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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당신의, 당신에 의한, 당신을 위한 순수다

접속4. 나같은 당신에게 건네는 100가지 이야기

by 고하

살면 살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은 단연코 그리움이었습니다. '보고 싶다' 는 순수한 감정은 알게 모르게 신경세포들에 의해 데워지고 두꺼워지더니 해마(Hippocampus) 창고에 그리움으로 쌓이더군요. 어느 날 문득 파란 하늘이 하얗게 눈에 들어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스콜(squall)같은 그리움은 해마(海馬) 창고를 강타하고, 눈물은 계산적인 전두엽을 먹통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여름에도 코끝이 시리더군요.

"당신은 지금 그리운 가요?“

그리움의 대상은 주로 사람과 상황이었습니다. 사람과 상황은 일치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더군요. 그 중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가족이 없는 사람조차 가지는 가장 헛헛하고 슬픈 그리움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가족이 갑자기 그리움으로 바뀌는 꿈만으로도 가슴이 아린데, 이미 그리움이 돼 버린 가족에 대한 그 것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세상 모든 가족의 이별은 폄훼(貶毁)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이더군요.

"당신의 그리움은 무엇일까요?“

시간의 장난으로 헤어졌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정상 이별하고 살아가는 연인들의 그리움으로 너무 뜨거운 나머지 데이고 말았습니다. 치유되지 않는 빨간 염증 하나 정도는 심장에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되더군요. 만일 '그립다'는 마음조차 가질 수 없었다면, 그 빨간 염증은 심장 전체를 불태웠을 것입니다. 그나마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서툴렀던 만큼 덜 아프더군요.

"당신의 첫사랑은 끝사랑이 되었나요?“

특정 상황에 대한 추억(追憶)이 길어지면 그것도 그리워졌습니다. 지나간 특별한 시점 즉 '호시절(好時節)'에 대한 그리움은 주로 행복한 눈물이 맺히더군요. 흙장난하던 5살배기 아이의 손끝에도 케첩 같은 그리움이 잔뜩 묻어 있었고, 첫 해외여행에 나선 온 가족의 웃음꽃도 무지개처럼 하늘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움이 꼭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많은 위안이 되더군요.

"당신의 그리움은 언제 피크(Peak)였나요?“

소소한 아쉬움이 깊어져도 지독한 그리움이 베어 나왔습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새 반지를 잃어버린 것처럼, 만나고 싶어도 찾을 길 없는 현실이 야속해지더군요. 스치기만 한 인연이라 소멸될 줄 알았지만, 세월의 마사지가 더할수록 아카시아처럼 은은하고 장미처럼 진해지는 그리움! 나는 이것을 '낭만 그리움'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집배원이 오지 않는 우체통에 농익은 그리움을 넣고 또 넣는 영화 같은 그리움! 안개처럼 희미하고 고드름처럼 애처롭더군요.

"당신은 낭만 그리움이 있나요?“

P.S.

그리움은 '장기기억과 감정의 슬픈 발라드 같은 낭만적인 선물' 입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흘러만 가는 이 세상에 그리움이라도 없다면, 펄 벅(Pearl Buck)의 쩍쩍 갈라진 대지(大地)처럼 기억과 감정에 알츠하이머가 스며든 것 아닐까요. 그래서 “그리움은 당신의, 당신에 의한, 당신을 위한 순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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