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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Jun 13. 2024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잘할 수 있지?

 수업을 해 보면, 잘 듣는 학생도 있고, 조는 학생도 있고, 간혹 엎드려 자는 학생도 있다. 간혹 가다 자는 것은 어제 많이 피곤했거나 오늘 어디가 아프거나 생각할 수 있지만, 매시간 자는 학생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수업 시작할 때는 분명히 깨어서 인사를 했는데, 어느새 돌아보면 엎드려 있다. 그래서 깨우면 잠시 일어나고, 또 어느새 보면 엎드려 있다. 이러면 또 깨우기가 미안해진다. 어디가 아픈가 옆 친구에게 물어봐도 아니란다. 그렇게 벌써 한 학기가 다 되어 간다. 


 그런 아이를 보면 나는 걱정이 되었다. 쟤는 어쩌려고 저러나 싶었다. 인생이 걱정되는 거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내 경험의 한계지 않을까. 저렇게 공부를 안 해도 그 아이는 자기 인생을 잘 살아갈 수도 있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그 아이는 공부를 하지 않기로 나름 결심을 내린 거다. 그래서 지루한 수업 시간에는 자기로 한 걸 테고. 나는 교사로서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아이를 깨우기는 하지만, 한 시간 내도록 아이를 계속해서 깨우지는 않는다. 두세 번이 다다. 어떤 때는 그 횟수도 적은 게 아닌지 고민이 되어서 더 열심히 깨우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수업에 참여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교사의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고민을 하기도 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성적 순서대로 쭉 나열을 한다. 이른바 줄 세우기를 한다. 2등은 1등보다 모자란 느낌이 들고 3등은 2등보다 모자란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저 뒤에 있는 학생들은? 꼴찌는 공부를 포기했다 쳐도 그 앞에 앞에 학생은? 나름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결론이 항상 저 바닥이라면 얼마나 자괴감이 들까. 나의 노력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나의 능력도, 어쩌면 내 인생도, 그리고 나란 사람 자체도 어딘가 모자란 사람인 듯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 거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그건 아니다. 성적순으로 나열하는 건 시스템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사람은 자기 가치를 이미 가지고 있다. 각 과목의 성적은 그 아이가 어떤 걸 더 열심히 공부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이며, 어떤 영역에서 더 능력을 발휘하고, 어떤 영역을 더 선호하는지를 보여주는 정보다. 국어를 수학보다 더 좋아한다면 성적이 더 잘 나올 가능성이 높고, 사회 성적이 과학 성적보다 더 잘 나왔다면 사회 영역의 공부에서 능력이 더 뛰어난 걸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고, 모든 과목에서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도, 동물이나 식물을 잘 키우는 능력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성적은 낮아도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유별나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가는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학교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야 하고 줄 세우기를 해서 대학의 입학을 결정해 줘야 하지만, 동시에 그 학교에서의 생활은 아이들이 자기의 숨겨진 적성과 능력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 당연한 생각을 이제야 깨닫다니. 맞다. 내가 막연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을 이제야 진심으로 깨달았다. 


 아이들은 잘 살 수 있다.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말이다. 물론 지식과 지혜를 쌓아서 어떤 영역에서든지 자기 자신을 계발해 나가야 하는 건 모두에게 공통이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잠들기를 차라리 선택하는 학생들도 체육은 열심히 하지 않는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아이들의 인생을. 나는 교사로서 최선을 다해 내가 준비한 수업을 가르쳐야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영역은 아이들의 몫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지혜롭고 똑똑하다. 앞으로도 계속 배워가야 하지만, 지금도 어른인 나보다 더 훌륭한 생각을 가진 아이들도 많다.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걱정은 조금만 덜어 놓자. 걱정되는 마음으로 그런 수업 태도로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눈빛으로 아이를 그만 쳐다보자. 그리고 응원하자. 그 아이의 인생을. 할 수 있는 대로 그 아이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고, 확신의 눈으로 바라보자. 너는 잘할 수 있다고. 너의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눈빛으로. 


 나는 바란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혹 내가 만나지 못하는 아이들도 다 자기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이렇게 넓은 세상에서 저마다의 모양으로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그리고 나도 그 속에서 한 부분을 자리 잡아 내 역할을 아름답게 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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