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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29. 2016

나 자신을 되돌아본 시간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

의식의 흐름대로 썼던 스물 여덟 가을에 썼던 글.

그리고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떠오른 글이다. 그러니까 또 다시 언제 지워질지 모른다.

교보문고에 갔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면 꼭 서점을 찾게 된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찾아서 돈도 없으면서 다 읽을지 말지도 모르는 책을 산다. 이 날 따라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았다. 제목부터 위로해주는 책이 너무 많아서 요즘은 위로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된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심지어 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책, 난 소심하니까 대신 말해주는 책 등등, 참 많은 종류의 위로가 요즘 트렌드가 된 듯했다.

분명 행복하고 싶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을 누구에게서 받는 사랑에서 찾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 안에서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채로 몇년이 흐른걸까?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난 분명 혼자서도 뭐든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게 어색한게 되어버리다니.

그러던 중에 혼자 떠난 여행은 정말 나에게 많은 의미가 되었다. 나는 주로 지인들에게 여행을 가기 전 나와 다녀온 후의 나로 나뉜다고 얘기했고,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느껴진다고 했다.

가기 전엔 못 할 줄 알았다. 어려울 줄 알았고. 사실 별 기대도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떠난 거다. 근데 막상 가니까

- 나도 혼자 다 할 수 있구나.

- 혼자서도 가능하구나.

- 그 동안 내가 너무 갇혀살았구나.

- 행복해도, 슬퍼도, 아파도, 기뻐도 다 배우는 게 있구나.

-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구나.

- 눈이 넓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 사람들이 죽어라 일해서 떠나는 이유가 있구나.
- 다음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과 꼭 왔으면 좋겠다.


돌아왔을 때는 내가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차피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싶어도 다 못하고 죽을 세상이고, 그럴 바엔 현실에 충실하지 뭐. 하는 생각도 생기고,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건 옳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된 것도. 어차피 남들 평가를 받으려고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스트레스 안받으면서 살아야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좀 나아졌달까. 정말 많이 나아졌다. 조금 외로워졌고, 조금 심심해졌고, 조금 허무해졌지만 그래도 난 이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나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고, 평가 받는 것에 익숙해져있었다. 사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사랑하는만큼 표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000번 잘해도 1번 잘못하면 다 끝이라는 것도 몸소 깨달았고,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타이밍이 맞아야 된다는 것도, 그게 바로 온 우주가 돕고 있다, 소위 말하는 조상신이 도왔다는 표현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생각보다 내 편이 많은 것도 깨달았고, 내 생각보다 나는 매력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지. 그래서 관심과 표현을 구걸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고.

그걸 깨달은 후 난 조금 외로웠지만 혼자라는 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혼자 다니는 것에 조금 더 익숙해질 예정이고, 새로운 도전도 피하지 않고 부딪혀볼 생각이다. 한 곳에 머무르기엔 너무 짧은 생이고, 행복하지 않다면 너무 슬픈 생이다. 그 시간 이후 난 내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익숙한 것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걸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난다면 내가 그에게 당연한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렇게 나의 스물 여덟번째 가을도 지나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지나간다. 고마웠어, 사랑하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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