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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죽걸산

체력의 비밀

by 솔향

"밭에 같이 갈랑가?" 토요일 오전, 변함없이 골골거리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주말이면 집에서 40분 거리의 밭에 남편은 지극정성으로 출근한다. 가끔은 주중에도 다녀온다. 심어 놓은 고구마가 뿌리를 잘 내리게 물을 주고, 잡초도 뽑고, 가면 할 일이 태산이란다. 내가 같이 가서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진 않겠지만 요구하지는 않는다. 오늘 '밭에 갈랑가'라는 말은 집에서 누워만 있지 말고 경치 좋은 곳에서 좀 쉬라는 의미이다. 자기가 정성껏 농사 지어 놓은 것을 자랑스레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몸이 가라앉는다. 매트리스 안으로 들어갈 듯이. 물 먹은 솜이불처럼 무겁고 축축 늘어지는, 근육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든 몸뚱이가 문제인가, 현관문 안으로만 들어서면 자동적으로 피어오르는 의욕상실이 문제인가. "내일 가자. 교회 끝나고." 일단 미루고 본다.


카톡이 부른다. 신 교장선생님이다. 일출 동영상을 클릭하니 산과 산맥의 위용이 예사롭지 않다. '우와! 멋있다!'라는 한국어 외에 정체 모를 외국어도 들려왔다. 어디냐는 물음에 안나푸르나 남봉에서 해 뜨는 장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 교장선생님은 2년 전 퇴임하셨는데, 지리교사 사모님이 올해 퇴임하시자마자 함께 전국을 걸으시더니, 이젠 두 분이서 히말라야에까지 진출하신 모양이다. 60대 부부의 쌩쌩한 체력과 열정 넘치는 도전에 감탄하며, 늘어져 있던 50대의 게으른 몸을 일으켰다.


올해 들어 처음 밭에 왔다. 작년엔 가느다란 묘목이어서 눈에 띄지 않았던 홍가시와 사철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어린 새 잎을 부지런히 내고 있었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금호호는 오늘 맑은 라이트블루다. 쌀랑하지도 덥지도 않은 쾌청한 날씨에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진다. 눈부시게 어여쁜 분홍치마를 입은 세이지가 밭 건너 넓게 펼쳐진 호수와 어울려 발레하는 소녀처럼 춤춘다. 농막 주위의 인동초 꽃이 유난히 통통하니 탐스럽다. 남편이 하나하나 지지대를 세워 가꾸고 있는 채소들이며 수확이 가까워진 마늘과 양파를 보니 마음이 풍성해진다. 작년에 심은 스무 개 남짓의 수국 모종은 절반만이 살아남았다. 물을 충분히 주어야 하는데 밭이 너무 멀어 자주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라버린 것들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싱싱하고 동그란 잎을 펼친 것들은 튼튼하게 뿌리내려 올해 작지만 예쁜 꽃을 피워내겠지. 내년엔 더 탐스럽고 신비스러워지겠지.


캠핑의자를 내어 놓고, 김영하의 신작 에세이를 꺼냈다. 남편은 밀린 일을 하느라 바쁘다. 앉으려다 말고 모자와 플라스틱 통을 챙겼다. 딸기는 내가 따기로 해서다. 해가 조금 비키는 네 시쯤에 따는 게 훨씬 생산적일 것 같았으나, 오자마자 놀고 있으면 얄미울까 봐 먼저 하고 쉬기로 했다. 노지 딸기가 퍼져 있는 땅은 두세 평 남짓이지만 풍성한 잎을 들추면 작은 딸기들이 다닥다닥 달려있다. 게중에 좀 큼지막한 것들이 보이면 노다지를 캐는 듯 기쁘다. 엿새 전에 남편이 한번 땄으나 벌써 또 익은 지 오래돼 짓무른 것, 달팽이나 벌레가 갉아먹은 것, 흙에 닿아 썩은 것이 많아 아까웠다. 웬만하면 도려내고 딸기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좀 상한 것도 버리지 않고 담았다. 딸기잎 사이로 발을 디딜 수 있는 흙을 찾아내어 쭈그리고 앉아 작업을 하는데 당최 공간이 줄어들지가 않는다. 등이 더워지고 땀이 흐른다. 허리가 뻐근하다. 이러다가 목디스크뿐 아니라 허리디스크까지 터지는 거 아니야? 우습게 보고 시작했는데 장난이 아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노동이라고는 안 할 것 같지만, 한번 시작한 일은 최대 효율을 얻으려 엄청 집중하고 빠르게 손놀림을 하는 편이다. 벌써 다섯 통 째다. 좁은 딸기밭에서 많이도 나온다. 목디스크에 무리가 와 신경이 건드려졌는지 어지럽다. 그래도 아래쪽에 싱싱하고 큰 딸기가 많아 포기할 수 없다. 메스껍다. 좀 쉬었다 다시 하면 좋으련만, 미련한 게 인간이다. 조금만 더 하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안간힘을 짜다.


그늘진 평상 위에 마지막 한 알까지 수확한 것을 던져 놓고 농막으로 기다시피 들어갔다. 이불 쪽으로 갈 힘도 없어 입구에 널브러져 누웠다. 빙빙 돈다. 천정이 도는지 누워있는 내가 도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예초기로 잔디를 깎느라 하얗게 질렸을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더니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아 일어나 휘적휘적 이불을 깔았다. 좀 쉬면 회복될 것이다. 늘 그렇듯이.


따뜻한 전기장판에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아직 어지러운 기운은 남아 있지만 아까보단 훨씬 나아졌다. 장화를 덜그덕거리며 남편이 조리에 물을 가득 담아다 고구마 싹에 부어 주고, 또 돌아와 물을 채운다. 발걸음이 듬직하다. 팔과 다리와 등판이 든든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소처럼 일하는 남편에게 커피를 한 잔 권하고, 기분 좋게 뽀송한 바람을 맞으며 달콤한 믹스커피를 수혈했다. 딸기를 많이 땄다는 남편의 칭찬에 죽을 뻔했다고 투정하며, 그제야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 페이지를 펼쳤다. 그 안에 삶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철학이 담겨있다. 살갗을 간질이는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머리를 기대고 읽는 에세이가 달다.


남편의 일은 끝이 없다. 해가 지기 전에 복숭아 열매를 솎는 것을 도왔다. 마음 아프지만 엄지손톱만한 열매들을 후두룩 훑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복숭아가 실하게 자라 맛난 과실이 되길. 어두컴컴해진 산 아래 농막과 작물과 고라니와 너구리를 뒤로 하고 밤 아홉 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다.


늦은 저녁을 먹고 딸기와 부추를 손질했다. 남편은 늦게까지 딸기잼을 만들고 나는 자리에 누웠다. 신 교장선생님의 카톡이 네팔로부터 날아왔다.


'4000미터 고지에서 솔향의 웃음, 도전, 건강, 씩씩 당당함을 소망하는 돌탑을 쌓았습니다.(맨 위의 하얀 돌)'

안나푸르나 봉우리 아래에 쌓은 돌탑 사진도 함께 왔다. 근처에 있는 돌들을 몇 개 날라다 낮게 쌓은 것이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사진에 대고 벌렸더니 맨 위에 하얀 돌이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는 넓은 세상을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오늘도 방구석에 누워 있을 나를 위해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흰 돌이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사랑스러웠다. 돌을 놓으며 담은 그분의 소망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렀을 여러 사람을 향한 것이었을 테지만, 하얀 돌에 눈을 두는 동안만큼은 오직 나를 위한 유일한 마음처럼 느껴졌다.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는 내게 남편이 맛보라며 뜨끈한 딸기잼을 내밀었다. 신 교장선생님만큼이나 남편의 부지런함과 체력도 놀랍다. 그이에게 카톡을 보여 주었다. 너무 멋지지 않냐며. 나도 가고 싶은데 난 왜 이렇게 체력이 약할까 하는 푸념을 얹으며.


남편이 말했다.

"누죽걸산이네." "뭐?"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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