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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니 Jan 05. 2024

가족사전 #아빠라는 존재 5


이번에도 아빠에게 중매쟁이가 찾아왔다.

아빠는 양장점을 하며 아들을 혼자서 우고 있었다. 쉽지 않았다. 미싱기 페달을 돌리며 바느질을 하면서도 곁에서 혼자 노는 아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떠난 아내를 원망하며 망연자실 슬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세 살이 지난 아들은 여기저기 헤집어 놓으며 놀기 시작했고, 아이는 혼자 놀다가도 이리 부딪히고 저리 넘어져 엉엉 울기도 했다. 근처에 살며 아빠의 소식을 알게 된 마을 아주머니들이 간혹 양장점에 들어와 아이와 놀아주다 가곤 했다. 측은한 마음 때문이었다.


"각시가 무사 나가부러샤(아내가 왜 떠났느냐), 이추룩 물애기 놔뒁.. 정신도 꺾어진 아이주(이렇게 어린 아기를 놔두고.. 정신이 이상한 아이다).  어떵 어멍도 어시 너 혼자 키울거라?(어떻게 엄마도 없이 너 혼자 키울 것이냐)"     


아주머니들의 걱정 서린 말이었겠지만 아빠는 그런 소리를 듣는 날에는 더욱 속이 상했다고 한다. 당장이라도 술을 사 마시고 싶었지만 아이 밥을 차려주기 위해서라도 참아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던지 상관없이 혼자 힘으로 꿋꿋이 키워볼 생각이었다. 떠난 아내는 아이를 원하지도 않았다. 냉정히 아이를 맡기고 떠나버렸다. 혹시나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은 아닐까 의심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핏덩이를 떼어둔 채 떠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생각을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버릴 사연이 무엇이 있겠는가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지고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 아들을 보았다. 사는 게 어렵다지만 어떤 노력을 해서든지 내가 아들 하나야 키우지 못하겠는가 싶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 잘 먹고 잘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 그래도 속상한 마음에 울화가 치밀고 눈물이 날 때에는 아들을 껴안았다. 그리고 이렇게 아들에게 말했다.


"아방이 너 하나 못 키우크냐.(아빠가 너 하나를 못 키우겠니) 커서도 어멍 생각하지 말고 어멍한테도 가지 말고 아빠영만 살자(커서도 엄마 생각하지 말고 엄마한테도 가지 말고 아빠와만 살자)"


마을사람들은 오며 가며 아빠의 딱한 모습을 보고는 중매쟁이에게 부탁을 했다.

"시아 얘기 들어수꽈(시아 얘기 들었어요?). 아방 혼자 막 애썸수다(아빠 혼자 막 애를 쓰고 있어요). 아덜도 경 고운디 어멍이 정신이 나갓주마씸(아들도 그렇게 고운데 엄마가 정신이 나갔나지요). 아직 말도 잘 못곧는 아덜 남겨뒁 집나가수다(아직 말도 잘 못하는 아들 남겨두고 집을 나갔어요). 시아 어떵 여자 하나 해줍써(시아 어떻게 여자 하나 해주세요). 홀아방이 막 불쌍해마씸(홀아비가 되어 정말 불쌍해요)"


중매쟁이가 이 얘기를 듣고 아빠에게 또 여자를 소개해 주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딸 하나 혼자 키우는 여자가 있는데 일도 잘하고 얼굴도 참하다고 했다. 딸은 2살이 조금 넘었는데 남편이 일도 하지 않고, 여자가 돈을 벌어오는 족족히 술을 사 마셔 참다 참다 견디지 못해 이혼을 했다고. 아빠는 이번에도 중매쟁이의 말을 듣고 소개해 주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근처 다방으로 나갔다. 아이 혼자 키우며 고생하는 여자 치고, 그녀의 얼굴은 환하고 고왔다. 딸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도 괜찮았다. 어쩌면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신도 어린 아들을 혼자 어렵게 키우고 있으며, 이 여인도 혼자서 딸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가. 서로의 아들딸을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며 오손도손 살아주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엄마를 닮아 딸아이도 예쁘고 귀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빠는 중매쟁이가 소개해 주는 두 번째 여자와 다시 결혼을 했다. 열심히 서로를 아껴주고 서로의 아이들을 돌봐주며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둘째 아들도 낳았다. 둘째 아들, 그는 다시 말해 나의 배다른 작은오빠가 되는 셈이다. 작은오빠와 나는 9살 차이가 난다. (큰오빠보다는 작은오빠와 지낸 시간들이 조금 더 많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조금 더 다루어 보겠다.)   


이제는 둘째 아들까지 낳아서 다섯 식구가 되었다. 그래도 정답고 좋았다. 아빠는 이번에는 결혼은 잘했다고 생각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두 번째 아내는 살림도 열심히 하고 때가 될 때에는 일도 찾아 할 만큼 부지런했다. 비록 친자식은 아닐지라도 그녀의 딸은 사랑스러웠으며, 아빠를 정말 친아빠로 생각했다. 아빠도 자신의 딸처럼 생각하며 예쁜 옷도 사 입히고 잘 놀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의 일이다. 아빠는 일이 끝나 집에 오니 그녀의 딸이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아빠. 오늘 어떤 오빠가 우리 집에 왔어. 엄마가 그 오빠한테 돈도 줬어"

딸아이가 남편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부엌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아니, 그게 - "

그녀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주저하고 망설이며 입을 떼지 못했다.


"야이가 무신 말을 곧는거라?(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게 신디 돈을 줬다는거라?(누구한테 돈을 줬다는 거야?)"

아빠는 그때까지만 해도 정황을 잘 몰라 상냥하게 그녀에게 물어봤다.


"아니우다. 은주 먹을 거 호나 사줭 오당 불쌍한 아이 지나가난 뭐라도 호나 사먹으랜 호큼 줘수다. (아니에요. 은주 먹을 거 하나 사주고 오다가 불쌍한 아이가 지나가니까 뭐라도 하나 사 먹으라고 조금 줬어요.)"


아빠는 그날 별문제 삼지 않고 그렇게 지나갔다고 한다. 아빠는 무엇인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때에는 마을에 부모 없이 사는 아이들도 있었고, 과자 하나 사 먹을 형편이 못되어 다른 친구들이 먹는 것만 구경하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했다. 전에 각시와는 다르게 돈에 인색하지 않고 불쌍한 아이에게 과자 살 돈을 준 아내가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그녀의 딸은 이번에도 아빠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아빠, 오늘 엄마랑 OO중학교 갔어. 엄마가 거기서 저번에 돈을 준 오빠에게 또 돈을 줬어"


아빠는 그날 처음으로 두 번째 아내와 크게 다투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아들 하나가 더 있었다. 전남편 사이에서 지금의 딸과 아들을 낳았고, 아들은 전남편이 키우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일을 좀처럼 하지 않아 아들이 못 먹고 배가 몹시 고파 자신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녀는 아빠에게 속여서 정말 미안하지만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고 빌었다고 한다.


아빠는 그녀의 속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물론 아들 하나가 더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것에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남편을 다시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배를 굶어 엄마를 찾아온 아들에게 어미 된 심정으로 밥 사 먹을 돈을 조금 쥐여준 일이라 생각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는 그녀에게 당신의 아들에게 돈을 주어도 좋으니 자신과 의논하고 상의하여 돈을 줄 것을 당부했다. 아빠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그녀의 자녀들을 품고 새로 이룬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빠의 뜻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그녀의 전남편은 일도 하지 않으면서 아들을 자신이 양육하길 원했고 급기야 돈까지 몰래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러한 상황들과 늘 굶고 다니는 자신의 아들을 지켜보기 힘들었다. 아빠 몰래 틈틈이 돈을 자신의 아들과 전남편에게 주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녀의 딸이 아빠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빠는 아내의 평소와 많이 달라진 모습에 그녀의 딸에게 먼저 물어보았다고 한다.


"은주야. 어멍이 요 근래 다른 사람신디 돈 주는 거 본적 이샤?(은주야. 엄마가 근래에 다른 사람한테 돈을 주는 모습을 본 적 있니?)"


"응. 어제도 엄마가 형기오빠한테 돈 줬어. 형기오빠 지난주에도 왔는데 그때도 돈 줬어."


그날에 또 한 번의 큰 다툼을 일어났다. 그녀는 곱고 순했던 얼굴을 잃고, 어쩌냐며 그 자식도 내 자식인데라고 분노하고 펄쩍 뛰며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돌변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빠는 그동안 삭혔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빠는 그날 그녀를 심하게 때렸다.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아빠를 비롯해 많은 남편들이 아내를 때렸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빠의 가정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구조였다.


매일매일 큰 다툼과 폭력적인 상황이 일어났다. 아빠는 급기야 일도 멈추고 술을 마시고 와서 그녀를 때렸다. 아이들의 두려움 섞인 울음소리, 비난과 쌍욕이 가득 섞인 남자와 여자의 소리가 매일 밤마다 울려 퍼졌다. 그녀는 결국 아빠에게 이혼을 하자고 했다. 아빠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수없이 여러 번 설득했지만 이미 돌아선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아빠는 결국 두 번째 아내와도 이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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