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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un 26. 2018

여행에서 만난 사람을 또 다른 여행에서 만나다

피렌체 그리고 제주도에서 만난 인연

언니! 지금 제주에 있어요?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겠다며 급 떠난 제주였다. 인스타그램에 올릴까말까 고민했던 제주 바다 사진에 피렌체에서 동행했던 동생이 댓글을 달았다. 지금 자기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기다린다고. 그렇게 우리는 3개월만에 이탈리아가 아닌, 제주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이 날이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이었고 혼자 저녁을 먹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얼마나 좋은 타이밍이었는지! 3개월만에 만난 동생을 데리고 게하 사장님이 알려주신 횟집에 갔었다. 하지만 그 횟집, 진짜 엄청 오래 기다렸는데 메뉴도 잘못 내어주고 서비스도 꽝이라 망했으면 좋겠다고 우리가 백번은 얘기한 듯.


이 동생으로 말하자면 내가 난생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던 이탈리아에서 만난 동행의 게하 룸메이트였다. (내가 봐도 복잡하군) 나와 내 친구가 다음 날 계획을 말하면 저도 같이 갈래요! 라고 얘기해놓고, 저녁 식사 시간에 만나 언니 저 어제 술 많이 마시고 오후에 일어났어요.. 라고 하던 친구. 우리는 직장인이고 피 같은 휴가를 내고 온 거라 1분 1초가 아까웠던 반면, 이 친구는 정말 말 그대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도 취소하고, 다른 도시에서 만나 이어진 인연들과 함께 “살아보는 중”이라 내심 부러웠다.


그렇게 피렌체에서 안녕, 하고 제주도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번엔 제주 게하에 스텝으로 오게 되었다는 동생은 알고보니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바로 앞 고등학교를 졸업했단다. 세상 좁아도 참 좁다며, 서울도 아니고 제주도에서 다시 만난 게 더 신기하다고 웃으며 둘이 청하를 나눠 마신 기억.


저녁을 다 먹고 걷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언니 저 오늘 생일이에요”라고 슬그머니 말을 꺼낸 동생. 그런 동생에게 “아니 생일인데 왜 말 안했어! 오늘 촛불은 불었어?”라며 손을 붙잡고 협재 근처 불이 켜진 카페에 들어갔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조각 케이크를 주문하고 사장님께 조심히 물어봤다.


사장님 혹시 생일초는 없으시죠..?


그랬더니 사장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마침 오늘 직원 중 한 분이 생일이라 남은 초가 있으시단다. 세상에, 일이 풀리려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싶었던 날. 그렇게 생일 초를 꽂고 앉아서 “너 축하 받을 운이 있었나보다. 생일 축하해!” 라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었다. 언니 진짜 고마워요, 라며 부끄러워하는 동생을 보니 생일은 저 친구인데 괜히 내가 고집을 부렸나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동생에게 케이크까지 먹이고 이제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게하에 데려다줬다. 다음엔 꼭 우리 동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동생과 헤어지고 나 혼자 협재부터 금능까지 약 1시간 동안 걸었다. 11월이라 사람도 없는 캄캄한 수목원을 지날 땐 조금 무서웠지만, 잔잔한 바다의 파도 소리와 쏟아질 것 같은 밤 하늘의 별을 보니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행복해 죽을 것 같은 절경을 앞에 두고도 마음이 심란했던 제주에서 그 날의 공기.


그 동생의 댓글이 없었다면 이런 에피소드도 없었을 것이고, 혼자 제주에서 그 길을 걸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잊지 못할 밤도 만들지 못했겠지? 정말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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