빠는 금융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기에 모든 걸 엄마 혼자 알아봐야 했어. 대출을 알아보라 부탁해도 짜증을 내고, 세금 이야기를 꺼내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 못 사는 집에서 자란 아빠는 자산 관리나 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싫어했고, 무조건 하지 말라고만 했어.
엄마는 한때 주식을 했었는데, 어느 날 배당금 관련 우편물이 집으로 도착했을 때 아빠는 그걸 보고 크게 화를 냈어. 일에 집중해야 할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며 엄마를 몰아세웠지. 결국 엄마는 모든 돈을 뺐고, 그 후에 주식은 두 배로 올랐어.
그 이후 집을 살 때도 아빠는 계약 당일 갑자기 망설였고, 매도인이 가격을 깎아줄지도 모른다고 했어.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지. 주인이 오히려 500만 원을 더 올린 거야.
“그래도 집을 샀으니 됐지, 뭐.” 해맑게 묻는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그 500만 원은 아빠의 우유부단함과 돈에 대한 무딘 감각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엄마는 항상 아빠만 탓했다. 주식을 판 것도, 집 계약을 미룬 것도 모두 엄마가 동의한 일이었으면서, 엄마는 오로지 아빠만을 비난했다. 일이 잘 풀리면 엄마는 늘 자신의 덕이라고 했고, 자신이 없었다면 아빠는 거지같이 살았을 거라며 으스댔다. 배우자에게 말도 안하고 큰 돈으로 주식을 하는건 신뢰에 금이 가게 하는 일이다. 엄마는 늘 모든 면에서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주장했다.
그때부터 내 기억 속엔 돈과 금융에 무지한 아빠의 모습이 남았다. 혹은 엄마가 만들어낸 아빠의 모습.
남편과 집을 사려고 이야기하던 날, 대출과 취득세, 집값 전망, 국가 대출 정책까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남편은 그 모든 이야기를 듣기 싫어했다. 언제나 굳은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돈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나는 눈치를 봤다.
나는 그가 왜 그런지 물었다. 때론 소리치고 울기도 했다.
내 모습이 엄마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처럼 살 수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돈 이야기를 하는 게 왜 그렇게 불편해?"
남편은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돈이 부족해서 집을 못 샀다는 말로 들린다고 했다.
"아니야, 오빠.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잖아. 우리는 기회를 놓치기 싫으니까 앞으로 준비하자는 거잖아."
남편은 알겠다고 했고, 이후로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더 수월해졌다. 그도 자기 내면의 문제를 인정한 것 같았다.
"오빠, 내가 오빠랑 결혼할 때 돈이 없는 건 문제가 아니었어. 하지만 가난한 마음을 가진 건 문제야. 당장 돈이 없더라도, 배우자와 함께 의논하고 배우려는 사람과 사는 건 괜찮아.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배우자와 돈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사람과 사는 건 힘들어.(돈이 관심 안 가져도 될 만큼 많은 건 예외다)"
"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오빠가 비난받는 것처럼 느끼는 건 오빠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야. 그건 내가 도울 수 없어. 우리 평생 돈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 사람은 불편해서 피해버리고, 다른 한 사람은 답답해서 울 수는 없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어. 부탁이야."
그 후, 우리는 조금씩 달라졌다.
남편은 내 이야기에 집중해 주었다. 나는 놓쳤던 기회들보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남편에게 고마움을 자주 표현했다. 남편도 전과 다르게 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집중해서 내 말을 들었다.
남편이 돈 이야기가 마치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인정한 그날 이후,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 목소리가 커지고 빠르게 말하는 건 오빠를 나무라는 게 아니야. 오히려, 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고 관심도 없는 오빠의 태도에 답답해서 그런 거야." 그 이후로 남편은 돈 이야기를 해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내 눈을 바라보며 함께 의견을 나누었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돈이나 재테크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가 커지고 화난 듯 말하던 것이 남편의 반응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걸.
어릴 적, 소리치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무시하던 아빠. 밥을 먹다가도 세금 이야기를 꺼내면 방으로 들어가 버리던 아빠, 그리고 그런 아빠를 보며 저런 남자랑 결혼한 자신이 한심하다고 가슴을 치던 엄마. 그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내 목소리가 커졌고, 눈물이 났다.
엄마처럼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남편과 사이가 멀어질까 봐 무서웠다.
이제 나도 내 내면의 문제를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좀 더 차분하고 조용하게 남편과 재테크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에 남편이 나를 더 이해해 주는 걸 나도 안다.
돈 이야기 할 때는 내가 남편을 좀 더 이해해 보려 한다.
이사 준비로 요즘 글을 쓰기가 많이 어렵지만 틈틈이 써 보겠습니다. 이사는 많이 해봤는데 인테리어는 정말 알면 알 수록하고 싶은 것도 많고 돈도 많이 드네요. 다들 일교차가 심한데 몸 조심하시고 제 글 읽어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