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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Sep 09. 2024

어른들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내 맘대로 하고 싶은데.

 주말 내내 불퉁하게 입이 나와 있던 남편은 겨우 마음을 추스른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안심하고 출근을 했다. 집을 이사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서 잠을 잘 못 잔다고 하더니, 자기도 감당이 안 되었나 보다. 사고 친 내가 원망스러웠을 거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은 속상하고 나도 억울한 심정이 든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어제 하루종일 두통으로 힘들었다. 집 보러 다니고, 혼자 고민하고 생각하느라 진이 빠진 모양이다. 즐거운 주말이 긴장과 스트레스로 휙 날아간 느낌이다. 그래도 빨래도 돌리고 재활용도 버렸으니, 할 일은 했다. 할 일도 안 하고 몸져누웠더라면 오늘 출근할 때 마음이 무거웠을 거다. 


 큰딸은 어젯밤에도 학교 숙제를 하느라 늦게 잤을 텐데, 아침마다 알람 소리에도 깨지 않고 자는 걸 보면 날마다 그런 생활인 듯하다. 애살이 많아서 이것저것 다 잘하고 싶어 하니 몸이 힘들 수밖에. 그렇게 애터지게 안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지만, 자기는 잘 안 될 거다. 


  자식이 부모 말을 안 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 특히 청소년 시기에는 말이다. 나도 저때는 부모님 말씀이 귀에 잘 안 들렸던 것 같다. 부모님도 나에게 잔소리를 별로 안 하셨다. 공부하라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어릴 땐 눈높이 학습지를 하라는 잔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그 외에는 없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부모와 갈등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나는 순종적인 아이였다. 그렇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어머니에게는 반항심이 일어난다. 내가 어머니에게 뭔가 의논을 드리면, 어머니는 나에게 정확히 자신의 답을 말씀해 주시는 편이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답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말씀 끝에는 어른들 말 들어서 손해 보는 건 없다고 말씀을 꼭 하신다. 그러면 나는 기어이 발끈하고 만다. 어른들 말씀도 다 맞지는 않던데요? ㅎㅎ 버르장머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꼭 반항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도 참 못됐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될 것을, 잘 안 된다. 그리고는 또 나름 수습을 한다. 대화를 안 좋게 마무리하면 안 되니까. 네, 어머니, 어머니 말씀은 제 수첩에 잘 적어놓을 게요. 잘 참고해서 결정하도록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ㅎㅎ 내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면 어머니는 웃어주신다. 다행스럽게도 방식의 유머를 받아주신다. 좀 참을 걸 하고 후회할 때도 있지만, 매번 참으면 나도 속 터지고 병이 날 것 같다. 


 어머니 말씀이 정말 정답인 걸까? 나는 그 방법이 싫은데, 하지만 어머니 말씀이 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남편이 내 의논상대가 되어주지 않으니, 답답해서 어머니한테라도 전화를 드리는 건데, 하고 나니 더 괴로워졌다. 그래서 아빠를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는 할머니 말씀 안 들었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 결과가?"

 "엄마는 죽도록 할머니 말씀 안 듣고 싸웠지. 그런데 그 뒤에 뭐 후회하고 그런 기억이 별로 없는데? "

 "그럼, 엄마는 결과가 나쁘지 않았던 거네. 엄마 마음대로 하고도 말이지."


 그런 엄마가 부러웠다. 할머니 하고 싸워가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다니. 나는 결혼 빼고는 대부분 엄마 말대로 한 것 같은데. 다행히 남편은 순전히 내 선택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안 그랬다면 평생을 원망했을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내가 원하는 게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지금 내는 월세를 부담스러워하니 월세가 조금 낮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지금 키우는 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셋집보다는 작은 빌라라도 매수를 해서 마음 편하게 살까 고민을 했다. 남편이 기분이 안 좋으니, 의논도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께 의논을 드렸더니, 매수는 절대로 안 되고, 전세든 월세든 셋집으로 가라고 하신다. 아직 부동산 문제도 다 해결 못해서 힘들어하면서 사는 건 안 된다고. 그리고 고양이는 다른 집에 보내라고. 내가 학생들을 상대하니까 학생들 수준이라 아직 어리고 철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정말 그럴까?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어른이었다면 좀 달랐을까? 철이 없다는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남편은 우울증에 걸려 마음이 힘들고, 아이는 네 명에, 고양이 세 마리를 다 키우고자 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걸까. 철없는 생각인 걸까. 


 처음부터 안 데려왔으면 모를까. 어떻게 보내겠나. 누가 얘들을 받아주겠나. 아무도 안 받아줘서 우리 집에까지 오게 된 건데. 아기 때 보냈어야 했을까. 내가 총대를 메고 아이들을 잘 설득해서 다른 좋은 데로 입양을 보내야 하나. 근데 그러고 싶지가 않다. 힘들어도 함께 데리고 가고 싶은데. 


 엄마에게 상의를 하니, 엄마는 반려동물 키우는 거 허락하는 집주인도 있다며, 잘 절충해서 해 보라고 하신다. 엄마의 속마음도 어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지만, 엄마는 강요는 하지 않는다. 그게 엄마의 방식이다. 알고 보면 더 고수다. 이래 저래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들어본 건 후회하지 않는다. 속이 좀 쓰려도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려면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나. 


 결론은 지금 이 집에서 허락된 만큼 더 살다가 그때 이사하는 것이다. 집주인이 월세를 좀만 깎아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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