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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n 27. 2024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양산인가? 우산인가? 아내의 선택은?

  

무언가를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서부터는 담배와 라이터도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 그저 옷에 달려있는 주머니만으로도 모든 수납이 가능했다.

물론 특별히 짐이 있거나 하여 가방이 반드시 필요한 날에는 가방을 가지고 다녔지만 말이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짐이 조금씩 늘었다.

우선 눈에 관련된 짐이 두 개가 생겼다.

노안으로 인해 가까운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다초점안경이 필요하고, 예민해진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선글라스도 외출 시 반드시 챙겨야 할 필수품이 되었다.     


게다가 여름에 견딜 수 없이 강하게 틀어놓는 에어컨에 대항하기 위해, 얇은 긴팔옷 한 장도 꼭 챙겨야 할 목록에 추가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언젠가부터 외출 시 가방을 들고 다니게 되었다.     


요즘, 여름 햇볕이 강렬하다.

낮시간에 거리를 걷을라 치면 정수리부터 뜨거워지면서 더위가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이럴 때 양산을 쓰면 좋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양산 하나쯤 가방에 넣어서 다녀줘야겠군.

나는 가방 들고 다니는 남자가 아니던가.    

 

아내에게 내가 써도 될만한 양산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내는 선심이라도 쓰듯 무언가를 꺼내 왔는데 유명커피점 우산이다.

아, 그냥 스타벅스라고 하자.

개콘도 아니고 스벅을 스벅이라고 못할 이유가 뭐 있는가.     

아무튼 스벅우산을 내게 주었는데, 아마도 일정수량 이상을 마시면 주는 사은품을 받아서 온 것이겠지.


근데, 이게 우산인가? 양산인가?     

우산이든 양산이든 아내가 양산으로 쓰라고 준다면 양산으로 쓰는 것이 남편의 당연한 도리!


햇살 뜨거운 날, 양산으로 쓰기 위해 이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우산인지 양산인지 헷갈리는 이것을 양산으로 사용하다 보니 좀 애매하다.


우산이 지나치게 얇다.

쓰레기봉투 비닐보다 조금 더 얇은 정도?

너무 얇다 보니 햇볕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한다.


이걸 쓰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살짝 가려진 태양이 여전히 머리 위에서 나를 짓누르는 것 같고,

바닥을 내려다보면 양산의 그림자가 시커멓게 그늘지는 게 아니라, 뭔가 반투명한 느낌의 그림자를 만들어서 나를 태양으로부터 막아주려 노력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이것은 양산이 아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 스타벅스 그거, 좀 얇아. 양산은 아닌 것 같아

- 응, 그거 좀 얇게 나왔대. 그래서 비 올 때 우산으로 쓰기에는 불편하대.

- ??     


비 올 때 우산으로 쓰기엔 불편하고, 햇볕 있을 때 양산으로 쓰기엔 부적합한 이것.

대체 이 녀석의 정체는 양산인가? 우산인가?

아내는 어쩌자고 이걸 받아와서 내게 쓰라고 준단 말인가?     


주말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비 오는 날도 당당히 쓰고 나가서 이것의 정체를 밝혀내고야 말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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