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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n 23. 2024

내 몸에 네 뿌리를 내리렴.

인륜을 넘어 천륜으로...


  

뿌리가 다른 두 개의 나무가 따로따로 자라다가, 하나의 나무로 붙어서 살게 되는 나무를 '연리지'라 한다.     


접목이 가능한 나무의 특성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에, 

흔하지는 않더라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는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각각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나무가 하나의 개체로 살아가는 모습이 매우 신기하다.     

그래서인지 연리지는 영원한 사랑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양분을 얻을 수 있다면 좁고 척박한 공간에도 뿌리를 내리는 것이 식물의 특성이기에, 

다른 나무의 표면에 또 다른 나무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다른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가 없지는 않겠지만,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게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

공원을 지나다가 우연히 다른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나무를 보았다.    

 

얼핏 보아 새 가지가 돋은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커다란 나무 위에 새로운 나무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었다.

나무의 움푹 파인 공간에 약간의 흙이 쌓이고, 그 약간의 흙에 다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뿌리를 내린 나무는,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기에는 흙도 부족하고, 영양분도 부족하고,  공간도 협소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크게 자라지 못하고 작은 크기를 유지하거나 혹은 가뭄에 말라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예상을 깨고 연리지처럼 한 나무로 합쳐져 큰 가지마냥 계속 성장할지도 말이다.     


연리지는 사진으로도 많이 보았고, 실제로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다른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나무가 자라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혹, 이런 경우를 지칭하는 별도의 단어가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다. 

    

바람 타고 날아온 나무의 씨앗이 우연히 다른 나무의 움푹 파인 공간에 쌓인 흙먼지에 떨어졌다.

씨앗은 본능처럼 그곳에 뿌리를 내려 생존을 위한 안착을 시도했고, 큰 나무는 불평 없이 작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서로 다른 나무가 한 나무가 되는 연리지가 남녀의 변치 않는 사랑과 비교가 된다면, 

내 몸에 다른 나무의 뿌리가 내리도록 허락하는 것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그것과 비교될 수 있겠다.

    

내 몸에 뿌리를 내리게 하고, 

내 모든 양분을 나눠주고, 

결국엔 나를 희생하는 그런 부모님의 사랑.     


각각의 뿌리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하나의 몸이 된 연리지와

하나의 나무 위에서 씨앗이 나무로 성장하는 두 개의 나무.


마치

인륜과 천륜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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