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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Apr 22. 2018

방정리 그리고 마음정리

퇴사의 또 다른 이름, 정리

일찍 퇴근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나는 방에 앉아 청소인지 정리인지 모를 것을 시작했다. 수납공간이 많지만 정작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나. 그 날 그 날마다 마음 내키는 서랍을 열어 하루에 한 칸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리를 시작하다보면 생각보다 내 물건이 아닌 것도 있었으며 (본인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중) 내가 이런 게 필요한가, 하는 물건을 아주 많이 발견하곤 했다. 그리고 나면 바깥에 나와있는 또는 박스에 따로 보관하던 물건들을 서랍에 넣음으로써 정리라는 단어에 걸맞게 수납공간을 활용하기도 했다.


친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나는 프로소비러로, 있는 물건도 다른 종류를 쟁이고, 갖고 싶은 건 다 사자 라는 마인드. 그러다보니 즐겨쓰는 제품들은 몇 개씩 쟁여두곤 한다. 심지어 이번엔 퇴사라는 큰 일을 앞두고 할인이나 세일이라는 문구만 보면 데일리템을 두 세개씩 쟁여두곤 했다. 마치 앞으로 영영 직업을 찾지 않을 것처럼. (ㅋㅋㅋ)


그러던 게 쌓이다보니 정리를 하면서

‘이건 대체 왜 이렇게 많아’

‘이건 또 언제 이렇게 쟁여뒀지’

하는 물건이 많아 중고나라에 갖다 팔기도 했다.

이럴거면 애초에 사지 말 것을.


이렇게 물건 정리를 하다보면 마음에 묵혀둔 감정들도 정리가 되곤 한다. 어떤 사람을 좋아했던 감정은 남겨두고 싶어 넣어두고, 어떤 사람을 미워했던 감정은 잊어버리고 싶어 버리고, 싱숭생숭한 감정은 어찌할 줄 몰라 꺼내둔 뒤 어디에 둘지 몰라 고민하게 된다.


첫 직장에서의 퇴사라는 과정을 거치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이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직무를 찾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이유를 어느 하나라고 콕 찝어 말할 수 있음에도 그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멀리서 이 문제에 대해 바라보며 ‘퇴사’만이 해결방안인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이 선택을 후회하더라도 내가 자존감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했고, 앞으로 인생에서 이 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참 많이 고민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 ‘정리’에 대해 철없다, 요즘 애들 조금만 힘들면 ‘포기’한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내가 내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살아갈 가치가 있을 정도의 일이었나, 라는 이야기를 가족, 친구, 그리고 나 스스로가 나누면서 결정하게 되었다. 즉, 정리를 통해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던 거고.


그렇게 이번 ‘정리’는 스스로에게 박수치고 싶을 정도로 잘했다. 라고 얘기하고 싶다. 짜식.


결론은 프리한 프로백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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