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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Feb 28. 2024

D+155 세상에 못생긴 고양이는 없다



송이는 잠을 자는 장소가 정해져있다. 낮이면 빛이 들지 않는 옷장 속, 저녁이 될 무렵에는 거실에 있는 나를 따라나와 숨숨집에서 잔다. 가끔 집을 비우는 날이면 이불 속에 쏙 들어가 웅크리고 있기도 하다. 밤이 되면 나는 옷방에서, 그리고 송이는 거실 소파 위에서 잠에 든다. 그리고 최근에 하나의 장소가 추가 되었다. 바로 내 머리 맡이다.


고양이를 10년 넘게 키운 베테랑 집사인  친구가 일 때문에 며칠 간 자취방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사람이 근처만 가도 하악질 하던 시절, 송이의 사진을 보자마자 '얘 사람 좋아하네'라는 말을 했던 친구다. 그 친구의 예언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친구의 말이 맞았다. 송이는 사람이 너무 무서웠을 뿐이지,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었다.


송이는 처음부터 친구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었다. '인간 캣닢'이라던 친구의 별명대로, 송이는 친구를 보자마자 무척 좋아했다. 보통 고양이가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면 얼굴을 부비고 다가오는 걸 생각하겠지만, 우리 송이는 그러기에는 너무 겁이 많다. 송이가 숨어있지 않고 거실까지 나와서 가만히 옆에 앉아있거나 함께 사냥놀이를 해주는 것이 송이 나름의 애정 표현이다. 그런데 송이의 애정이 너무 과했나보다.


다음 날 아침, 친구의 표정이 영 피로에 찌들어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으니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미친듯이 사냥놀이를 하고서도, 그러고 나서도 놀자고 얼굴 앞에 대고 콧김을 뿜었다고 하더라. 친구가 재밌으라고 숨밖꼭질을 해줬는데, 송이가 거기에 푹 빠져서 밤새도록 숨밖꼭질하자고 뛰어다녔다고 한다. 나한테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어 기분이 미묘했지만, 송이가 좋아했다면 그만이다. (참고로 내가 숨밖꼭질을 시도했을 때에는 하악질을 했다.)


친구가 집에서 머무는 동안 송이의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조금씩 줄어드는 게 보였다. 나랑 친구랑 같이 거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꼭 따라나와서 옆에 조용히 앉아있곤 했다. 물론 우리가 움직이면 정신없이 혼자서 숨어다니며 액션영화를 찍었지만,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우리 곁으로 오곤 했다. 부엌에 가면 부엌에서 무얼하나 구경하기도 하고, 친구랑 같이 밤새도록 수다떨고 있으면 놀아달라고 야옹야옹 울기도 했다. 정확히는 아앍옭에 가깝지만.


그동안 글을 쓰면서 송이의 울음소리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송이는 처음에 집에 왔을 때부터 근 한두어달 동안은 거의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고양이가 이렇게 조용한 동물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니 조용히 '야옹'하고 울음 소리를 뱉었다. 정말 예쁜 목소리라서 감격스러워서 녹음까지 했을 정도였다. 조심스럽게 울던 송이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밤이면 밤마다 미친듯이 울곤 했는데, 그것 또한 옛날의 일이댜.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지 않거나 자신과 놀아주지 않으면 울곤 한다. 이전에는 꾀꼬리 같은 야옹이었다면 어느 덧 송이만의 색깔이 입혀져 익룡소리로 바뀌었다.



송이의 울음 소리가 익룡소리로 변하는 동안, 길고양이었던 송이는 어느 덧 사람을 좋아하는 집고양이가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아기 고양이가 험하디 험한 길생활을 버텼는지 마음이 아프다. 항상 콧물과 피딱지를 달고 살았던 못난이였던 송이도 제법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예쁜 집고양이가 되었다. 세상에 못생긴 고양이와 강아지는 없다고, 사랑을 받으면 누구나 예쁜 아기가 된다는 말은 뜬소문이 아니었다. 우리 송이, 눈이 단추구멍만한 송이도 예쁘게 사랑 받는 아기고양이로 살아갈 것이다.




송이의 울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금은 거의 울지 않지만, 송이는 한 때 미친듯이 집안을 돌아다니며 울곤 했다. 나는 그 모양새를 꼭 친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찾듯이 울면서 다니는 걸 보고, 고된 길생활 속에서 놓고 온 친구가 있나 싶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들이 동물을 의인화한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진지하게 둘째를 들여야하나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해결책은 점을 보는 것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대체 무슨 흐름으로 이런 결론이 나왔나 싶겠지만, 사실 나의 부업은 타로리더이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한 때에는 한달에 150건 정도 상담을 하곤 했었다. 그 중에서 펫타로라는 것이 있다. 반려동물의 속마음은 무엇인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물어보곤 한다. 보통 나는 나와 관련된 점사는 직접 보지만,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영험한 집을 찾아서 보러 갔다.


신묘하게도 내가 방문한 타로리더님은 캣대디셨다. 고양이의 습성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계셨고, 덕분에 송이가 대체 밤이면 밤마다 왜 우는 지를 여쭤봤다. 답은 간단했다. 송이가 고양이 친구를 찾느라 우는 게 아니며, 아직 집생활이 많이 불안해서 우는 거라고 하셨다. 하마터면 송이의 불안을 가중시킬 뻔했다는 생각과 함께 바로 고양이 안정 호르몬을 결제했다.


그 외에도 송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송이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예를 들어 무던하다고만 생각했던 송이의 모습은 겁에 잔뜩 질려서 얼어버린 것이라고 하셨다. 하악질 할 줄 알면서도 무서워서 처음 며칠은 그저 스으윽 숨기만 했던 송이 모습을 생각하면 꼭 맞는 말이었다. 더불어 발이 다쳤다고 하셨는데 그 때는 이상한 소리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상하게 다리 쪽에 털 길이가 다르길래 봤더니, 구조 직후 때 사진에 발에 큰 상처가 있지 않던가. 더불어 고양이에게 둘째는 당분간 들이지 말라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하셨다. 고양이 합사는 신이 맺어주는 인연이어야지 가능한 일이며 당분간 동생이 들어오는 운은 없다고 하신 덕분에 송이는 외동묘로 잘 지내고 있다.


아차, 참고로 나의 생년월시와 송이의 입양날짜를 보더니 딱 자식운 들어오는 일자에 송이 왔다고 했다. 껄껄 웃으시더니 학부모 상담의 관점에서 상담을 진행해주셨는데 참 재밌었다. 이후에도 간간히 송이의 마음이 궁금해서 타로를 봤는데, 미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 참 재밌었다. 그분이 올해 말 쯤에 송이는 사람 품에 안기는 고양이가 될 거라고 하셨는데, 덕분에 기대를 한껏 품고 12월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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