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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20. 2023

1. 디지털 성폭력의 세계로 들어갔다.

20201010



[트리거 주의] 본문에는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습니다.

관련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읽음에 있어 주의를 권합니다.





사실 10월 1일부터 해야하는 건데, 12일이 검수 날짜여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어제에서야 몰아치기로 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하려고 했는데 엄두가 안나서 미루다가 결국 후회하면서 컴퓨터를 켰다. 시작할때는 오늘 7시간, 내일 7시간해서 일주일치 분량을 채우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직접해보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시작을 하려고 야심차게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놓고, 또 사이버수사대 홈페이지를 접속했는데 인터넷 익스플로어 서버가 아니라서 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리 핸드폰 인증을 해도 다시 신고를 위한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고 핸드폰 인증하라는 화면만 떴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인터넷 익스플로어로 접속해야한다는 가이드라인을 기억해내지 않았다면, 만약 일반 시민이 신고하려고 했었다면 이 단계에서 이미 포기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디에도 사이버수사대 사이트에 익스플로어로 접속하지 않으면 신고가 안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신고하기 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는 이제 인터넷 익스플로어가 아닌 다른 브라우저를 가동하고 있어서, 인터넷 익스플로어를 깔기에는 답도 없는 상황이라 시간을 허비했다. 대책이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며 우왕좌왕하던 중, 컴퓨터를 조금 다룰 줄 아는 여자친구가 인터넷 익스플로어를 깔아주었다.​


디지털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을 꼼꼼하게 읽지...는 않고 대강 하다보면 알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동안 취미가 많아 트위터를 오래 하긴 했지만, 설마 단 몇 번의 검색만으로도 아동포르노와 다양한 디지털성범죄영상들을 접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지인능욕을 검색해보았고, 쏟아지는 결과들을 마주했다. 생각보다는 적었다는 게 안도해야할 일일까. 해쉬태그를 붙였을 때 나오는 결과들은 주로 자신이 지인능욕을 해주고 있다는 홍보여서, 이번에는 해쉬태그 없이 검색해보았다. 사진이 우수수  쏟아졌다. 이렇게 쉽게 접하고 구할 수 있는 것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지인능욕에 대해서 일부러 트라우마를 입을까봐 그리고 2차 가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찾아보지 않고 있었어서 내가 순진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지인능욕을 만들고 홍보하는 사진, 지인능욕을 신청한 사람들의 후기, 몇 시간 전에 올라온 홍보글, 그리고 이번 달에도 수없이 이루어진 지인능욕범죄들... 그 사이에서 대체 내가 느끼던 일상 속 평화는 무었이었는가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기에 증거자료를 정리해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했다. 인터넷 익스플로어 접속이 안되어서 한참을 고생하던 것과 별개로 너무 쉽고 간단하게 끝났다. 내가 알 수 있는 정보는 트위터의 링크와, 범죄를 하겠다고 홍보하는 멘트들, 그리고 구매한 자들의 후기들. 이런 정보들로도 충분히 우리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 경찰들의 입장은 다를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음란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내사 종결하겠지. 그러면 피해자는 어디로 가는거지라는 질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루어지는 디지털 성범죄 범죄에서 결과적으로 남는 건 오로지 가해자들의 수익과 피해자들의 피해 영상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인능욕'을 검색하던 중 옆에서 애인이 작업을 도와주다 이건 꼭 신고하고 싶다고 사진을 가져왔다. 처음 접하는 종류의 디지털 성범죄였다. 바로 지인의 사진을 받아서, 그 사진 위에 자위행위 후 정액을 배출하는 것을 영상으로 찍은 후 지인능욕이랍시고 유포하는 범죄였다. 아니, 아마 처벌 근거가 될 법률이 없을 테니 범죄라고 할 수 있을지나 잘 모르겠다. 명백한 디지털성폭력 행위인 이를 그들은 '얼싸'라고 불렀다. ​


얼싸(얼굴 사진에 사정하는 행위를 뜻한다)를 진행하는 사람들의 계정을 찾던 중 자신을 소위 몸짱이라고 소개하는 중학생이 보였다. 순간 과외하던 남학생 친구 중에 헬스에 미친 에가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 애가 운동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올린 후 이런 디지털 성범죄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스쳐지나갔다. 대체 남근질서가 뭐길래 핸드폰 액정에 사정하는 행위가 누군가를 성적으로 능욕하는 행위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자본이 오가는 시장이 만들어질 만한 일인 것인가. 그들의 머리 속, 아니 한국 남자들의 머릿 속에서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지 대략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끝은 내가 상상조차 못하는 종류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동시에 그들이 흔히 말하는 성욕에 미쳐서,라는 말은 그들이 행하는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쾌락'은 단순히 호르몬 작용에 따른 신체적 자극 뿐만이 아니라 남근중심주의에 기반한 강간문화로부터 오는 쾌락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과 같은 인간인 여성을 '능욕'한다는 말이 아주 섹슈얼하고 성욕을 자극하는 키워드로 자리잡을 수가 없다.

처음 해보아서 그런지 디지털 모니터링 작업 자체는 정신이 없었다. 화면을 다양하게 띄워놓아야해서, 처음으로 윈도우 단축기를 활용한 화면 이동 방법을 사용하며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비록 3개의 화면을 돌려가며 작업해야했지만, 사실 간단하고 단순한 작업이라 그렇게 오래걸릴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히 머리로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작업하면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팠다. 정신이 어지럽고 세상이 핑핑 돌아가는 기분이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마약을 하는 기분이었다. 만약 이게 마약이라면, 여성혐오가 그 마약이겠지.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러운 것 같다.

실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 나는 하루에 7시간은 족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건 내 오만이었다. 내일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많이 못해서 죄송하다고 할 생각이다. 어지러움은 가시지 않았지만, 휙휙 넘어가는 화면 때문에 어지러운 거겠지라고 마음을 다 잡으며 2시간 동안 작업을 진행했다. 비록 나는 처음에 뜨는 사진을 보자마자 놀라서 가볍게 과호흡증상이 올라왔지만, 이런 류의 일은 이미 남초커뮤니티에 올라간 나의 얼굴을 보면서도 익숙해진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렇게, 그저 그런 영상과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 그렇게 말라 비틀어져버린 디지털화된 시체일 뿐이라고 다잡으며, 왜 내가 어지러웠는지에 대해서는 무시하기로 했다. 나는 이 일을 잘 해내고 싶고, 또 운동가가 된다는 건 이런 일들이 일상으로 자리잡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파하고 싶지 않았고, 프로답게 덤덤한 자세를  유지하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나중에 가면 아무 감정 없이 대할 수 있는 능률을 가진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막상 힘들다고 적으니까 내가 힘들었나?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지, 사실 작업을 하던 때에는 큰 무리 없이 잘 해낼 수 있을 정도의 감정이었다.

디지털 성범죄의 범죄 종류가 너무 많아 일단 그 중 아동성범죄 관련을 중점으로 시작해보기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있고 아동성범죄가 그나마 강력한 처벌을 받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리영상을 키워드로 검색해보았다. 다행히도 쉽게 영상이나 사진을 찾아볼 수는 없었어서, 확실히 한국이 나아지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내가 스쳐지나가듯이 본 미성년자 불법촬영물 영상이 생각났지만,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영상이 검색을 통해 쉽지 찾아지지 않았다고 해서 관련 소비/구매 트윗들이 안 떴다는 것은 아니었다. ㄹㄹ영상 구해요, ㄹㄹ영상 삽니다 (ㄹㄹ은 로리이다) 등의 트윗은 여전히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불과 몇 일 전에 올라온 것들도 간간히 보였다. 그 중 초딩암캐라는 키워드의 글이 떠서 해당 게시글 신고를 진행했다.​


그 계정의 타임라인에는 딱 봐도 어디서 이상한 사진을 가져와서 합성한 사진과 함께 누군가의 실명일 것 같은 이름을 작성하여 자기가 원하는 바를 할 것을 협박하는 게시글이 떡하니 있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보자마자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이렇게까지 쉽게 아동성범죄가 접할 만한 것인가, 충격적이었다. 나는 다크웹까지는 찾아보고 검색해야지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서버인 트위터에서 이렇게 영상을 사고팔 수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소아성애, 그러니까 남성향 게임에서 많이 나오던 아동성적대상화 일러스트에서나 보던 것들이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벌어진다는 걸 두눈으로 확인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비록 내가 받아들이는 시각정보는 트위터를 통해 소아성애영상들이 오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지만, 대체 이들이 정말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인가에 대한 의심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별다른 심리적인 타격 없이 그렇게 신고를 마무리했다.

약 2시간 동안 신고한 내용들 중 인상 깊었던 계정은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게이 남자아이의 계정이었다. 그 아이는 몇십 기가가 넘어가는 ㄹㄹ영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영상을 사고 파는데 익숙해진 아이 같았다. 그런데 그 계정의 탐라를 내려가던 중 정말 견디기 힘든 포르노 영상이 눈에 떴다. 바로 게이가 똥을 싸는 영상이었다.... 싸기 힘들었다, 너무 컸다 이런 내용이 트윗에 적혀있었지만 영상 속 항문에 보이는 시커먼건 분명 똥이었다. 보기가 너무 역해서 도저히 신고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동안 화장실 불법촬영 사건들을 접하면서 대체 왜 여성의 배변활동이 포르노로 소비되는 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는데, 도저히 지금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대강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 저 계정주는 16살 남짓밖에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저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지 우려스러웠다.

그렇게 몇 개의 작업을 진행하자, 조금 익숙해진 듯 싶었다. 나는 손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서 금방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시간이 2시간이나 지나갔었다. 반면, 내가 한 신고를 진행한 양은 너무나도 미비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기껏해야 4달을 더 하게 되는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일도 작업을 2시간 정도 할 생각이다. 매일 2시간씩 꾸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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