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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un 30. 2018

제주에서의 Sunday morning

너와의 첫 번째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노래

친구랑 여행을 다녀오면 그 순간의 공기를 두고두고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같이 차를 타고 노래를 들을 때도 그 때의 우리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 나와 내 친구에겐 “Sunday morning”이 그렇다.


제주, 주말, 그리고 겨울.

우리가 친구가 된지 10년만에 처음으로 함께 떠난 곳은 제주였다. 둘 다 운전을 할 수 있었고,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고, 휴가라는 개념을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어찌저찌 시간을 맞춰 제주도로 떠났다.


사실 우리가 여행을 간 건 순전히 나의 호텔 숙박권 때문이었다. 제주 해비치 호텔 1박이 당첨되고 미루다 미루다 전남친과 헤어지고 사용기한이 만료되기 직전에 친구에게 S.O.S를 보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2박 3일, 호텔 숙박권을 사용하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를 끊었다.


너도 디저트를 좋아하니?

우리는 호텔에서의 1박을 2박처럼 아주 알차게 누렸다. 금요일 꿀 같은 반차를 쓰고 날아간 제주,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자고 하니까, 너도 디저트라는 걸 먹는구나?라며 10년만에 내 취향을 알아낸 친구는 두고두고 이 이야기를 했다. 너도 커피에 브라우니를 곁들이는 아이라고. 밤에는 블랑 한 캔을 와인잔에 나눠마시며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며 “아 진짜 말도 안돼!”를 연발하며 잠을 청했다.


수영복 챙겼지?

아침부터 무슨 수영이야. 라고 툴툴거리는 나를 붙잡고 촌스러운 소리 말고 자기만 따라오라고 했다. 그렇게 친구 손에 이끌려 난생 처음 한겨울 노천탕을 즐겼다. 그리고 그 경험은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기회만 된다면 또 가고 싶을 정도. 한 겨울, 패딩을 입고 산책하다가 마주친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투숙객들을 보며 이 맛도 모르다니, 하고 오히려 더 신났던 우리.

역시 나보단 꽃이 예쁘지, 암요

그리고나선 호텔 테라스에 앉아 무화과 바게트를  나눠 먹으며, 어디서 났는지 모를 카누 커피와 함께 제주의 늦겨울을 맘껏 즐겼다. 서울에서도 안하는 웨이팅을 고기국수 먹겠다고 1시간 넘게 기다려보기도 하고, 바닷바람은 거센데 유채꽃을 보겠다고 산방산까지 가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물론 드라이브 할 때는 “Sunday morning”으로 시작, 그에 어울리는 다양한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가장 정점을 찍은 건 그 날 저녁이었다.

지인에게 알음알음해서 찾아갔던 삼치회 맛집.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이지만 둘 다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양에 서로가 “너 빨리 안먹어?”라며 채찍질을 했다. 무슨 프랑스 코스 요리도 아니고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의 향연에 두손 두발 (X2) 다 들었을 정도. 나중에 들어보니 그 양이 남자 세 명이서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이었단다. 거의 다 비운 우리도 참 대단하다.

먹는 것도 먹는 거지만,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무렵 인생의 소용돌이 정 가운데 서있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부터 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이야길 해도 “아, 그 때 그래서 너가 이렇게 행동했구나.” 의 반응으로 맞장구를 치며 내 이야길 묵묵히 들어줬다. 나름 조언이라고 기억나는 건 “너가 좋은 걸 해. 너가 하고 싶은대로 해.” 였다. 그리고 그 한 마디가 내 곁엔 응원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위로로 다가왔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이 친구가 부르면 최대한 가려고 노력한다. (친구야, 보고 있니?)


떠나기 전까진 전혀 몰랐는데 둘째 날 아침부터 알았다. 이 친구랑 나의 여행 스타일이 조금 다른 게 아침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나는 체크아웃 시간까지 자는 걸 택하는 사람이었고, 친구는 아침엔 또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둘째 날 아침엔 나를 끌고 야외 수영장에 간 거였는데, 마지막 날 아침엔 체크아웃하고 바다보며 커피 마시자고 깨우더라. 마지막 날도 툴툴거리며 따라 나갔는데 그래서일까, 우리가 먹었던 핸드드립 커피와 스콘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친구와의 여행에서 아침에 나를 깨우면 일어날 수 밖에 없게 됐다. 아침부터 무슨 즐거운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렇게 여행하고 돌아온 게 벌써 1년하고도 반이 지나간다. 그 이후에도 같이 제주 여행을 했었고, 친구가 부르면 또 달려갈 수 있다. 그리고 친구 차를 타면 꼭 내가 트는 노래, “Sunday morning”. 노래로 시작해 그 날의 공기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우리. 오랜만에 친구를 꼬셔봐야겠다. 우리 제주에 갈 때가 된 것 같아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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