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나는 늘 아침이면 남편이 전날 마시고 치우지 않은 맥주 캔을 치우며 구시렁댔다.
도대체 왜 맥주캔 분리수거를 한 번을 안 하지? 이번달 들어서는 전혀 안 한 거 같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베란다에 나가서 통에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리고. 도대체 왜 양말을 양말 넣는 빨래통에 넣지 않는 거지? 내 남편은 수건과 양말과 속옷을 같이 빨아도 상관없는 사람인 건가?
빨래는 거의 내가 담당했기 때문에 자꾸 까먹고 반대로 넣는 남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요리를 좋아해서 늦게 오는 날이 아니면 거의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남편은 늘 뒤처리를 잘하지 않았다. 요리를 하느라 양념이나 조리에 사용한 수저들 만이라도 설거지 통에 넣어 놓는다면 그 이후에 뒤 처리 하는 내가 편할 텐데.
재료를 꺼내 놓고 까먹고 넣어 놓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남편은 요리를 끝내면 바로 따듯할 때 무조건 바로! 먹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밥을 하고 나서 내가 자리에 앉아 있지 않거나 바로 식사를 시작하지 못하면 늘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곤 했다.
부엌에 가보면 역시나 바로 넣어야 하는 재료들이 나와있거나, 고기를 꺼내고 남은 스티로폼, 계란 껍데기 같은 것들이 조리대에 나 뒹굴고 있었다.
요리를 자주 해주는 것은 매우 고마웠지만, 왜 요리를 하면서 정리도 같이 하지 못하는 건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 번을 정리하면서 해달라고 부탁하고, 양말을 제대로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등 여러 부탁을 해도 잘 바뀌지 않는 남편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난 사실을 알았다.
나는 네스프레소 캡슐을 사용하는 커피머신을 예전 자취할 때부터 썼었다. 그 커피머신을 결혼한 이후에도 사용 중인데, 거의 남편보다는 내가 항상 사용한다.
내가 20번 사용하면 남편은 1번 정도 사용하려나.
근데 그 커피머신의 캡슐 쓰레기를 나는 치운 기억이 없다.
결혼하고 몇 번 한 이후로는 늘 커피머신의 캡슐 통은 비워져 있었다. 아예 신경도 쓴 적이 없다. 캡슐 통이 가득 차서 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늘 까먹었었는데, 그 이후로 늘 비워져 있었기 때문에 전혀 불편함을 모르고 지내왔었다.
남편이 나 대신 가득 찬 캡슐 통을 매번 조용히 비워 주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남편은 나에게 이걸 왜 비우지 않냐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물론 남편도 나에게 고쳐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커피머신을 비워 주면서 나에게 왜 이 일을 하지 않냐고 말하거나, 치워주고서 생색을 낸 적이 없다.
어느 날 남편에게 커피머신을 매번 치워 주고 있었냐고, 고맙다고 말했더니 남편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알아서 매번 안 치우는 줄 알았잖아ㅎㅎ. “”
장난 섞인 남편의 말에 매번 집안일로 잔소리 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제야 내가 까먹었을 때도 깨끗하던 고양이 화장실과, 늘 바로 돌릴 수 있게 비워져 있던 로봇 청소기 오수통이 생각났다.
항상 깨끗하던 싱크대 배수관이, 때가 되어 가득 차면 늘 비워져 있던 쓰레기 통이 생각났다.
아무 말 없이 내 남편은 나의 빈틈을 채워 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남편이 매번 부탁한 일을 까먹는다고 짜증을 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조용히 챙겨줘서 고맙다고 말하자, 남편은 이제 알았냐는 듯이 웃으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남편은 그 이후로 가끔 “내가 커피머신 또 비웠어! 자기는 정말 가득! 찰 때까지 한 번도 안 비우더라! ㅎㅎ“ 라며 귀엽게 생색을 낸다.
남편이 놓치는 부분은 내가 챙기고, 내가 놓치는 부분은 남편이 챙기면서 서로 고맙다고 말하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나의 반쪽이 집안일을 제대로 안 해서 화가 난다면, 내가 놓치거나 안 하는 부분을 나의 배우자가 해주고 있을 수도 있으니 한번 다시 확인해 보자. 나의 경우 사소한 것 부터, 큰 것 까지 생각보다 많아서 놀랬다.
(만약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배우자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있다면...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