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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Feb 25. 2024

인생은 타이밍

편성준의 숙제 1 -10분 에세이(가장 중요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

 “그래. 너희 둘이 만나면 되겠다. 광수도 전화 왔더라. 외박 나왔다고.” 스물일곱의 어느 금요일 저녁. 여수에 있는 남사친에게 심심하다고 전화를 한 참이었다.


급작스럽게 다음 날 서울에서 영화 <마스크 오브 조로>를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대학 4년간 같은 과 친구였지만 졸업하고 그는 군대에 갔고, 나는 경기도에서 근무하며 정신없이 지내느라 서로 연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제대할 때가 가까워졌다.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 실내야구장에도 갔다. 그런 성격이 아닌데 그가 갑자기 수줍어하는 게 이상했다. 군대도 아닌데 부자연스럽게 군기가 바짝 들어 팔을 높이 흔들며 걷는 것이 웃겨서 깔깔거렸는데 알고 보니, 그날 그는 사랑에 빠졌단다. 지하철역에서 헤어질 때도 내가 고개를 들어 자기를 쳐다보며 이야기하는데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같았다나? 물론 말은 안 되지만.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그리 쉽게 홀랑 넘어갈 여자는 아니었다. 거리나 종교 문제 등 걸리는 것이 많아서 거절했지만 제대하고 발령이 나서도 오랫동안 그는 진심을 보여주었다. 시를 쓰고, 편지를 보내고, 주말마다 여수에서 군포까지 먼 거리를 달려오고, 심지어 눈물까지 보였다. 나를 그 사람만큼 진실되게 사랑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사랑을 표현하는 남자가 멋있어 보였다.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사귀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싸우거나 미운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결혼할 조건이 모두 갖춰졌다. “너를 사랑한 이 기억만으로 나는 평생을 살 수 있어.”라는 말로 나를 감동시켰다. 우리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드디어 부부가 되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식상한 말이 있다. 결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사실 대학 때 남자다운 매력이 있는 그를 조금 좋아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때 마음을 표현하고 사귀었다면 지금 서로의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27년 동안 모태 솔로였던 나는 연애 두려움증에서 벗어나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중이었고, 그는 여자친구 없이 3년을 군대에 박혀 있었다. 어떤 여자라도 예뻐 보였을 수 있다. 적당한 때에 운명적으로 그에게 콩깍지가 씌는 바람에 평생 연애 한 번 못 해 볼 줄 알았던 나도 열렬한 연애의 맛을 볼 수 있었다. 모든 타이밍은 결과로 말한다. 야구에서도 투수 교체를 해서 성공하면 타이밍이 좋은 것이고, 실패하면 타이밍이 나쁜 것이다. 우리는 결혼에 성공했다. 둘 다 여수 친구에게 전화한 타이밍이 기막혔다. 


옆에서 그가 내 얼굴에 푸우푸우 입김을 불어대며 자고 있다. 아, 내가 먼저 잠들었어야 했는데. 같이 자야 되나 말아야 되나 베개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한다. 막상 결혼하고 나니 안 보이던 단점이 보이고 연애 때 안 싸웠던 걸 신혼에 한꺼번에 다 싸우기도 했다. 그 와중에 아이 셋을 낳아 기르면서 서로 맞춰가며 지금에 이르렀다. 22년 동안 잘 지지고 볶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타이밍’과 ‘운’을 동일시해야 하는지는 알쏭달쏭하다. 타이밍이 좋았던 것만큼 운도 좋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해 주시길. 돌리기엔 이미 늦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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