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전환
나의 홈타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김포.
정확히 말하면 김포와 강화 사이 통진.
그저 순박하기만 하고 별일 없는 그날이 그날인 일상의 시골마을 풍경이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공장이 들어서고 대형 트럭을 포함 많은 차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산아래 새소리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우리 집 코 앞 10미터 앞에까지 공장이 들어섰다. 부모님은 밤 낮 없이 돌아가는 공장 기계소리와 환한 불빛으로 살 수 없다며 모든 걸 정리하고 충청도 온양으로 거처를 옮기셨다.(지금은 모두 돌아가시고 그 집 또한 잊혔다.) 3년 전 사촌들 집을 방문하기 위해 강화로 가던 길, 내가 살던 김포집이 그립고 보고 싶어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보았다. 집은 온데간데 흔적도 없었고, 대로가 생겼고 더 많은 공장들로 마을 전체가 바뀌어서 나의 기억에 남아있던 모습은 일도 없었다. 영원한 건 없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부모님이 떠나신 김포, 자연히 나의 발길이 멈춘 곳이다.
'스타벅스'가 있는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은 서울을 기준으로 가깝게는 하성면으로 가는 길과, 멀게는 월곳면으로 가는 길이 있다.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의 본가는 두 지점 중간쯤으로 민통선과는 거리가 있어 서울을 오가는 길에 '요 샛길로 가면 애기봉이 있고, 신분증을 검문소에 맡기고 가야 하는 내 친구 '의분'이네 집인데' 하며 지나쳐 가던 곳이었다.
지난주 브런치 작가 고고님의 '스타벅스가 알려 준 북한'이라를 글을 읽고 '어머 그렇구나. 내 고향에 그런 게 생겼구나 한번 꼭 가봐야겠네'생각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해 살면서 시골집을 가기 위해선 김포 해병대 검문소를 거쳐 일일이 확인을 받은 후에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물론 서울로 올 때도 매 한 가지였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시절 헌병이 올라와 버스 안을 앞, 뒤로 다 확인을 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내려 검문소 안으로 들어갔다. 버스 기사님은 내린 손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출발해 모두가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자가용이 생겨 자차로 이동할 때도 매 한 가지였다. 검문소에 무조건 정차해야 했고 창문을 내려 확인을 거친 후에 출발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트렁크까지 열어 확인시킨 후에야 갈 수 있었다. 김포는 그런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기봉 스타벅스를 가보신 분이라면 이해하셨겠지만, 김포는 지리적으로 서울과 북한을 잇는 길목에 위치하며 특히 북한과 인접한 접경 지역에 해당된다. 한국전쟁 이후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북한의 침투나 간첩 활동을 막기 위한 군사적 경계의 필요성이 매우 컸다. 김포를 통해 서울로 진입하는 모든 차량과 인원에 대한 통제가 필요했다. 이는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잠재적인 위협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민간인 통제선 및 접경 지역 관리가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운영되었다. 검문소는 이러한 통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시설이었고, 민통선 안 마을로 들어가는 요소요소에 있었다.
그런 검문소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명확히 '언제 없어졌다'라고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200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상당수 검문소들이 그 기능을 잃더나 철거되었다. 주요 원인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남북 관계가 다소 완화되는 분기기가 조성되었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등 대북 포용 정책이 추진되면서, 과거와 같은 전면적인 군사적 긴장 상태가 다소 누그러들어서였다. 김포가 서울의 위성도시로 급격히 도시화되고 인구 증가로 교통체증이 증가했고, 지역 주민들의 일상생활 불편으로 지속적인 검문소 폐쇄를 요구했으며, 국방 개혁, 시대의 변화에 발전하는 과학적 장비등으로 점차 폐쇄되었다.
고고님의 글을 읽고 어서 가보고 싶단 생각에 아무 상식 없이 무조건 출발했다. 1시간 반을 달려 8시 50분 입구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기에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도착했는데 나의 기우였다. 나 보다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은 어림잡아 20명은 넘어 보였다. 온라인으로 미리 예매하신 분들은 따로 줄을 서 있었고, 나처럼 그냥 간 사람들 또한 표를 예매하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셔틀을 타기 위해 버스 타는 장소에 기다리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9시 30분부터 입장이라 매표소 문도 9시 30분에 열린다고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았던 관계로 40분 동안 햇빛아래 서있는 시간이 좀 괴롭긴 했다. 9시 30분 문이 열림과 동시에 많은 사람이 좁은 사무실 안으로 와르르 몰려 들어갔다. 입장객의 신원 정보를 써서 내야 했는데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 줄은 온데간데없고 줄 서서 기다린 게 무색할 만큼 안은 낭장판이 되었다. 다행히 앞쪽에 서 있던 관계로 일찍 표를 사서 나올 수 있었다. 표를 끊어 나오면서, 기다리는 동안 미리 신원 정보를 쓰게 했으면 이런 난리는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표를 사며 차 번호를 등록해 평화생태전시관까지 갔고 건물 지하에 주차하고 구경을 시작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이야기하며 전망대에 위치한 스타벅스를 향해 나아갔다.
생태전시관을 지나 공원을 천천히 구경하며 가다 보니 출렁다리가 나타났다. 출렁다리를 지나면 지그제그 데크 잔도길이 나오고, 끝지점에는 꽃별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그 꽃별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설명합니다.) 야외 공연장을 지나고, 평화의 종을 지나면 맨 위 스타벅스가 자리 잡고 있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놀맨놀맨 구경하며 가다 보니 카페 안은 만원사례요, 줄 또한 길다. 먼저 밖에 설치되어 있는 망원경으로 북한땅을 보았다. 날씨가 좋아, 모내기가 끝낸 논이며 집들이 아주 가깝게 깨끗이 보였다. 도움을 주는 군인에게 물어보았다. 저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사람은 살지 않고 그저 전시용이라고 말해줬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흐르는 강은 '도강'이며 불과 1.4Km 떨어져 있다.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이다. 조망을 관망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카페 안은 여전히 앉을자리가 없었고, 줄이 길었다. 매장 안 한편, 경기, 제주, 충청, 전라, 경남도의 관강지와 유명한 먹거리가 그려진 컵과 텀블러를 비치해 놓아, '경기도' 텀블러를 하나 사서 커피를 담아 나왔다. 내려오는 길 한산한 벤취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커피를 마셨다. 다시 생태관으로 돌아와 찬찬히 둘러보던 중
"제가 사진 찍어 드릴까요?"
"아, 네. 그럼 저야 감사하죠."
"전 여기 문화 해설사얘요. 11시 30분 해설하는 시간이라 나온 겁니다. 한번 들어 보실래요?"
"저야 좋지만 사람이 많지 안 아서 어떡해요?"
"괜찮아요, 한 두 사람만 있어도 돼요. 자, 설명 들으실 분 모이세요~"
설명이 시작되니 6~7명이 모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설명 내용은 다음 회에 자세히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