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냥 초라해질걸 그랬나 보다
나이 들어서 혼자 살면 초라해진다
노총각이었던 우리 아빠가 나에게 결혼하라고 강요하면서 겁주던 말이다. 고리타분한 49년생 우리 아빠는 30이 넘은 딸내미가 결혼 안 하고 혼자 늙어 죽을까 봐 몰래 듀오를 가입해 놓기까지 했다
아빠야 옛날사람이라 그렇다 쳐도,
중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여중여고여대를 나와 여자뿐이 없는 그 집단에서조차도 비혼을 단호히 외치는 친구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비혼을 꿈꾸며 입사한 회사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를 자연스러운 인간의 도리처럼 해내는 동료들 속에서 수년간 세뇌를 당한 결과,
거기다 모든 회사의 복지가 기혼자들과 애를 낳은 직원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다년간 겪고 나니 이건 뭐 결혼 안 하면 손해겠는데?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연애 안 해? 결혼 안 해?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으면 하자 있는 사람 취급하는 사회적인 시선이 지극히도 싫었는데 어느덧 나도 그런 사회에 세뇌되어 결혼이라는 문턱을 넘고야 말았다
나도 정상인이라는 걸(어쩌면 아닐 수 있는데 도말이다)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왜 비혼을 결심했던 걸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연애라는 것이 유치한 소꿉장난이라고 생각했고 보다 더 고차원적인 인생을 살고 싶은 뽕에 취해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도 했다. 결혼을 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없냐고?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림이 지저분해지긴 했다.
근본적으로는 남자라는 존재가 삶을 같이 꾸려갈 만큼 우아하지도 않다는 게 나의 판단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판단은 그다지 틀린 것 같진 않다
틀렸으면 참 좋았았을 걸
결혼한 지 일 년이 넘어가는 지금에 와서는
사랑하는 우리 아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 그냥 초라하게 살 걸 그랬어~.
물론 그렇게 말하면 괜히 아픈 아빠 심기만 건드리니깐
속으로만 말대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