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는 혜성님 Dec 19. 2023

마담토마와 나

전집주인, 현 집주인

마담 토마는 나에게 익숙한 창백함을 느끼게 한 사람이다. 그 창백함이란 우울함을 겪어 본 사람만이 알아보는 육감적인 익숙함이라고나 할까? 오늘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쓰레기를 버리러 집 밖으로 나갔었는데 상당히 아주 익숙한 창백함을 품은 여인이 우리 집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지나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여인나를 부르며 인사를 건네 온다. '안녕 마담 김, 잘 지내요?' 우리 아파트방문한 방문객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마담토마였다. 마담토마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 소유주, 전집주인이었다. 나는 일 년 전에 그녀에게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소유권 넘겨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내 집 앞에 서성거리고 있다. 그녀는 유난히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 창백함이 지나쳐 투명하고, 핏줄까지 보일 지경이다.


남프랑스의 날씨는 일 년 중 300일은 화창한 햇빛을 자랑한다.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남프랑스 사람들은 햇볕에 그을린 듯한 살짝 검은 끼가 감도는 피부다. 내가 마담 토마를 처음 만난 건,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를 매매하기로 결정하고 법무사사무실에서 가계약을 체결할 때였다. 이 아파트를 사기 전에 두 번 정도 이 집을 방문했지만, 집주인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고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방문했다. 마담 토마는 아주 사납게 생긴 큰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고양이는 생긴 것처럼 성격도 사나웠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느라 좁은 로지아에 갇혀있었는데 으르렁대는 소리 때문에  쫓기다시피 집 구경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사나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상당히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했었다.


그런데 법무사와 미팅 시간을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상당히 창백한 낯빛의 중년 프랑스계 프랑스 여성이 중앙 정문 열고 들어섰다. 금발의 긴 곱슬머리에 투명한 피부색,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절제된 화장, 세련된 패션이 눈에 띄었다. 키가 컸었다. 내 남편이 183센티인데 마담 토마는 내 남편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따로 불렀다. 마담 토마와 남편이 한참을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정정한 노인 한 분이 나타났다.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 색깔 그리고 여든은 되어 보이는 것 같은데 꼿꼿한 자세며 큰 키를 보니  마담 토마의 엄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든이 넘는 마담 토마 엄마의 기세는 마담 토마를 단숨에 압도했다. 남편이 대기실로 들어오고 마담 토마와 마담 토마의 엄마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우리 넷은 번갈아 가며 악수를 나누고 담당 법무사의 개인인 사무실로 들어갔다.


법무사는 우리 네 사람을 앉혀 놓고 내가 구매할 집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준공연도며 지금까지 거쳐간 주인들이며, 마담 토마는 몇 년도에 얼마에 이 아파트를 구매했는지도 나와있었다. 마담 토마는 이 아파트에  25년을 살았다고 한다. 마담 토마는 이 집을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인 1990년대 중 후반쯤 750000만 프랑에 구매했으며 마담 토마의 엄마와 공동소유였다. 마담 토마는 이 집에서 두 아이를 키웠다고 했다. 집을 빨리 팔고 싶지만, 또 빨리 파는 거에 대한 아쉬움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 아파트에서 그녀의 인생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추억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법무사는 그녀에게 아파트의 이웃들에 대해 물었는데 상당 생뚱맞은 대답을 내놓았다.


원래 우리 아파트에는 비에 누아(pied-noir)들이 많이 살았었지만, 현재는 프랑스인들만 거주한다는 인종차별적인 말을 했다. 비에 누아 1962까지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프리에서 태어나 살았던 프랑스인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검은 발'이라는 뜻으로 열대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검은 신발을 주로 신었다는 설도 있는 단어다. 삐에 누아들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땅었던 고향들이 줄줄이 독립을 하자, 반강제적으로 프랑스 본국으로 귀국했으며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때문에 삐에 누아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소 인종차별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다른 이야기를 두서없이 이어가려고 하자, 백발의 어머니가 마담 토마의 팔을 잡으며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해 나갔다. 마담 토마는 본인이 간호사로 작은 시골마을에 위치한 국립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해서 나갔기 때문에 큰 아파트가 필요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근무하는 병원 근처의 시골마을에 작은 집으로 아파트 평수를 줄여서 이사 간다고 했다.


가계약 사인이 끝난 후 마담 토마는 나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녀는 나에게 본인이 사용하던 가전제품을 두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나 아주 오래전부터 미니멀 리스다. 그래서 물건을 적게 사고, 공간을 최대한 넓게 쓸 거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입안에 말을 가득 문채 얼버무리면서 꾸물대던 나와 마담 토마의 대화를 엿듣던 남편이 가전제품들을 남겨두고 가시면 고맙게 생각하고 잘 쓸 거라고 대답을 했다. 마담 토마는 우리에게 식기세척기, 프랑스산 오븐, 그리고 미시 비시 에어컨 그리고 건조기까지 넘겨줬다. 마담 토마는 집을 줄여서 가기 때문에 많은 가전제품들을 다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새로 이사한 집에 들여놓을 공간도 없다고 했다. 나는 가전제품들을 일단은 받아서 중고로 되팔던지, 아니면 버리든지 해서 내 선에서 정리하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좋다고 했다. 그 후 마담 토마를 한 번 더 만났다. 가계약을 끝내고 집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 남편과 상의하기 위해 집을 방문하면서였다. 부동산 중개인과 동석한 자리였다.


마담 토마는 이 아파트에 상당히 애착이 있는 것 같았다. 마담 토마가 키우던 사나운 고양이는 마담 토마의 옆에서는 얌전하고 사랑스러운 애완동물로 변신해 있었다. 마담 토마는 집구석구석을 보여주며 마담 토마의 두 자녀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담 토마는 나처럼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매를 키웠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담 토마는 첫째가 딸이고, 둘째가 아들이다. 나는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가 딸이다. 마담 토마는 벽장문을 열고 벽장문 뒤에 있는 두 자녀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면서 떼어내려 했지만, 긴 시긴동인 붙어 있었던 탓에 떼어 낼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당신이 오랫동안 거주하던 이 아파트를 사게 되었으니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면서,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발판용 의자를 선물로 주었다.


마담 토마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섰다는 의자인데, 의자라기보다는 발판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듯하다. 작은 아이들이 세면대 개수대에 키가 닿지 않으니 밟고 올라서 서서 세수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나무 원목으로 만들어진 작은 의자 모양의 발판을 선물 받았다. 발판 윗부분에는 벽돌을 쌓아 올린 벽난로가 불빛을 내뿜는 그림 옆으로 빨간 고깔모자를 쓴 난쟁이 할아버지가 하얀 은 수염을 달고 빨간색 망토를 두른 크리스마스풍 그림이었다. 나는 그 의자가 참 마음에 들었다. 비싸고 요란해 보이지 않는 것이,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게 원목의 작은 발판의 자는 많은 추억들을 품고 있는 물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현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커서 독립을 한 이후로는 일이나, 장보기 외에는 바깥은 출입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동네에 걸어서 오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20년 넘게 알고 지낸 아이들의 친구의 엄마, 아이들의 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친구 한 명 있는데 일 년에 두어 번 만난다고 했다. 그러고는 일 년 열두 달 집에서만 지냈다고 했다. 마담 토마의 창백한 피부는 남프랑스의 찬란한 햇빛으로부터 피해 다닌 결과였다. 남프랑스 사람들은 남프랑스의 뜨거운 햇빛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들은 뜨거운 여름, 숨 막힐듯한 더위 속에서도 마르세유 해변에 누워서 선탠오일을 발라 피부를 태워 구릿빛으로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런 마담 토마가 웬일로 외출을 했으며, 자기가 25년을 살며 자녀들을 키워낸 아파트를 나에게 판 후, 일 년 만에 다시 와서 내 집 베란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담토마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일 년에 두어 번 만나는 아이들의 소꿉친구 중에서 제일 친했던 엄마를 만나러 왔던 길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를 그리워했고 왔던 김에 한번 동네구경이나 하고 가려던 참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시간이 되면 잠깐 올라와서 커피 한잔하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쭈뼛쭈뼛 수줍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 방해되지 않냐? 그래도 되겠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남편도 출근했고, 아이들도 학교에 갔고,  혼자 집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부담 가질 필요 전혀 없다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원하시면 나의 집에서 커피를 마셔도 되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말도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 때에도 꼭 '만약 네가 원한다면' (comme vous voulez)이라는 표현을 꼭 넣어 준다. 내가 아무리 선의로 하는 행동이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할 수도 있다는 배려 차원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나는 '꼼 부블레'를 연발했다. 그녀는 선뜻 나를 따라 들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으리고 하고는 커피를 내렸다. 마담 토마는 '이 집이 이렇게 넓었네요'라고 하면서 곧 크리스마스인데 빈손으로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마담 토마에게 이미 남겨주시고 간 물건들이 많아서 잘 쓰고 있다고 감사하다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넘치게 받은 거나 다름없다고 하면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들의 발판 의자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요긴 나게 잘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식기세척기를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면서 마담 토마가 물려준 식기세척기 덕분에 가사노동이 수월해졌다고 감사에 감사를 연달아 표현했다. 올여름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낼 때 가득 사 왔지만, 거의 다 먹고 조금 남겨 뒀던 이탈리아 과자를 꺼내서 접시에 담아냈다. 마담 토마는 연신 손사래를 치며 부담 가질 것 없다고 사양만 했다. 커피만 비우고 마담 토마는 얼른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나는 그녀에게 나는 늘 집에서 일하니, 주말과 수요일을 제외한 어떤 날이든 방문해도 괜찮다고, 우리 집 커피를 또 마시고 싶으시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나의 뜻을 전했다.


나는 마담 토마가 왜 내 마음에 늘 얹히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창백한 낯빛이 왠지 익숙하다. 내가 우리 집에 이사 온 첫날 나는 마트에서 청소 용품들을 구매해서 왔다. 그런데 막상 사용하려고 하니, 사용할 데가 없었다. 마담 토마는 그야말로 먼지 한 톨 남지 않고 이 집에서 그녀의 모든 흔적을 지웠다. 그녀의 흔적이라고는 벽장문에 붙어있는 그녀의 아이들의 어린 시절 사진, 그것도 떼어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남은 반쯤은 찢겨 나간 그 사진뿐이었다. 그녀는 화장실 벽장에 유리세정제며, 방향제, 그리고 타일 얼룩제거제 등을 남겨 뒀다. 그녀가 남겨준 청소용품 중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용품들도 있었다. 나는 려고 고급 지며, 자본의 가치를 뽐내는 물건보다는 소박하고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물건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녀가 남기고 간 청소용품들이 그녀가 남겨두고 간 가정용품보다 그녀에 대해 훨씬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땅 북한에서도 참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나의 엄마는 흙과 돌로 쌓아 올린 부뚜막에 무쇠솥을 건 부엌을 늘 정성껏 닦았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헝겊 조각을 물에 적셔, 북두갈고리(노동을 많이 해 손가락의 뼈 마디, 마디마다 툭 튀어나온 손) 같은 두 손으로 꾹 짜내어 물기를 빼낸 다음 부뚜막을 닦고 닦고 또 닦았다. 우리 집 흙 부뚜막은  콘크리트처럼 번쩍번쩍 윤기를 내기 시작했다. 내 어머니도 청소를 좋아했는데... 나도 엄마를 닮았나 보다. 나도 청소를 좋아한다. 한글 수업 준비를 하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남은 시간은 전부 청소하는데 쓰는 것 같다. 나는 바닥을 닦고, 부엌을 정리하며 엄마를 추억하는 것 같다. 마담 토마가 남겨준 청소 용품들 중에는 타일의 얼룩을 제거하는 용품, 그리고 기름때를 제거하는 용품, 그리고 곰팡이를 제거하는 각종 청소용품이 있었는데 나는 그녀를 통해, 살아 있으나 만날 수 없는 나의 어머니를 느끼는 건 아닐까?


나는 추억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인 것 같다. 더 나아가 타인의 추억까지도 타인에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나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추억이라는 놈을 지켜 낸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더디게 변화한다. 그래서 나처럼 아날로그적이고, 조금은 구식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마음 놓고 추억을 곱씹으며, 마음을 따듯하게 덥혀가며 살 데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 지구상 어딘가에 프랑스 같은 나라가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꼭 지켜내야 하는 건 아닐까?


마담 토마.... 당신이 25년 동안 닦고 가꿔온 소중한 집을 나도 소중하게 닦고 가꿔가고 있어요.

언제든 커피 마시러 오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수다쟁이들의 나라 프랑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