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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Mar 13. 2024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겐 약하게

편성준의 숙제 4 - 10분 에세이(누군가를 도와줬던 일)

누군가를 도와주었던 기억을 쓰라고? 원래 은근히 자랑을 잘 하지만 대놓고 하라고 하니까 좀 뻘쭘하긴 하다. 열흘쯤 전에 익산역에서 한 아주머니의 바위덩어리같이 무거운 짐을 들어 드리면서 손바닥이 새빨개졌던 일을 쓰다 보니 너무 교과서 같고 재미없다. 문득 그 아이가 떠올랐다. 이건 손발이 더 오그라들려나?

         

국민학교 분교밖에 없는 작은 섬마을에서 6년을 보내고 목포에 있는 여중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나를 외할머니가 계시는 큰 외삼촌 댁에 맡겼다. 촌티가 팍팍 흘렀던 나는 처음엔 세련된 도시 아이들 사이에서 적응하느라 긴장했다. 1학년 5반에서 희*이는 단연 눈에 띄었다. 하얀 피부에 왕방울만 한 눈, 긴 속눈썹, 찰랑찰랑하고 숱이 많은 긴 머리를 한 그 아이는 인형처럼 예뻤다. 자기는 6년 동안 반장을 놓친 적이 없다며 그 큰 눈을 내리깔고 잘난 체했다. 나도 그랬다고 할 뻔했다. 꾹 참았다. 워낙 쬐그만 학교 출신이라서. 공교롭게 그 아이도 우리 동네에 살았다. 골목길 끝에 자리한 버스 정류장에서 그 아이는 2번 버스를 타고, 난 걸어서 학교에 갔다. 첫 시험이 끝나고 예의 그 당당한 목소리가 조금은 풀이 죽어서는 “너 공부 잘하는구나?”하며 말을 걸어왔다. 조금 친해지고 집에도 놀러 갔다. 꾀죄죄해도 공부 좀 잘하면 지낼 만하던 시절이었다.     

    

3학년 때 다시 같은 반이 됐다. 그 예쁜 아이가 따돌림을 당했다. 선생님이 걔만 예뻐해서였는지, 잘난 척이 심해서였는지 이유는 생각 안 난다. 이유가 뭐든 한 명을 두고 다수가 공격하는 건 옳지 않았다. 나까지 미움받을까 봐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함께 휩쓸리는 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선을 무시하고 평소처럼 대했다. 아니, 조금 더 신경 써 줬다. 절친도 아니었고 사실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약자로 바뀐 처지가 마음 아팠고 정의롭지 못했던 상황이 싫었다. 나라도 잘해주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것처럼 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도에서 교사로 근무한 지 5년쯤 됐을 무렵, 12년 만에 희*이한테서 이메일이 왔다. 자기를 미워한 얘들도 많았는데, 왕따 비슷하게 당했을 때 따뜻하게 대해주고 옆에서 뭐라 한들 항상 같은 모습으로 잘 챙겨주어서 고맙다고. 급체해서 조퇴했을 때 교문까지 부축해서 바래다준 것도 나였고, 복도에 먹은 걸 다 토해놓고 간 걸 내가 치웠다고 들었다고. 그래서 가끔 기억난다고. 고향에 내려오면 연락하고 지내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시 23년이 지났다. 그 아이도 중년이 됐겠구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이메일을 찾아 읽어봤다. 변변한 옷 한 벌 없어서 같은 옷만 주야장천 입고 다니고 친구들이 분식점에서 라면이나 떡볶이 사 먹는 게 부러웠던 촌뜨기였지만 가난한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주변에 흔들리지도 않는 강단이 있었던 어린아이에게 멋지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남편이 근데 집에서는 왜 이리 제멋대로 냔다. 그러게. 당신과 살면서 그게 실종됐나? 집 나간 정의를 찾아봐야겠다. 어렸을 적 저 용기 있었던 아이처럼,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겐 약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약자를 만나면 아픔을 함께 하고, 부조리를 보면 비판하고 거부하는 단단한 사람이었는가?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겠다. 용기 있는 삶에 부드러움과 예의를 더하는 건 필수다.      


마음껏 자랑할 수 있게 판을 깔아준 편성준 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철판 깔고 특기를 펼치긴 했는데 쓰고 보니 부끄럽다. 이런 걸 쓰라고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자기애로 똘똘 뭉쳐 있다고 흉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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