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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n 17. 2024

친절한 일본인

일본에서의 첫 저녁식사


오래전, 뉴질랜드에 몇 달간 머무르다 한국으로 귀국할 때의 일이다.    

 

내가 선택한 항공편은 뉴질랜드를 출발해서 일본 오사카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 편이었는데, 오사카 공항에서 1박을 경유해야 하는 항공편이었다.     


1박을 하며 경유하는 항공편을 선택한 이유가, 귀국일정 때문이었는지 혹은 비용이 저렴해서 선택한 것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나로서는 일본땅은 처음으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뉴질랜드는 멀다.

오랜 비행시간 때문에 오사카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때 필요했던 건 ‘적당량의 음주를 곁들인 저녁식사’와 ‘샤워’,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 뿐이었다.     


오사카공항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첫 번째 희망사항인 ‘적당량의 음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오사카 공항을 배회하였다.


이곳저곳을 우선 구경하고 나서, 제법 맛있어 보이는 카레라이스 사진이 붙어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가 일본식당에서도 충분히 음식주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일본 식당의 종업원들은 영어를 단.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기본적으로 음식 주문정도는 가능하리라 예상했었는데, 

종업원들이 일.본.말. 외에는 단 한마디도 할 줄 모르다니, 

정말로 신기했다.


그들은 그저 친절하기만 할 뿐이었다.  

   

카레라이스를 먹고 싶었던 나는 종업원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문 앞에 붙어있는 카레라이스 사진을 보여주며 주문을 했다. 

사케도 주문했다.


종업원은 친절하게 하이.하이 를 외치고 돌아섰다.   

  

잠시 후 종업원 도쿠리에 들어있는 사케를 한 병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끝.   

  

(한국처럼) 간단하게 단무지라도 약간 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는 종업원을 불러 물어봤다.

사케와 함께 먹을 뭐 간단한 거 라도 주는 게 없느냐고.


역시 일본 사람은 나의 영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으며 나는 답답하기만 했다.

그들은 내가 얘기하는 동안 친절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옆자리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일본 남자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남자가 내 말을 일본말로 통역하여 종업원에게 전달해 주었다.     

말을 전해 들은 종업원은 또다시 하이.하이 를 외치며 호기롭게 주방 쪽으로 걸어갔으며,

사케와 함께 단무지라도 먹을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일본남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드디어 종업원이 온다.

활짝 웃으며 친절한 얼굴로 다가온다.

그리고 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메뉴판이다.     


뭔가를 원한다면 시켜 먹어야지 어디서 뭘 달라고 해?

마치 이런 느낌 이라고나 할까?     

나는 잠시의 안도감이 절망감으로 바뀌는 걸 느끼며 멍하니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었고, 

다행히 그 사이 주문한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아니, 카레가 나왔다.

나는 카레라이스를 주문했는데, 카레만 나왔다.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판단한 나는 다시 종원업을 불러 왜 라이스는 없이 카레만 나왔느냐며 밥을 줘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고, 종업원은 또다시 친절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나선 옆자리의 일본인 남자가 내 말을 일본말로 바꿔 전달해 주었으며,

일본인 종업원은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하이.하이 를 외치며 돌아서 갔다.


다행이다.

사케에 카레만 먹는 불상사는 피하게 되었다.     


드디어 종업원이 온다.

활짝 웃으며 친절한 얼굴로 다가온다,

그리고 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또다시 메뉴판이다.     


이런 친절한 일본인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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