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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카게살자 Jun 03. 2024

그해 여름, 프라하

공항 밖은 캄캄했다. 체코 프라하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자정이 넘어있었다. 프라하까지 직항이 없던 시절, 인천에서 루프트한자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다시 공항에서 몇 시간을 대기한 후 체코 항공을 이용하여 입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하까지 비행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승객은 단 세 명. 승무원은 여섯 명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승무원들에게 괜히 미안했다. 승객보다 승무원이 더 많은 비행기를 타다니…     


승무원들은 친절했다. 그러나 동양인이 타고 있었던 것이 신기했던지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없는지 관심 있게 물어보고, 내 입맛에는 맞지도 않는 딱딱하고 맛없는 바게트만 계속해서 가져다주었다. “더 이상 그만 주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물론 말하지는 못했다. 객실 안에 있던 다른 승객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처음 만나면 항상 형식적으로 묻는 “How are you? Where are you from?”도 이젠 지겨웠다. 긴 대화를 이어 나가기엔 영어도 짧고 사실은 궁금한 것도 별로 없었다.     


왜 나는 그때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오라고도 하지 않았던 프라하에 그토록 가고 싶어했을까? 마치 혼자만 짝사랑하던 여인을 향한 열병처럼 그곳에 가고 싶었다. 아무 사진이나 찍으면 엽서로 변한다는 그곳, 빨간색 지붕이 동화처럼 펼쳐져 있다는 그곳, 나는 프라하에 가고 싶었다. 그땐 그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프라하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그때 겉멋이 잔뜩 들어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꾸역꾸역 읽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들과 그가 살았던 생가를 꼭 한번 가보고 싶다던 지금 같으면 전혀 비생산적인 감성 때문이었다.     


게다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강렬한 연기로 매우 인상 깊었던 배우가 줄리엣 비노쉬였는데, 우연히 시간을 때우려고 보게 된 〈프라하의 봄〉에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또한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원작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사실을 알고서는 나는 프라하에 무조건 가야겠다고 아니 가야만 한다고 참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 욕망은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습게도 의무감으로 변해갔다. 이제 그곳을 여행해야만 하는 내 나름의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공항에 내려 내가 정한 스스로의 배낭여행 원칙을 어기고 숙소까지 택시를 탔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다. 어쨌든 가로등도 제대로 없고 동유럽 특유의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정비도 잘되지 않은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그냥저냥 평범했다. 하기야 돈 아낀다고 저렴한 곳만 골라서 숙소를 잡았는데 쾌적하고 좋은 숙소를 기대한 내가 이기적이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른 아침부터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프라하 구시가지 근처에 위치한 카프카의 생가였다. 단출하고 평범해서 하마터면 찾지 못할 뻔했다. 이곳은 이미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고 볼 것은 별로 없었지만, 카프카가 태어나서 41세에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다음은 카프카의 작업실로 향했다. 여기도 크지 않고 아담했다. 그는 여기에서 『시골 의사』, 『회랑 관람석에서』와 같은 작품들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못내 아쉬웠던 것은 카프카가 잠들어 있는 유대인 묘지를 가지 못한 것이었다. 찾아가서 절이라도 두 번 올리고 소주가 없으니, 마트에서 맥주라도 사서 한잔 올리고 왔어야 했다.     


그다음부터는 평범한 배낭여행자들이 누구나 흔하게 하는 그런 여행을 했다. 구시청사에 있는 600년이 넘었다는 천문시계를 보러 가서 매 시각 정각 해골이 줄을 당기면 30초 정도 볼 수 있는 12 사도 인형을 보겠다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도 하고,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보다도 100년을 먼저 로마 교황청에 맞서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라며 담대하고 용기 있게 외치다가 화형을 당한 체코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체코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의 중요한 장소이며, 중세부터 현대까지 체코 역사의 중심지라고 하는 바츨라프 광장에 가서 그때 희생된 시민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그리고 물보다 쌌지만, 맛은 최고였던 맥주를 마시며 광장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하게 한참이나 구경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아무 트램이나 타고 목적지도 없이 어디론가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9세기 말부터 역대 왕들이 살았다는 프라하성에 가면 보통 성 비투스 대성당을 방문하게 되는데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유럽 최고의 유리공예 기술을 이용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갑자기 나도 가톨릭 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어서 멋들어진 석조다리 카를교를 천천히 걸으며 거리의 예술가들이 연주하는 곡을 듣고 있으면 체코 사람들의 낭만이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토록 여행하는 것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항상 같은 생활의 반복이 싫어서, 먹고살려고 할 수 없이 매일 해야 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서, 아니면 새로운 영감이나 자극을 받아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음에서, 이것 외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프라하를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가? 아니 굳이 특정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왜 그토록 떠나기를 갈망하는가? 사람들은 정말로 여행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가? 삶에 의미는 꼭 여행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가?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길을 떠나는 것에는 이렇게 대단한 의미와 이유는 없다.     


다만 나는 아직도 낯선 곳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두렵기보다는 설렌다. 낯선 거리를 내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홀로 걷고 있으면 아직은 더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욕이 솟구친다. 나에게는 아직도 가봐야 할 멋진 곳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그해 여름, 프라하 구시가지 고즈넉했던 밤거리와 예쁜 돌들로 포장되어 있던 그 뒷골목 같은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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