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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an 30. 2016

정리를 위한 방청소

정말 정리일까?

재작년부터 나는 정리라는 것에 꽤 오래 미쳐있었다. 당시엔 만사 제쳐두고 청소에 매진했고, 남들이 하는 셀프 인테리어를 부러워했으며, 어떻게든 공간 활용을 하겠다고 이것 저것 욕심을 냈더랬다. 특히 쓸데없는 것을 찾는 일과 버리는 일에 집착 증세를 보일 정도. 살짝 내 자신이 걱정될 정도였달까.

비록 내 마음에 쏙 드는 원목 서랍장은 아니지만, 플라스틱 서랍장도 새로 구입했고, 정리함도 하나씩 구입해서 차곡차곡 정리했다. 아이러니한 건 수납장을 새로 사면서, 버릴 것을 찾았다는 것. 그러면서 또 '다음 번에 다른 걸 구입하면 이런 걸 사야지!'까지도 생각했다는 것이다. 버리면서 새로운 걸 살 생각을 하다니. 그게 바로 버려도 버려도 그대로라고 느끼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수납장을 사고 나서 느낀 건데, 나는 그 수납장에 나와있는 것을 정리해 넣는 것이 아니라, 수납장을 채울 또 무언가를 구입한 것 같았다. 구입해서 넣어놓고 나면 그냥 까먹는 것. 결국 수납장에 정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직도 모두 들어가지 못했다.

나도 이런 원목 서랍장이 갖고 싶었는데!


또 하나 신기한 점은 사도 사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또 막상 정리할 때 보면 '이런 건 버려야 하나?'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내가 이런 걸 샀단 말이야? 이런 것도 있었단말이야?' 하는 것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 마냥 기분탓은 아니겠지. 나는 참 쓸데 없는 것까지 안고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신발박스, 전자제품 박스, 심지어 나노블럭 박스까지도.

나노블럭은 만들었는데, 박스는 버릴까말까.


이렇게 정리하다보면 집에 있는 책들도 정리하게 된다. 처음엔 책장을 정리해서 수납을 해야겠어, 의 목적이었는데, 막상 정리하고 나면 새로 책을 사서 꽂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알라딘 중고서점을 알고나서 정말 고마웠던 건, 청소년기까지 부모님이 구입해주신 단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책들을 정리할 수 있던 점이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아이러니한 부분은 항상 발생했다. 중고서점에서 내가 판매한 책리스트를 보면서 '어? 이건 왜 팔았지?' 하는 책이 간간히 생긴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아쉬워하다가도 '그래 이유가 있었겠지.'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


책을 정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책을 기부하는 방법과 중고서점 매입가에 판매하기. 기부한 책들은 중고서점에서 매입하지 않는 책들을 중심으로 너무 오래되거나, 청소년 아이들이 보기 좋은 책들 위주로 정리했다. 그리고 알게 된 중고서점은 책 값을 너무 저렴하게 매기는 것 같았다. 물론 버리기 아까운 책들이 많고, 정리하기 어려웠던 책들도 있지만, 그래도 가격이 너무 슬프잖아.. 구매 가격의 10% 정도 받거나, 더 심한 책들은 정말 이건 심했어! 할 정도로 몇 백원에 취급되고 있다는 것. 물론 책을 중고서점에 판매할 땐, '다른 사람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 판매하는 게 꽤 재밌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책들은 구입하고나서 또 다시 판매하기 아까운 좋은 책인 경우가 많아 중고서점에 판매하지 않곤 하지.

서촌 대오서점, 내 책상인줄


사실 정리할수록 빈 공간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다. 아니 비어간다는 표현보단 조금씩 깨끗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달까.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엄청 슬퍼진다. 어디선가 스트레스를 받아 지금 내 머릿 속에 있는 건 어쩌지도 못하는데, 물질적인 걸 버리면서까지 또 다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왜 나는 닦고 쓸고 버리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건지, 계속 정리하면서도 내 자신을 모르겠던 순간들이 많았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의 방법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오히려 스트레스 받는 방법이기도 했다. 지금은 손대기가 귀찮아져서 그대로 있지만, 언젠가 다시 정리를 시작하겠지.

2016년엔 머릿 속을 정리하는 연습!


언젠가 내 방이 바뀌거나, 또 내가 이 집에서 나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정리가 필요할 것같다. 그동안 쌓아만 뒀던 것을 쌓아만 둘 수는 없기에. 그래도 앞으로는 정리가 스트레스 자체가 아닌, 깨끗한 정신을 위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음 한다. 인테리어를 새로 한다는 것도 사실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 행동을 통해 더 예뻐진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뿌듯함이 만들어가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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