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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May 18. 2018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나만 몰랐던 이야기

밤낮이 바뀐 어느 날, 새벽에 어마어마한 천둥번개를 보고 혹시 토르가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비가 조금 그쳤을 늦은 저녁 무렵, 밤마실이나 할까,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학원 셔틀버스에 오르는 학생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 집은 학구열이 높은 서울 그 어딘가. 즉 그 학생 중 하나가 나와 내 동생이었다. 몇 시쯤 되면 아이들이 집으로 가는걸까, 하고 쳐다본 시계는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렇게 학생들은 하루 종일 학교-학원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루틴을 반복하고 있겠지.


그게 나의 20년 전 모습일 거다. 학원에 다니며 학구열 높고 더 좋은 선생님과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은 학원이 가득한 이 곳으로 이사오고 싶다고 했던 것은 엄마도 아빠도 아닌 나였다. 그 때 그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예전 동네나 지금 동네나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거니까.


돌이켜보면 회사를 다녔던 시간보다 더 대단한 시간들이었다. 이른 오전에 등교해서 저녁 먹을 시간에 하교하면 바로 학원에 가고, 학원에서 자정까지 수업을 듣고 집에 오면 다시 숙제하다가 학교에 가고. 지금보다 더 빡센 데일리라이프였는데도 그 때는 이 정도로 힘들지 않았던 거 같다. 오히려 자유가 고파서 그 스케줄에도 친구들이랑 놀러다니고 한 게 더 신기하네.


중학교 때 나의 목표는 외고였지만 마음만 앞서고 그에 반해 공부는 열심히 안했다. 당연히 떨어졌지. 그리고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갔는데 거기 내가 가고 싶어했던 외고 애들도 와있더라. 그리고 졸업 후엔 어렵게 취업했더니 여기는 해외 유명대학을 나오신 분들이 다니고 있고. 그래서 엄마한테 그랬다.


엄마, 공부 다 필요없더라. 서울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다 간다는 고등학교였는데 결국 같은 대학, 아니면 같은 회사에 모이더라구.


어렸을 때 가졌던 목표가 무색해지는 기분이 들어 한 편으론 씁쓸하다가도 또 한 편으로는 결국 돌고 돌아 원하는 곳에 가게 되어있구나 싶어 대단하다 싶었다. 사람들이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책 시크릿의 구절을 좌우명 삼은 게 괜한 것은 아니구나 싶으면서.


늦은 밤, 셔틀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보니 그 시간에 여유롭게 밤마실을 나온 나도 저 중 하나였다는 게 새삼 놀랍다. 마치 다른 세상 사람 같아서 한참 보다가 안쓰럽다, 라는 생각과 함께 중고등학생 때 나를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


언젠가 지금의 나를 되돌아본다면 그 때의 나 역시 지금의 나를 위로하고 싶겠지. 힘들어도 조금만 견디자, 라고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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