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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May 03. 2018

방청소의 꽃, 옷정리

옷에 담긴 추억여행

백수가 된 후 나의 하루 루틴은 방청소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서랍을 하나 정하고 그 서랍을 정리한 후 점심을 먹는 것이었지. 그렇게 공간을 하나씩 정리하고 나니 결국 마주하고야 말았다.


방청소의 꽃, 옷정리.

옷정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자주 손이 가는 옷은 참 비슷하다. 색이 조금 다른 것, 패턴이 조금 다른 것. 아주 미묘하게 다르지만 비슷한 옷이 가득한 옷장. 누구의 취향이었을까? 처음 옷을 골라주던 엄마의 취향으로 시작해 점차 나의 취향으로 변화된 것이 아닐까.


가끔 돋보이는 옷들도 있다. 조금은 독특한, 내 취향에서 살짝 벗어난 옷을 사놓고 쉽게 손이 가지 않아 고민하는 옷들도 정리할 때는 괜히 머뭇거리게 된다. 다음 크리스마스엔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다음 여행에선 이 옷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뜻 정리하기 아쉬운 것.

특히 이번 옷장 청소는 드/디/어 겨울옷을 정리하는 시간. 이 맘때는 엄마랑 옷장 문을 훤히 열고 우리 나라는 왜 사계가 뚜렷해서 철마다 옷을 사고 옷을 정리하게 하는지 모르겠단 얘길 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혼자다.

그러고 보니 회사를 다니고부턴 혼자 옷을 정리해 드라이를 맡길 것과 세탁할 것을 내놓곤 했다. 이번엔 조금 대대적으로 정리하려고 꺼내고 있는데 엄마가 없는 시간에 혼자하려니 허전하고 하기 싫다. 엄마의 잔소리가 있어야 이 정리가 마무리되는데!

이 정신없는 가운데서 보물 찾기처럼 추억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역시나 고등학교 교복. 다른 건 다 물려주고 나니 고등학교 3년을 함께한 동복만이 남았다. 백선이 그대로 달려있는 교복을 보며 나는 어떻게든 과거를 미화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행복한 것 하나 없던 고등학교 생활이었는데 이 교복을 보며 나는 무슨 기억을 간직하고 싶었던 걸까.


옷마다 갖고 있는 추억이 있어 이건 이래서 샀고, 저건 그래서 샀어, 라는 생각을 끄집어내곤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옷들은 “대체 왜 샀니..?” 하고 자신에게 되묻기를 반복. 진짜 누가 프로소비러 아니랄까봐.

그래도 어찌저찌 정리했더니 얼추 마무리 되어가는 것 같다. 드라이클리닝을 위해 내놓은 겨울 옷들을 보며 ‘쟤네 돌아오면 다시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많이 정리했다 싶어 나름 뿌듯하다.


근데 이상하지,

옷 정리만 했는데 왜 마음이 허전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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