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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10. 2023

D+13 매일매일 네가 좋아하는 참치를 줄게


집사들이 방을 청소하다가 고양이털을 발견했다거나, 혹 운이 좋은 경우 고양이 수염을 발견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송이의 방에서 생각지도 못한 물체를 발견했다. 바로 고양이 발톱이다. 어제 구조자 아저씨와 (송이 기준) 죽음의 술래잡기를 할 때 얼마나 놀랐으면 발톱까지 빠졌나 싶어 안쓰러웠다. 어제의 일이 하루빨리 송이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길 바라며 하루를 시작했다.


밥그릇을 갈아주고, 모래 가루가 흩날리는 바닥을 청소하고, 신선한 물을 갈아주는 것은 어느덧 나의 일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송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 집사의 아침 루틴도 마무리된다. 그런데 오늘 사진을 보니 이상했다. 숨숨집에 깔아 둔 수건에 피가 묻어있는 것으로 보였다.


송이가 무척이나 싫어하겠지만, 숨숨집을 돌려 수건을 빼냈다. 이전에 담요를 갈아줄 때 보였던 무던한 반응과 달리 송이는 잔뜩 놀라 뛰쳐나왔다. 구조자 아저씨하고 있었던 일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었나 보다. 옷방 문이 닫혀있는 것을 본 송이는 어디로 도망갈지 고민하다 모래 화장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또 모래 화장실은 송이의 임시 재난 대피소가 되었다.


긴급 재난 상황에 빠진 송이와 별개로 나는 수건에 묻은 피의 출처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수건의 피가 혈뇨로 인한 것이라면, 상황이 많이 심각했다. 구강 내에 염증이 발생하는 질병인 구내염이 방치될 경우, 염증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 신장 손상, 즉 신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부전이란 몸의 노폐물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질환으로, 고양이의 사망요인 중 2위를 차지할 만큼 심각한 질병에 해당한다. 이러한 심부전의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오줌에서 피가 나는 현상인 혈뇨이다. 일단 침착하게 이 핏자국이 혈뇨일지부터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핏자국의 크기나 형태로 보았을 때, 혈뇨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날 발톱이 뽑혀서 난 피로 보였다. 고양이 발톱이 뽑혔을 때에 대해 검색해 보니, 발톱이 뽑힌 부위에 상처가 감염되면 최대 발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글이 있었다. 정말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구조자님께 말씀드렸더니, 고양이 발톱은 원래 잘 빠지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셨다. 야생의 상태로 각성한 송이를 업어 들고 병원으로 달려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찔했는데, 한시름 놓았다.




인간인 집사가 정신을 놓을 뻔하다 겨우 붙잡기를 반복할 동안, 송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구경을 갔다. 송이는 여전히 똥 모래밭인 화장실에 숨어있었다. 오늘은 송이에게도 무척 힘든 하루인가 보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전 날 구조자 아저씨로 인해 받았던 충격이 전혀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제는 그래도 화장실에서 식빵을 굽는 등 나름대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아니었다. 화장실 가장 깊숙한 곳, 그중에서도 그림자가 지는 벽에 찰싹 붙어있었다. 조심스럽게 상태를 확인하는 나를 보자마자 송이는 냅다 하악질을 날렸다. 그래, 무섭고 서러운 와중에도 씩씩해서 참 다행이다.





보통의 고양이들은 사진을 찍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만 보이더라도 고개를 쏙 돌리는 친구들도 있다.  송이가 카메라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지난 14일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찰칵 소리에 놀라기도 한 날도 있었고 반대로 플래시를 켜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날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시도해 보았다. 사람을 없앤 상태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예전에 브이로그를 찍겠다고 산 6단 셀카봉을 꺼냈다. 자본주의의 메카인 유튜브 시장에서 살아남고자 구매한 물건이 고양이를 위한 애정이 담긴 용품으로 바뀌다니 기분이 묘했다. 셀카봉의 끝에 핸드폰을 달아 조심스럽게 송이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송이는 숨숨집 안쪽까지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듯싶었다. 욕심을 내서 카메라 플래시를 킨 상태로 접근해 보았다.  


카메라 플래시를 정면으로 마주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핸드폰에 달려있는 플래시는 작은 크기에 비해 빛의 세기는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하다. 그렇기 때문에 송이도 즉각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예상을 뒤집고, 송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눈을 잠깐 찌푸릴 뿐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분명 눈이 부실 텐데, 별일 없다는 듯이 가만히 앉아있는 송이를 보니 지난 길생활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도로를 쉴 새 없이 달리는 자동차들, 제대로 숨기조차 어려운 길거리. 어둠의 틈 사이로 간혹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에 내리 꽂히더라도, 그런 것쯤은 별것 아닌 일이었을 것이다. 눈이 아프도록 내리쬐는 불빛보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더 무서운 송이가 따뜻한 집에서의 평온을 이해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비록 수건에 묻은 핏자국이 혈뇨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신장 관련 질환은 고양이에게 심각한 병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었다. 마침 나에게는 남는 핸드폰 공기계가 있어 송이가 화장실 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만약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갔지만 볼 일을 보지 못하고 나오는 행동을 보인다면, 그때는 바로 병원에 데려가야 했다. 혹은 화장실에서 오줌을 쌀 때,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방광염일 수도 있었다. 이 전에 송이가 침대나 바닥에 소변 실수를 한 것을 감안한다면 방광염에 걸렸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마침 집에 작은 삼각대와 남는 핸드폰 공기계가 있었다. 지금은 구매하는 비용보다 수리비가 더 나오는 고물 취급을 받지만, 구매했을 당시인 2019년에는 새롭게 출시된 따끈따끈한 제품이었다. 당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신상 핸드폰이라 무척 설레었던 감정이 잊히지 않아 차마 팔지는 못하고 갖고 있었다. 공기계에 펫 카메라 앱을 깔아 반려동물용 가전제품으로 만들었다. 나중에 이 핸드폰을 보면 송이와의 추억도 생각나겠지. 오롯이 나의 추억만이 담겨있던 물건들에 하나씩 송이와의 기억이 스며드는 중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송이의 하루를 계속해서 지켜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송이가 언제 볼 일을 볼지 알 수가 없어 하루 종일 지켜봐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송이가 숨숨집이 아닌 화장실에 숨어있어서, 화장실 쪽으로 향한 카메라 화면을 보는 것이 마냥 심심하지 않았다. 작은 화면에 담긴 송이의 모습을 크게 보고 싶어서 열심히 알아봤지만, 안타깝게도 펫 카메라 앱이 컴퓨터와 연동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 대의 모니터 화면 구석에 핸드폰을 거치해서 송이를 보는데, 커다란 화면 사이에 놓인 저화질의 영상이 꼭 송이와 닮아 보였다. 옷장 속에서 숨어 지내면서도 열심히 약도 잘 먹고 화장실도 가는 기특한 송이처럼, 비록 구식이어도 공기계는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고양이는 하루의 18시간을 잠만 잔다고 하던데, 송이는 거의 늘 깨어있는 것 같아서 언제 잠을 자는지 궁금했다. 오늘 펫 카메라로 관찰한 결과, 송이는 주변을 경계하느라 몰려오는 잠을 꾹 참고 있었다. 쏟아지는 잠을 꾹 참고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고개가 푹 쓰러졌다.



자기가 잠을 참아야 하는 이유가 뭐가 있다고 저리 열심히 졸음을 참나 싶어 안쓰러웠다. 전에는 편히 누워 잔 적도 있었는데, 어제 있었던 일이 어지간히 무서웠나 보나. 그렇게 한참을 졸다가도 나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커다란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푹 잠들지도 못하고 완전히 깨어있지도 못하며 보내길 몇 시간, 나중에는 너무 졸렸는지 이상한 소리가 들려도 눈만 살짝 떴다 감았다. 자야 하는데 푹 자지도 못하고 자는 송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송이가 너무 귀여워 하루 종일 지켜보았다.


꾸벅꾸벅 조는 송이를 보니 나도 졸려서 한참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송이도 기지개를 피우고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하루를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송이가 밥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너무나도 좋아하는 참치가 담긴 밥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먹었다. 어찌나 잘 먹던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참치에 쓴 약이 섞여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 같았다.


송이야, 앞으로 우리 집에서 있는 동안에는 매일매일 네가 좋아하는 참치를 줄게.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이 집을 채우면, 언젠가 이 집에서 함께하는 무서운 인간도 좋아지는 날이 오겠지?  송이야, 나는 이만 자러 가볼게.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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