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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이꿈 Nov 16. 2023

가스라이팅인 줄도 몰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등학교 3학년, 수능시험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학원이 끝나고 늦은 시간 집에 가고 있는 버스에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버스에서 내려 엄마를 만나 놀이터로 갔다.

엄마가 나에게 하려던 말은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다.라는 말이었다.

이혼을 하겠다도 아닌 이혼을 이미 했다는.

그런데 그 통보를 듣고 나니 마음이 너무 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 입에서 잘했다.라는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뭔가 쿵 내려앉았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던 이유는 이제 아빠는 어디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아빠는 우리 남매 앞에서 자주 싸웠다. 자주도 아니다. 거의 매일을 싸웠다.

정말 사이좋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오빠가 군대를 간 후 어느 날, 엄마와 아빠가 아무리 많이 싸웠어도 몸싸움까지 하지 않았는데, 그날은 집안의 물건까지 집어던지며 싸우는 것을 내가 뜯어말렸어야 했다.

그 후로 집에 엄마와 아빠만 남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가 너무 두려워 학교에 있는 시간도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런데 이혼이라니? 나에겐 너무 반가운 소식이면서도 아빠는?이라는 걱정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정말 맞지 않았다. 아빠의 무능함도 있었지만 엄마의 이해심 부족한 성격도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늘 엄마에게서 아빠의 불만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오직 엄마의 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늘 엄마의 잔조리와 짜증스러운 말투에 아빠가 기죽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아빠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다는 그날 이후로 아빠는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아빠를 기다렸던 것 같다. 

어느 날, 알바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내렸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아빠였다.

반가웠지만 엄마가 나에게 실망할까 봐 아빠가 빨리 가주길 바랐다. 

아빠와도 연락을 하고 지내자며 아빠가 말하였지만 알겠다고는 하고 그 뒤로 아빠에게 연락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는 왜 그렇게 엄마가 두려웠을까? 왜 내 주관도 없이 엄마에게만 모든 신경이 쓰였을까?

엄마의 눈치만 보고 자랐던 우리 남매는 아직도 타인에게 우리의 주장을 뚜렷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심지어 지금도 엄마가 우리에게 잘못을 했어도 우린 바른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평생을 엄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살았으면서도 아직도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 쓰여서 잠도 못 이룰 때가 많다.

작년에 있었던 일 중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엄마에 대한 스트레스를 친척언니의 신랑 즉 나의 형부에게 털어놓은 적 이 있었다. 의외로 형부와 대화가 잘 통하여 엄마에 대한 험담은 점점 수위가 높아져갔었다. 형부는 친척언니와 장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 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고 공감해 주니 너무 좋았고, 속이 너무 시원했다.

그렇게 형부와 연락을 이어가던 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 또 나를 자극했다. 

"OO 이는 (형부) 그렇게 이모한테 잘하더라~ 우리 사위는 그런 것도 하나 없고~"

그 말 끝에 해선 안될 말들을 다 해버렸다.

형부가 어떤 사람인 줄 아냐며. 언니와 장모 욕을 나에게 하는 사람이라고.

돌이켜보면 나는 형부와 언니에게 정말 죽여 마땅한 사람이다. 평생을 언니와 형부에게 잘못을 빌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뻔뻔하게 살고 있다.

엄마에게 그간 형부가 언니와 이모 험담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그걸 또 이모에게 전달을 했다..

그럼으로써 일은 커졌다. 아직도 엄마가 너무 원망된다. 

지금은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나 자신을 찾으려고 많이 애쓰는 중이다.

이젠 엄마의 말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고, 다 털어내고자 내 이야기를 어딘가에 쓰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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