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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Nov 02. 2023

오이고추 된장무침은 기특하다

자취생에게 가장 편한 반찬이 뭔가요?를 묻는다면 나는 오이고추 된장무침을 꼽을 것 같다. 오이고추를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서 양념에 무치면, 오이고추 된장무침이 완성된다. 들어가는 조미료라곤 된장 한 숟갈, 참기름 한 숟갈, 그리고 설탕 한 숟갈뿐이다. 심지어 마늘도 안 들어가고 간장도 안 들어간다! 이렇게까지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해서, 예전에는 오이고추 된장 무침을 만들기 전에 레시피를 굳이 찾아보고 확인했었다. 한국인의 밥상에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몇 안 되는 반찬일 것이다.


오이고추 된장무침과 처음 만난 건 우연히 가던 백반집에서였다. 원래 반찬을 그리 많이 해 먹지 않는데, 이상하게 백반집에 가면 어떤 반찬이 나오던 일단 먹어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마주했는데, 세상에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26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몰랐다는 것이 애통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하여 오이고추 된장무침은 나의 레시피북의 한 페이지에 당당하게 들어가게 되었다.



오늘 오이고추 된장무침을 만들게 된 이유는 어제 먹고 남은 치킨 때문이다. 치킨을 시키고 나면 꼭 절반은 다음 날 반찬으로 먹기 위해 아껴둔다. 치킨과 같이 먹을 반찬으로 치킨무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미묘하게 아쉬웠다. 그때 머리에 떠오른 것이 오이고추 된장무침이었다.


저번에 오랜만에 식자재를 사면서 심심하니까 오이고추를 샀었는데 이렇게 기특하게 쓰일 줄이야! 아주 조금 말랐지만 그래도 아직은 신선한 고추들을 한 움큼 잡아 가위로 숭덩숭덩 잘랐다. 고추를 토막 냈다는 문장을 쓰니까 예전에 페미니즘 유튜브를 하던 기억이 생각난다. 그때 안티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 소위 좌표가 찍혀서, 가만히 스터디윗미 라이브를 하던 중에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려왔던 기억이 난다. 와중에 나는 시청시간을 채워야지만 수익창출을 할 수 있던 상황이었어서, 복이 제 발로 굴러들어 온 셈이었다. 그들을 최대한 붙잡아두기 위해서 작은 고추를 3시간 동안 다졌다. 그때 쉬지 않고 다져서 만들었던 고추지짐도 정말 맛있었는데, 그 맛이 그립다.


아무튼 다시 오이고추 된장무침 이야기로 돌아와서, 치킨과 같이 먹은 무침은 정말 맛있었다! 달면서도 짭짤한 된장무침의 맛이 다른 반찬과는 쉽게 잘 어울리지 않는데, 알고 보니 그쪽도 제 짝이 따로 있었다. 치킨에 김치를 먹어도 맛있지만 기묘하게 맛이 웃돌아서 고민이었는데, 제 몫을 톡톡히 해준 오이고추 된장무침이 기특했다. 그리고 글이 쓰고 싶어졌다.


이유는 별 거 없다. 그냥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앞으로도 집에서 해먹은 반찬이 기특해질 때마다 글을 하나씩 써봐야겠다. 한 때 하루에 몇 시간씩 가스레인지 앞에 앉아 요리를 하곤 했었다. 그 시절을 보내고 나니, 밥상 위에 올려놓던 반찬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접시에 올라온 반찬들이 담고 있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얼렁뚱땅 레시피


            오이고추를 5~6개를 가위로 숭덩숭덩 자른다.

            고추를 손으로 무칠 수 있을 정도의 큰 그릇에 고추 조각들을 담는다.          

            된장 1 숟갈, 설탕 1 숟갈, 참기름 1 숟갈을 넣는다.          

            시원하게 손으로 열심히 무쳐주면 끝이다!           


오이고추 된장무침은 다 좋은데 딱 하나 아쉬운 게 빨리 맛이 변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냉장고에 넣어주면 물이 나와서 맛이 요상해지니, 하루이틀 안에 다 먹을 수 있는 만큼만 해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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