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다 취한 사람

by 장우성

지금은 2025년 11월 9일이다. 난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술을 파는 독서방에서 읽다가 취해버렸고, 그래서 내가 내 마음의 뒷방에 처박아 놓은 내 완성되지 않은 글(스탑 메이킹 센스를 읽다가 운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쓰려는 마음을 다시 먹게 되었다. 이쯤 되어서는 그게 만약 끝나지 않는 내 일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삶이란 새로운 냄새를 언제나 맡고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은 잦으며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글을 내팽개치고 유튜브나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글의 뒤에 이어서 쓰다 보니 내가 지금 쓰고 싶은 글은 원래 쓰고 있던 글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 갔고, 이건 새로운 일기가 되어야 마땅하겠다. 지금도 취기가 조금이라도 덜 줄어들기를 바라면서 새로운 640밀리 아사히 한 병의 뚜껑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사실 지금 당장은 내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건 지금의 취한 나에게는 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방금 아까만 하더라도 꽤나 인상 깊은 이야기를 내 친구 오빈이와 나눴다. 오빈이와는 돌려 말하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든 것인데, 분명 20살에 오빈이와 유럽을 여행할 때 오빈이가 나에게 “난 니 시를 좋아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실 술에 잔뜩 취했기 때문에 책의 어떤 구절이 나에게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이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기 위해서는 내 시가 어떤 모양이고 내가 왜 그런 식으로 시를 썼는 지도 줄줄 늘어놓아야 할 것이다. 나는 사실 방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줄줄 말하는 것에 대해서 심리적 장벽이 한껏 낮아진 상태이지만, 굳이 이를 줄줄 늘어놓지는 않겠다. 그건 두 가지 이유인데, 첫 째로는 내 말길어병에 대해서 말했던 내 소중한 여자친구의 말이 생각났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사실 그 자세한 사항을 말해야 하는 이유를 잃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내 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줄줄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어느 순간 이 글이 내가 브런치에 올렸던 다른 글과는 다르게 오직 나에게 쓰는 글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어떤 제3의 독자에게 쓰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고, 실제로는 그런 제3의 독자를 바라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 글은 어느샌가 나에게만 말하는, 나에게만 말할 수 있는 독백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쓴 시들의 특성에 대해서, 비록 그 시들의 디테일(상세 정보라고 하려다가 이를 지우고 디테일이라고 바꿨다. 바로 앞의 문장에서 제3의 독자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던 건 자기기만인 것 같다. 어쨌든 이 글은 브런치에 올라갈 것이고, 내 글을 보는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읽힐 것이라는 것을 난 잘 알고 있다.)들은 까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빈이한테 내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본 까닭은 내 시는 돌려 말하지 않는 시였고, 오빈이의 시는 돌려 말하는 시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서 나는 오빈이의 시에 대해서 항상 의문을 품는 것이 있었는데, 오빈이의 시는 대학문학상에서 상을 탔고, 내 시는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시를 항상 좋아했고, 오빈이의 시는 항상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면 오빈이는 항상 시를 쓸 때 돌려 말했기 때문이다. 난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왜 내 시는 대학문학상에 상을 탈 수 없는지 의문이 들었었다. 당연히 나보다 더 시에 대해 잘 아는 어떤 사람이 평가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난 유럽 여행 당시에, 그리고 그전에도 오빈이가 내 시를 좋아한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전화해서 물어봤다. 내가 오빈이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기쁘게 하려고 그럴 수도 있었고, 실제로 내 시를 좋아할 수도 있었고, 내 시의 수준 낮음을 비웃으려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빈이에게 실제로 전화해서 물어봤을 때 오빈이는 실제로 내 시를 좋아했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도 내가 생각한 그대로 내가 명료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였었다. 그래서 오빈이에게 물어봤는데, 그러면 왜 너는 그런 식으로 쓰지 않았냐고 말이다. 오빈이는 별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물론 대답을 내놓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오빈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의 어떤 시들은 돌려 말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돌려 표현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게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아마추어 작가의 시를 누가 읽는다고 사회적으로 돌려 말한다는 것인가? 사실 오빈이가 말하는 자기가 좋아하는 그 시는 지금은 그 디테일은 물론이고 그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대해서 전혀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지금 말해봤자 허수아비 때리기일 뿐이다. 어쨌든 내 시가 사랑할만한 구석이 있다는 것에 난 고맙다. 사실 난 항상 내 시가 사랑할만한 구석이 있다고, 너무 사랑받을만 하지만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그것도 시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내 시를 좋아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시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 다른 이야기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이야기를 다 하고도 시 이야기가 더 하고 싶으면 이 뒤에 이야기하겠다. 이 문장은 안 지울 것이다.


다른 이야기는 지금 내가 메모장에 적은 어떤 내용에 대한 것인데, 그건 내가 나중에 쓰고 싶은 소설의 캐릭터에 대한 내용이다. 그 캐릭터에 대해 묘사한 세부사항들이 있는데, 그 세부사항을 가진 캐릭터는 충분히 소설에 등장할만하다. 내가 읽었던 소설들에는 충분히 나올만한 인물이다. 나는 옛날 소설들만 읽는다. 내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어제 내가 너무 명성에 기대서 그런 소설들만 읽는다고 얘기했지만, 난 왠지 요즘 나오는 소설들이 재미없을 것만 같다. 한강 소설은 재밌지만. 어쨌든, 내가 소설을 진짜 쓸 수 있을까? 난 요즘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디테일들을 모으고 있다. 지금 모은 그 인물은 사업한다고 떠벌리는 사람, 집을 인조 식물로 꾸며 놓은 사람, 질투가 많은 사람, 자기 개발서를 좋아하는 사람, 자기의 생각을 책으로 내고 싶은 사람, “너무 변태 같나요?”라고 말하는 사람, 빈티지 샵에서 저렴하게 사서 조금 몸에 안 맞는 명품 쓰리피스 수트를 입고 재즈모임에 가는 사람, 책을 빨리 읽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다. 주변이나 유튜브에서 본 사람들의 어떤 조각들을 모았다. 이 인물이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지 혹은 배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내가 만약에 소설을 쓴다면 이 인물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난 오히려 자기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웃기게도, 난 내가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조언한 적이 있는데, 브런치 글을 어떤 형식에 맞춰서 올리라는 것이었다. 또, 내 글이 너무 길다고도 덧붙였다. 난 그 말이 굉장히 유용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쓴 글은 완벽한 헛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이 쓴 글에 달린 하트의 개수와 내 글에 달린 하트의 개수를 비교하면서 좋은 수단인가?라고 생각했단 건 시인해야겠다. 아직 소설에서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구상한 여러 캐릭터들이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은 소설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 평가를 듣는 건 별로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 사람들은 내가 무슨 글을 쓰든 다 좋은 글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건 내 친구가 글에 대한 진지한 취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하는 말이다. 여기에 아쉬운 점을 하나 덧붙이자면, 대학교에서 글쓰기 과외를 해준다고 사람을 모아서 그거에 지원했는데 난 선택받지 못했다. 글의 장르는 상관없이 과외해준다고 했지만 내가 글으로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하고 싶다고 지원서에 적어서 날 배제한 것이 틀림없다. 글으로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대학교에서 가르쳐주고 싶지 않은가 보다.


글을 적다가 생각났는데, 시간이 지나면 2025년 11월 9일의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난 지금 수출입은행 1차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11월 11일에 발표한다고 했다. 난 지금 이 면접이 잘 되길 바라는데, 난 대학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아까 글을 적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내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있었는데, 글을 쓰다가 내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전화를 한 시간 동안하고 오다 보니 그 말들이 다 잊혔다. 괜히 윤종신이 가사를 잘 쓰고 싶어서 가족들과 떨어져서 골방에 처박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윤종신이 쓰는 가사는 별로라고 생각하긴 한다. 윤종신은 너무 말이 많고 직설적이다. 예술과 사회를 강의했던 그 교수는 윤종신의 ‘좋니’가 반예술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했었다.


어쨌든 다시 내 글로 돌아가자. 다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내 캐릭터 중에 한 사람은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 관절염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노골적이고 웃긴 설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유머를 완성시키는 건 실제로 내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 관절염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도통 쑤셔서 왼쪽 가운데 손가락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설거지할 때는 아무래도 어떤 손가락이든 사용하게 되기 마련인 것이 문제다. 난 요즘 내가 마치 설거지를 하는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깁스를 해야 하나 싶다. 이 일기를 보는 때에는 내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또,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매우 첫 부분을 읽으면서(앞의 200페이지 밖에 읽지 않았다.) 그전부터 쭉 해오고 있던 인간의 두 부류에 대해서 생각했다. 거칠게 나누기로, 경영학과적 인간과 사회학과적 인간이 있다. 이 두 인간 부류는 내 머릿속에서 나눠진 것이고, 너무 대충 나눈 것이어서 지금 당장 생각하기로도 어떤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누기에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또, 내가 사회조사방법론에서 배운 것과 다르게 두 분류는 전체를 둘로 나누고 있지도 않은 게, 두 분류는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를 둘로 나눈 것이다. 이 카테고리를 먼저 적시했으면 더 엄밀했겠지만, 어쩐지 내 주변에는 대부분 다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 것만 같다. 안타깝게도, 난 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을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경영학과적 인간과 사회학과적 인간을 둘로 나눠 설명하지는 않을 건데, 그 이야기는 좀 더 긴 이야기고, 나중에 내게 시간이 더 많을 때 천천히 풀어내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그전에 어떻게 바보들에 대해서 썼는지 믿기지 않는다. 그때는 아마 시간이 많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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