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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Mar 27. 2024

남편과 계속 사는 이유(1)

무엇이 중한가

 나의 일상을 흔드는 가장 큰 존재는 남편이다. 남편은 간헐적으로 불시에 화를 내고, 정기적으로 화를 폭발하는 사람이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닌가 생각한 때가 많았다. 아무리 감정적인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화 낼 일은 아닌데, 매번 분노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잘 안 됐다. 


 이해가 되든 안 되든 고통은 찾아왔다. 매번 남편이 그럴 때마다 나는 죽고 싶었다. 죽지 않으려고 애들을 들처 업고 친정으로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러면 남편이 친정으로 나를 데리러 온다. 그러면 나는 또 남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런 상황에서 계속 산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만약에 내 친구가 이러고 살고 있다면 나는 당장 이혼하라 했을 거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까. 


 마치 불에 달군 쇠를 밟는 것처럼,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예감되는 순간에도 피할 수가 없다. 기어코 불에 달군 쇠를 밟아야만 하는 고통이다.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나는 안 그래도 불안, 우울해지기 쉬운 편인데 극도로 불안해지고 우울해진다.  


 도망치기도 여러 번, 싸우기도 여러 번, 매달리기도 여러 번, 그렇게 발버둥쳐도 해결되지 않던 것들이 남편이 약을 먹기 시작하고 멈추었다. 그런데 화를 내지 않은 지 몇 달이 지나자 나는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이쯤 되면 화를 낼 때가 됐는데 싶어서 불안하고 두렵다. 약을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괜찮겠지 싶다가도 또 불안해진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불안이 올라올 때 멈추는 힘이 생긴 거다. 어, 내가 또 불안해하고 있네 하고 알아차리고 왜 불안해하고 있지?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다. 그냥 일상의 소소한 일들과 아직 닥쳐오지 않은 미래의 막연한 걱정들이다. 그래, 불안해할 필요 없어. 걱정할 것도 없어. 하고 절정으로 치닫는 불안을 멈추는 힘이 생겼다.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고 명령한다. 나에게 불안해할 이유는 지금 없어. 그러니까 편안해도 되고 행복해져도 돼. 나에게 명령한다. 

 

 그러면 행복해지냐고? 편안해진다. 막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만,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아 보이고 편안해진다. 기분이 좋다. 나를 억누르던 어두운 감정들이 물러가고 희망이 솟아오른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하루를 살아갈 힘 정도만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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