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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Sep 03. 2024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을 성장시킨 문장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수상소감에서 말한 문장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명언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공동체 속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관습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사회적 관습과 통념이 나라는 개인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이라고도 볼 수 있는, 우리 무의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고정관념은 가장 개인적이고 고유한 나의 모습을 억누르고 차단시킨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옮겨지기도 전에 차단되기도 하고, 의식에 올라와도 스스로를 억누르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것이라면? 그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학교라는 사회에서는 한 교실에 20명 남짓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사회다. 아이들은 그 작은 사회 속에서 나름의 관계를 형성해 간다. 치열하게 자기를 지키고 다치지 않을 만한 선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상대방과 관계를 만들어간다. 사실상 제한된 자유다. 지혜롭고 영민한 아이들은 자기가 다치지 않을 선을 빨리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행동한다. 하지만 무디고 눈치 없는 아이들은 함부로 행동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외면당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선이 마치 칼날같이 잘라내 버리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큰 테두리에서는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넓고 추상적인 사회적 통념 위에, 내가 속한 직장이라는 구체적 단위의 조직이 가진, 상식이라는 선이 존재한다. 그 선 안에서 놀아야 다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진 안전함은 나 자신의 고유성을 자꾸 묻히게 만들고 점점 나는 전체 속의 하나의 부속품처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나는 내가 남과 좀 다른 생각을 하고, 그래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자존감이 낮았고, 자기 비하가 많았다. 사람들에게 수용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실제로 친구도 별로 없었고, 여중 여고를 거쳐 여학생이 많은 학과에서조차도 여자들끼리의 사회적 관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춘기 시기에 마땅히 여자라면 거쳐야 하는, 여자들끼리의 사회적 관계의 과정을 나는 통과하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치가 없어서, 감정이 무뎠기 때문에 당시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한참 지나서 그때의 불편했던 감정의 원인을 알아차린 것이다. 한 번은 호주의 어학원에서 같은 한국인 언니들에게 왕따를 당했고, 첫 직장에서 여자 직원들 사이에서 혼자가 되었었다.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가 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대화 속에서 은근히 배척하는 말과 행동들이 있었는데, 그걸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저 내가 왜 기분이 나쁘지라고만 생각했었다. 바보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눈치도 생기고, 대응하는 속도도 빠르고 세련되었지만, 여전히 여성들과의 관계는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내 사주에는 인성이 많은데, 인성이 많은 여자는 여자들에게 그다지 매력이 없다고 한다. 남자들하고는 오히려 잘 지내는데, 그게 더 주변 여자들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나 자신에게만 빠져 있기 쉽고,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잘 파악하지도 고려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사회적 통념의 영향으로부터 살짝 자유로워진 나란 사람은 사차원이라는 평가를 간혹 들으며 어찌어찌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된다. 사차원이어도 괜찮다는 말처럼 들려서다. 


 나 자신의 고유함. 내가 가진 고유한 생각들, 나만이 느끼는 고유한 감정들이 모두 소중하고 가치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사회적 통념과 상식의 선에서 나 자신의 고유함을 나타내기 위해 매 순간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고, 수용될 때도 있고, 거부될 때도 있다. 그래도 그 모든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나의 고유한 것이니까 그 모든 경험을 즐기는 것은 어떨까. 


 나의 현재는 모든 나의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부끄러웠던 기억도, 실패와 좌절의 경험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귀중한 것들이라면, 그때의 수치스러움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울 때에도 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 또한 소중한 것이라고. 그게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나만의 현재를 경험하자. 느끼고 즐기자. 풍성한 감정을 표현하자. 그래, 이게 나지.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고 판단받지 않은 채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자. 그래, 그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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