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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끈한 콜라 Feb 17. 2024

동아시아 삼국의 인물론③ 이순신, 원균, 선조

공부지병, 비불효병

시안에서 생각해본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
 

중학교 시절 이제 막 개업한 영풍문고에서 마주친 몇 줄의 광고문구에 이끌려 저는 충동적으로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오다 노부나가’의 첫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강렬한 붉은 색 표지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일본 역사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권 수가 많아 책값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친구와 둘이 청계천 헌책방들을 헤매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아무튼 제 기억에 따르면 그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목을 쳐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들어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고 말한다. ‘오와리의 영주 오다 노부나가는      


각자 운율에 맞추어 실제로 저렇게 말했을 리는 만무하고, 그저 누군가가 전국시대 무장들의 배포와 그릇을 논하기 위해 이와 같은 멋진 비유법을 만들어 냈을 뿐일 것입니다.     


다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어째서 가만히 있는 새를 억지로 울게 해야 해? 이상한데. 그건 자연스럽지도 않고 옳은 일도 아니야!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중국, 일본에서와 달리 새를 새장에 가두어 기르지 않았습니다. 애초 가두어 놓을 생각도 없는데, 대롱 속의 새를 울게 만들라는 미션을 받는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한국인이라면 도덕적으로 옳지는 않으나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받아들기 어려워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논의가 전개되기 어렵습니다.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가 먼저 해결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새를 새장에 가두어 놓고 기르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며, 잠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고뇌하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한일 양국 사람의 사고 방식이 이렇게나 다릅니다.


한국인은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한 뒤 이를 기준 삼아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면, 일본인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따진 후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편인 듯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인은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가치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일본인은 옳고 그름에 집착하기보다는 성공적으로 살아남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듯합니다.  

   

비유적으로 말해본다면, 한국인은 땅에 살면서 하늘을 추구한다면, 일본인은 땅에 살면서 땅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은 탁상공론할 수밖에 없고, 일본인은 현실적이기만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인(士大夫)들이 사서삼경을 금과옥조로 삼을 때, 일본인(士族)들은 손자병법을 가슴에 품고 다녔을 것입니다.

   

지킬박사(A,C)와 하이드씨(B,D)     


한국과 일본에 국한하여 리더 또는 지도자의 유형을 아래와 같이 분류해 보았습니다.


       A  |  B

<--------->

       C  |  D     


x축의 양의 방향으로 갈수록(1,4사분면), 옳고 그름에 집착하기보다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가치 < 실리).


x축의 음의 방향으로 갈수록(2,3사분면), 옳은 일을 행하기 위해서라면 과업의 실패도 불사하는 정의로운 사람을 의미합니다 (가치 > 실리).     


y축의 양의 방향으로 갈수록(1,2사분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유능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유능).


y축의 음의 방향으로 갈수록(3,4사분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무능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무능).     


그럼 A, B, C, D로 분류되는 인물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A는 훌륭한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유능한 사람.

  B는 과업의 달성을 지향하면서도 유능한 사람.

  C는 훌륭한 가치를 추구하지만 무능한 사람.

  D는 과업을 달성을 지향하지만 무능한 사람.     


저의 지식의 범위에서, 한국에서는 줄기차게 A 또는 C 유형의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해 왔습니다. B를 고르느니 C를 고릅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줄기차게 B 또는 D 유형의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해 왔습니다. A를 고르느니 D를 고릅니다.      

역사나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은 제 말대로 정말로 그런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이병훈씨가 연출한 불후의 명작 드라마 ‘허준’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그의 다른 모든 드라마도 ‘허준’과 큰 차이가 없는 전형적인 위인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각국의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를 멋지게 풀어내는 동아시아 3국의 대표 이야기꾼으로 각각 김용(중국), 야마오카 소하치(일본), 이병훈(한국)을 꼽습니다.     


https://youtu.be/2mbpi0A_0Uo?si=XsqzpdvCMN4FqowG

(7분 5초 참조)     


드라마 허준의 한 장면에서 참스승 ‘유의태’는 아들 ‘유도지’와 제자 ‘허준’에게 ‘의과 급제’라는 미션을 주어, 한양으로 올려보냈습니다. 상경 도중 진천에서 역병에 신음하는 환자들은 만난 그들 일행은 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과거가 시행되는 날짜가 임박하자 유도지는 버티다 못하고 환자들을 두고 상경하여 노력의 대가가 헛되지 않게 급제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허준은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결국 과거 시험의 응시를 포기하고 터벅터벅 고향으로 돌아와 버리고 맙니다.      


당당하게 과거에 급제하고 온 아들에게 유의태가 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한 행동은 바로 먹물이 들어있는 벼루를 들어 아들에게 집어 던지며 매섭게 꾸중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비인부전(非人不傳, 인격을 갖추지 못한 자에게 예법을 전하지 말 것)’ 운운하며 아들의 성과를 깎아내렸습니다. 절치부심 노력하여 ‘과업을 달성한 자’를 그저 소인배로 깎아내린 것입니다. 일본에서라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드라마 에피소드일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B유형의 인물(유도지)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B유형은 그저 음흉하기만 한 소인배일 뿐입니다. 후보군에 A유형의 인물(허준)이 없으면, 차라리 C유형의 인물(임오근, 무능하나 정의의 편에 서는 자)을 지도자로 선택하고 맙니다. 우리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C유형의 인물을 선택하느니, B유형의 인물을 선택하자고 여러분들께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A유형의 대표 위인- 이순신 장군님- 공부지병, 비불효병  


물론 할 수만 있다면 이순신장군님, 세종대왕과 같은 A유형의 인물을 선택하는게 가장 좋을 것입니다.

   

곧 세종대왕에 대해서도 논할 기회가 있을 듯 하니, 이글에서는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서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순신 장군의 어록 중 다음의 말씀을 가장 좋아합니다.

    

       원균이 이다지도 병법을 모른다는 말이냐! (公不知兵乃如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다들 반응이 대동소이합니다. ‘좋은 말씀도 넘쳐나는데, 하필 이것을?’     


'신에게는 아직 12척이....', '죽고자하면 살것이요...' 이런 말씀들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님 말씀. 서울 세종로. 2023. 12. 4. 촬영


여러 문헌들에 이 이야기가 기록된 것을 보면, 당시에도 저 말씀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그중 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순신이 말하길 “이곳 앞바다는 좁고 얕아 무력을 행사하기 어려우니, 큰 바다로 적을 유인해 공격해야 합니다.”라 하였으나, 원균이 이를 듣지 않았다. 순신이 말하기를 “원균이 이렇게도 병법을 모른다는 말이냐!”하며, 휘하 장수들에게 거짓으로 도망가는 척을 하도록 명하니, 과연 적들이 기세를 타고 추격해 왔다. (선조수정실록 26권, 1592년 7월 1일)     


舜臣曰: "此處海港隘淺, 不足以用武, 當誘出于大海而擊之。“均不聽。 舜臣曰: "公不知兵乃如此.”令諸將佯北, 賊果乘勝追之。     


저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결국 장군님 본인은 병법을 아신다는 말씀 아닙니까? 너무나 안심되고 감사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런 리더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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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도 ‘병법을 모르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삼국지의 주인공 바로 유비입니다. 정사 삼국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유비의 군대가 동쪽으로 내려가 손권과 싸우고자 700리가 넘는 진지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황제(조비)께서 들으셨다. 신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유비는 병법을 모른다. 어찌 700리나 되는 진지를 세워 두고 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병법에서 피하는 일이다.” (삼국지 위지 문제기)     


帝闻备兵东下,与权交战,树栅连营七百余里,谓群臣,备不晓兵,岂有七百里营可以拒敌者乎!此兵忌也。《三国志 · 魏书 · 文帝纪》     


이 전투(이릉대전, 夷陵之战)의 패배로 인해, 유비의 촉나라는 비가역적인 재기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릉대전의 배경이 된 장강 유역. 2023. 2. 3. 촬영


위나라의 조비와 오나라의 육손과 달리, 촉나라의 유비는 병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한나라를 재건하겠다는 위대한 이상, 덕과 의로써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고귀한 이상, 의의 상징인 관우를 암살한 소인배들에게 복수하겠다는 거룩한 이상은 유비의 것이었으나, 아쉽게도 유비는 싸워 이기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유비는 C유형의 인물로 분류해야 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정의로운 분이었습니다. ‘의’를 위해서라면 본인의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고귀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장군님은 ‘싸워 이기는 방법’을 아는 분이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A유형 인물이라 말한대 과장이 아닙니다. 국가 존망의 위기저런 이 있었다는 게 우리 민족의 큰 복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A유형의 리더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실 희박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B, C, D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저는 차선책으로 B유형의 인물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균은 C유형의 인물입니다. 그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무능이 그의 진심까지 의심하게 만들긴 하였지만 말입니다.    

  

우리 역사의 대표 소인배 선조 이연은 B유형의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원균 같은 C유형 인물보다는 선조와 같은 B유형 인물을 우리의 리더로 선택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시안에 와서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시안에 와서 일본에 대해 이렇게 많이 생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음과 같이 비교가능한 인물들이 있고 해서 그런 듯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아래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논해볼 것입니다.      


신라의 원측스님, 혜초스님 – 일본의 구카이, 엔닌스님

신라의 최치원 – 일본의 아베노 나카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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