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3
서울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매일매일 만났다.
그리고 내가 나의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었다.
알바는 3-4개씩 했었고, 또 연애도 열심히 했어서
항상 사람에 치이고,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달까.
하지만 이 제주는 그럴 일이 없다. 아니 없다기 보다는 적다.
나의 상황을 내가 스스로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있을 수 있다는 것
혼자있을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이다.
단 내가 원할 때던 내가 원하지 않을 때던, 혼자 있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오롯이 혼자 있을 수가 없다.
철학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만해도 지금 이 자리에 혼자있지만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곳에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
내가 오롯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적당한 외로움은 어떨땐 이로운 감정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제주에서 지내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혼자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 떄문에 어느정도의 외로움을 스스로 해결 할 수 있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나에대해 더 잘 알게되었달까.
사실 이것도 지금의 판단이다.
하지만 26살의 지금까지 내가 느낀 것들이 소중하다.
그리고 점점 더 짙어지는 생각은, 나는 조금 더 따뜻한 세상에 살고싶다.
이 말은 내가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도 담겨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더 따뜻해지려고 노력을 하면 좋겠다는 살짝은 이기적일 수도 있는 소망이 담겨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과, 다양한 기준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각자의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 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있다.
하지만 서로가 갖고있는 차이를 인정하고 나의 기준을 상대에게 대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꾸준한 사랑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이유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도 존 러보크의 인생의 선용을 읽고, 이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이렇게 이상적인 생각만 나열 해놓은 책을 쓴거지?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도 항상 모든 사람을 존중 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 , 애인이랑 함께하면서도 존중을 포기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반복할 때 마다 드는 생각은 그렇기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내가 바라는 따뜻한 세상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가 하는 노력 한가지,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
좋은 판단이든 나쁜 판단이든 그것은 그 사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내가 내린 결론일 거다 .
하지만 그 사람의 일부분만을 보고 어떠한 사람이다. 라고 판단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고슴도치 이야기를 다시봤다.
예전의 나는 세상사람들이 날이 서있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먼저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따뜻함을 바랬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도 이런 생각의 변화가 있었고 그 생각이 짙어져 노력을 할 여유가 생겼으니
우리의 생각이 비슷하다면
또는 나의 생각을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그런 뾰족한 사람들이 모여모여 그 주변의 온기를 더 따끈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대신 각자 뾰족한 부분이 있긴 하니
서로의 거리를 존중해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