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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니 Nov 03. 2023

가족사전 #3

 어린 두 남매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 빼앗겼다. 아빠는 10살, 고모는 6살 난 어린 고아들이었다. 우리 아빠와 고모는 자신의 부모가 남겨주신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생각도 힘도 없었다. 그래서 빼앗겼다. 곳간이 넉넉한 어떤 자비로운 이웃이 있어서 고아가 된 어린 두 남매를 불쌍히 여겨 돌봐주고 거둬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었고, 부모를 잃었고, 형제를 잃었으며, 자식을 잃었다. 지금 당장 잃지 않았어도 곧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엄습해 올 수 있는 위협과 죽음이 있었다. 그래서 불안에 떨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 분열되고 병든 시대 속에서 자기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라면 더 가지려고 더 지키려고 애쓰지 않았겠는가 싶다. 나는 그 시대를 그렇게 이해해야 사람이 밉지 않을 것 같다.


 친척들은 고아가 된 어린 남매를 부양한다는 이유로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남기고 간 집과 땅을 모두 챙겨갔다. 그리고 아빠와 고모는 어려서부터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아빠는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까지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학교를 보내주려 했던 친척은 없었다. 그래서 아빠의 학력은 국민학교 중퇴이다. 아빠는 한글이라도 떼었지만, 고모는 학교 문 앞에도 전혀 가본 적이 없었으므로 오랜 세월 동안 까막눈이었다.


 아빠는 스무 살 무렵 군대에 가며 친척 집에서 나올 수 있었고, 고모는 열일곱 살 무렵에 친척집을 도망 나왔다. 일찍이 잃은 부모의 얼굴을 이제는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고모였다. 소녀로 자라기까지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해 지켜주고 함께 해주었던 오빠의 존재. 아빠는 고모에게 부모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군대에 가버렸으니 함께 해줄 이가, 의지가 될 존재가 누가 있었겠는가. 고모는 혼자서 더욱 서럽고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고모는 밭에서 죽어라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돈 한 푼 손에 안 쥐어주고, 그렇다 해도 하루 한 끼 따뜻한 밥 한 공기를 얻어먹을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곳에 있으면 식모처럼 평생 동안 일을 하다가 돈 한 푼 못 모으고 죽겠다싶어 고모는 열일곱 살 되던 무렵 한 밤 중에 도망 나왔다. 돈 한 푼 없이 도망 나왔지만, 이제는 무엇이 두려우랴. 시내로 무작정 걷고 또 걸어 여기저기 일을 해주고 비행기표값을 모았다. 그리고 돈을 모은 뒤에는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로 상경하여 숙식을 해주는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 뒤로 한참 동안 고모는 제주로 내려오지 않았다.      


 아빠는 군대를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친척집으로부터 나올 수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서는 동네 중매쟁이를 통해 옆 마을 사는 여자를 만나 곧장 결혼을 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아빠의 얼굴은 동네 여기저기서 잘생겼다고 소문이 났었다. 빼어난 외모와 건장한 체격 덕분에 마을 중매쟁이가 여자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렇게 첫 번째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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