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영수 Mar 19. 2024

상경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멈춘 기차안에서 잔잔했던 몸의 떨림.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시 4편을 골라 그 중 한 편을 외워 청소시간 전에 교무실로 와서 암송 확인을 받으라던 숙제. 분분한 낙화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되어서 흥미가 갔던 것 같다. 선생님 앞에서 눈감고 낙화 암송을 끝내고 눈을 떠 마주한 선생님의 처음 보는 표정. 이 시를 외워 온 사람은 니가 처음이네. 다들 짧고 쉬운 걸로 왔거든. 칭찬도 아니었을 그 말에 저 혼자서 기쁨을 느껴서인지 20년 가까이 지난 오늘 15시 30분 수서행 SRT에 앉아 불현듯 떠오른 낙화 한 구절.

 

 오랜 친구의 배웅에 고마운 마음을 눈빛으로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해 일없이 친구가 사준 커피만 보며 호기롭게 굴던 시간. 크리스피크림도넛 테이크아웃 커피잔은 빨간 뚜껑이 특색있네. 나의 불투명함 밑에 숨겨 둔 얇은 의지가 하필 지금 조명될까봐 나 서울가서 뭐하고 사냐 큰일났다 먼저 던지고 같이 웃어주길 바라며 짓던 빠른 미소. 같이 웃어준게 와 준 것보다 더 고마웠다. 이제 부산에 남은 친구가 없다는 친구의 말에 대답도 없이 커피만 마셨던 부산역 야외 데크 위. 

 

 그냥 지하철타고 가도 된다는데도 큰딸에게 전화를 해선 좀 태워 주라고 말하며 조수석에 타고 부산역까지 왔던 엄마. 30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차 안에서 고르고 골라 한다는 말이 엄마는 아빠랑 진주에서 부산 올 때 직장은 구하고 왔었던거야? 5번도 더 들었을 엄마의 젊은 시절 이야기 플레이 버튼을 다시 한번 누르고 이야기가 다 끝나기 전에 도착한 부산역 앞에서.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던 엄마를 실수로 빤히 쳐다봐버린 아들과 눈을 마주치고 순식간에 붉게 상기된 엄마의 낯빛. 어머 왜 빤히 쳐다보노 아들. 잽싸게 고개 돌리고 잘 갔다 올게 평소 보다 큰 걸음으로 걸어가다가 온 전화. 

 

 거기서 잠깐 지낼 친구 집에 친구가 니 이불은 준비해놨대 질문에 어 엄마 준비해놨대. 안 그러면 큰누나가 주소 불러주면 거기로 바로 하나 지금 보낸다고 하던데. 아이 괜찮아 괜찮대도.     

작가의 이전글 [에세이]환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