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이 감옥에 갇히는 시대
지금까지 누군가 이 브런치북을 처음부터 읽어왔다면 아마 눈치챘을 것이다. 이 브런치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있다. 첫번째 파트에서 나는 니체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두번째 파트에서는 포스트모던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이제 마지막 파트에서 미셸 푸코와 규율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예도 선생님은, 철학자 열명을 모아 놓아도 푸코 한 사람만큼 놀랍지 않다고 하신다. 그만큼 푸코의 기획은 도발적이고, 접근법은 기발하다. 그런데 그가 쌓아 놓는 논리와 증거들은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단단하고 방대하다. 미셸 푸코의 책 중 <말과 사물>은 내겐 인생을 바꾼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틀을 가지게 되었다.
푸코의 주요 관심사는 지식과 권력 사이의 관계다. 당연하다고, 그런 개념은 갖고 태어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무의식적인 것들이(광기, 폭력, 섹스 등이) 실은 지식이 권력에 복종한 결과로서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들이라는 것을 푸코는 밝힌다. 예를 들면, 놀랍게도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개념은 발명된 것이다. 그 개념이 탄생한 것은 불과 1백년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음 두개의 포스팅에서 하게 될 것이다)
오늘 이야기할 <광기의 역사>는 푸코의 초기작품이다. 요즘에는 별로 보이지 않지만,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동네마다 머리에 꽂을 꽃고 샤랄랄라 뛰어다니는 언니나, 귀신을 본다며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리는 할머니, 동생들 놀이에 끼어서 깍뚜기 노릇을 하던 바보형이 한두명씩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광인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광인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발명된 개념임을 이 책에서 밝힌다. 놀랍지 않은가? 광기가 발명된 개념이라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1656년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파리에 로피탈 제네랄(L’hopital General)이라는 수용소를 설치하라는 칙령을 내린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늘 나병(한센병)의 전염과 확산이 사회적 문제였다. 로피탈 제네랄은 나병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시설로 설치되었다.
로피탈 제네랄의 설치 이후, 나병의 전염과 확산이 획기적으로 감소하고 거리에 나병 환자가 보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깨달았다. 아, 문제가 되는 것을 격리하면 그 문제가 해결되는구나, 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격리를 일종의 문제 해결 방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로피탈 제네랄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차례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부랑자, 사기꾼, 범죄자는 물론이고, 일하지 않는자, 매춘부, 가난한자도 로피탈 제네랄에 수용되었다. 신을 믿지 않는자, 즉 무신론자도 수용되었다. 그리고 언어를 착란하는 자, 광인도 로피탈 제네랄에 수용되게 되었다. 루이 14세의 칙령 이후, 파리 인구의 1%가 이 로피탈 제네랄에 감금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을 ‘대감금’이라고 한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엔 정말 황당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문제가 보이면 해결을 해야지 눈 앞에서 치운다고 해결이 되는가? 우리는 당연히 범죄자는 감옥에, 가난한자는 복지시설에, 광인은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7세기 프랑스 사람들은 범죄자와 가난한자와 무신론자와 광인을 똑같은 장소에 가두었다.
‘그야 그 시대 사람들이 무식했으니까’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푸코 이전의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넘어갔다. 하지만 푸코는 넘어가지 않는다. 푸코는 범죄자와 가난한자와 무신론자와 광인이 똑같은 장소에 수용된 까닭을 묻는다. 대체 이러한 일이 왜 가능했는가? 푸코의 분석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놀라운 결론이 기다리고 있다.
<광기의 역사> 이후에 집필한 <말과 사물>에서 밝히고 있지만,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의 사고를 지배하는 인식의 틀이 있다. 푸코는 이를 에피스테메(epistēmē)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16세기 르네상스 시절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에피스테메는 ‘닮음’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닮은 것은 같은 속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예를 들어보자. 호두는 뇌를 닮았다. 호두의 껍질은 인간의 단단한 두개골을 닮았고, 그것을 깨뜨리면 그 안에 뇌와 모양이 유사한 호두알이 나타난다. 16세기 사람들은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믿었다. (호두는 불포화지방산과 DHA를 가지고 있어 실제로 두뇌 발달에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 시절 사람들이 호두와 뇌에 관계에 대해 옳게 알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다)
16세기 사람들이 보기에 광인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은, 선지자가 방언을 쏟아내는 것과 닮은 것이었다. 그래서 16세기 사람들은 광인이 악마에게 정신을 지배당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신의 존재를 웅변하고 있으므로 광인은 가까이 두어야 했다. 그래서 광인은 그 시절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에피스테메는 변한다. 그리고 변화는 연속적으로 오지 않고 단절적으로 온다. 푸코는 르네상스 시대를 끝내고 고전주의 시대를 연 사람으로 데카르트를 지목한다. 데카르트는 1641년 출간한 <성찰>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 유명한 말을 쓴다. 인간은 그 존재의 증거로 이제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의 주체는 이성이다. 이성이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미치지 않아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성이란 '꿈, 오류, 광기가 아닌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광기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 이성의 사유 조건이 된 이상 광기는 이성으로 부터 분리, 배제되어야 한다. 이성에 바깥에 놓여 타자로 설정된 광기는 마침내 추방을 당한다.
이것이 푸코가 밝히는, 광인이 로피탈 제네랄에 갇히게 되는 원리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광기와 광인이 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6세기의 광기는 17세기의 광기와 같았다. 오직 변화한 것은 사회 공간의 질서 뿐이다. 그래서 16세기의 광인은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았지만 17세기의 광인은 수용 시설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 이야기다. 광기는 변하지 않지만, 그 시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인식 체계의 변화만으로 인간이 아무 죄 없는 인간을 규정하고, 가두고, 묶어 둘 수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한다. 하지만 푸코의 폭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푸코는 우리가 정말 바라보고 싶지 않았던 사실 앞에 우리를 세운다.
루이 14세는 로피탈 제네랄의 설치를 카톨릭 교회에게 승인을 받았다. 즉 이 시대에 구제의 과업은 교회에서 국가로 넘어가 있었다. 종교가 물러난 국가의 시대에, 죄의 자리에는 무질서가 놓인다. 국가가 스스로를 질서와 동일시하듯, 도덕이 속죄의 종교를 대신한다. 국가는 이제 광인에게 '죄'를 묻는다.
푸코는 본문에서, 18세기 초 아르장송 지방의 내치 감독관이 어떤 여성을 로피탈 제네랄에 감금 의뢰하기 위해 작성한 서류를 인용한다.
남편의 이름이 보두앵인 16살의 여성이, 자신이 남편을 전혀 사랑하지 않으며, 자신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은 없고, 누구라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두 차례에 걸쳐 이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온갖 파렴치하고 이상한 주장에 익숙해져 있는 나 조차도 이 여자의 논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논리에 따르면 결혼은 그저 하나의 시도에 불과하다.
나는 이 여성이 정상적 도덕관념의 심각한 부재를 갖고 있으므로, 미친 것이 틀림 없다고 결론지었다.
― <광기의 역사> 중에서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병자 낙인이 찍혀 로피탈 제네랄로 갔다.
이제 광기는 윤리적 과오와 연관된다. 이후 150년에 이르는 유럽 고전주의 시대 전체에서 광기와 부도덕은 분리 불가능했음을 푸코는 밝힌다. 푸코에 의하면 이 감금은 도덕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17세기 유럽에서 혼돈에 반하는 질서는 선善의 위치에 있었다. 국가는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하듯 도덕을 수호하려한다. 재범 가능성 있는 죄인들을 감옥에 수감하듯, 무질서를 개선할 수 없는 광인들은 병원에 수용된다. 이제 감옥과 병원이 같아진다.
대체 도덕이 무엇이기에 17세기의 국가는 광인에게 '죄'를 물을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 도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이 글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이어서 도덕에 대한 것은 간략하게 줄일 것이지만,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도덕의 실체를 폭로한 것은 다름이 아닌 니체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도덕의 역사를 바꾼 질문을 던진다. 니체의 질문은 이러하다. '도덕은 도덕적인가?' 어떤가? 도덕은 과연 도덕적인가?
니체에 의하면 도덕은, 실은 도덕과 별로 관련이 없다. 도덕은 자신이 조건화된 사회의 관습체계다. 도덕이 도덕에 관련된 관습의 준수라면, 도덕적인 인간은 실은 '부도덕한' 인간이 될 상당한 확률을 갖는다. 17세기 조선의 극히 정상적인 도덕관념을 가진 도덕적인 선비가 보기에 현대의 나와 당신은 아마 정신병자로 간주될 것이다. 도덕은 늘 에피스테메에 속한다.
또한 광기를 죄로 다스리려는 시도의 잔재는 현대에도 남아 있다. 동성애는 1987년에 와서야 미국 정신의학회가 편찬한 정신질환편람(DSM)에서 삭제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재단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은 도덕적 혐오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게임 중독이 정신병이니 한의학으로 치료하겠다는 허튼 소리를 하는 유사 의사도 있고,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관리하기 위해 중독예방법을 입안하겠다는 국가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푸코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나와 다른 것'을 광기로 규정하고 도덕으로 재단하려는 시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광기의 역사>의 앞 절반 분량의 요약이다. 이후 절반의 분량에서 푸코는 18세기말에 또 한번의 에피스테메 변화가 나타나고, 경멸적 박애주의의 관점에서 로피탈 제네랄의 해산과 광인 해방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사회 통합의 논리 따위가 아니고 의학이 진리가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광인에 대한 대상화 과정의 결과임을 밝힌다. 이 내용 또한 너무나 놀라운 얘기지만 이미 어마어마하게 내용이 길어져서 <광기의 역사>에 대한 소개는 여기에서 마쳐야 할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광기의 역사>가 궁금해졌다면,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바로 읽지 말고 허경 교수님의 <광기의 역사 읽기>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푸코의 질문을 한 줄로 줄이면 이러하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시대에 따라 광인의 정의와 광인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는 것 처럼, 푸코에 의하면 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고정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인가를, 어떤 가치를, 혹은 인간이나 당신을 공간 속에 고정하려는 어떠한 시도만 있을 뿐이다. 부디 당신이 이 시도를 간파하고, 스스로 규정됨을 슬기롭게 회피하고. 그리고 누군가를 어딘가에 고정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깨닫고 이제 그만두기를. 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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