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여행이 주는 기쁨
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은 내가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경험한 무더위였던 것 같다. 에어컨 있는 곳이 아니면 활동하기 힘들었던 여름이었다. 내가 어릴 적 유년 시절에도 상당히 더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더위를 피하고자 장마 때 외에는 냇가에 가서 살았다. 땀이 날 틈도 없이 아예 냇가에서 놀다 더우면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고 지치면 나와서 친구들과 납작한 돌 주워서 방 만들어 놓고 소꿉장난하다 더우면 다시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서 더위를 식혔던 유년 시절이 그리워진다.
특히 올해는 어릴 때 마음껏 놀았던 유년 시절과 시골의 자연환경이 그리워졌다. 조금만 나가면 푸른 들판이 있고 그 옆 개울가에는 물이 늘 흐르고 물놀이하기 좋은 깊은 물이 두 군데 있어서 남자아이 여자아이들이 따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풀이 많은 언덕 밑에는 어김없이 한쪽에 소들이 풀을 뜯어 먹으며 한가롭게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소를 넓은 들판에서 마음껏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도록 긴 목줄을 나무에 묶어서 너무 멀리 가지 못하게 묶인 상태에서 소들은 풀을 자유롭게 뜯어 먹는다. 소는 되새김질을 끊임없이 하며 눕다 하품하다 자다 어떤 때는 똥을 싸서 뭉개 가며 자유롭게 보낸다. 그러다 해가 지면 주인에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간다. 소가 마음껏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나도 마음껏 친구들과 소꿉놀이, 물놀이하고 놀다 보면 어느 사이 하늘에는 노을이 물들고 곧 어두워지면서 한집 두집 굴뚝에 연기가 난다. 그때는 우리도 가지고 놀던 소꿉놀이를 모두 두고 내일 또 만날 것을 약속하며 친구들과 헤어져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면 엄마는 저녁준비 하느라 분주하다. 특히 여름에는 저녁 메뉴가 칼국수일 때가 많았다.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리 부엌 앞 바깥에 솥을 걸어놓고 국수를 삶을 육수를 만들기 위해 멸치와 다시마 큰 감자를 큼지막하게 잘라 넣고 불을 지펴놓고 엄마는 밀가루에 콩가루 조금 넣고 물을 부어 치댄다. 밀가루를 여러 번 치대고 나면 보들보들 말랑말랑해진다. 이후 커다란 암반을 펴고 홍두깨로 잘 치댄 밀가루 반죽을 돌려가면서 늘린다. 이쪽저쪽을 번갈아 골고루 늘린 후 홍두깨에 늘린 밀가루를 감아서 더 넓어질 때까지 밀고 당기고를 반복한다. 넓게 펴서 얇아질 때까지 홍두깨로 넓게 충분히 밀고 난 뒤 밀가루를 마지막으로 휙 뿌리고 접어서 칼로 일정하게 자른다. 그 전에 양쪽 가장자리를 자르는 것이 국시 꼬리다. 국시 꼬리는 유일하게 내 몫이었다. 국수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국시 꼬리를 뚝 잘라 주면서 ”구워 먹어라”라고 하면 나는 좋아하며 받아들고 아궁이로 가서 구우면 밀가루가 익어서 부풀어 구멍이 생기고 바삭거리며 고소하기까지 하였다.
엄마는 얇게 국수를 썰어서 넓게 뿌려가며 펴 놓은 후 서로 붙지 않도록 두고 다시 불을 지펴놓은 솥에 잘 우러난 다시 물을 확인한다. 국물에 간장을 붓고 맛을 본 후 썰어놓은 국수를 먼저 넣고 끓이다 텃밭에서 딴 호박과 파를 썰어서 끓는 국수에 넣어 다시 불을 지펴 끓인다. 다 끓인 국수는 큰 항아리에 담아서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마루에 갖다 놓고 상을 차린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더운 여름 뜨거운 칼국수를 후후 불어가면서 ”뜨끈뜨끈해서 좋다”라고 아버지는 땀을 흘리며 맛있게 드셨다. 언제 삶았는지 엄마는 옥수수까지 상위에 올려놓고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국수를 배부르게 먹은 후 옥수수까지 먹고 행복해서 했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회상해 보니 그때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 되는 것을 경험한다.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마음껏 놀았던 어린 시절이 지금은 행복했던 추억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상담을 처음 배웠을 때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의 성장 배경을 생각해봤을 때 가족은 시끌벅적하게 많았지만, 부모님이 바빠서 나를 내버려 둔 것으로 느껴져서 정서적으로 방치되었었다는 생각이 들어 어린 시절 외로웠을 내가 느껴졌었다. 그런데 노년을 바라보는 내가 느끼는 지금의 어린 시절은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가 된다. 자연과 더불어 마음껏 놀아야 할 시기에 마음껏 놀게 해주고 수용해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엄마가 칼국수를 만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처음과 끝자락에 있는 국시 꼬리를 주고받고, 국시 꼬리를 구워 먹었던 과정이 엄마와 내가 주고받았던 정서적인 교감이었구나 라는 것이 깨달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껏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서 누리도록 허용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오늘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다는 것을 깨달아지니 마음이 따뜻해 짐을 느낀다. 결혼 이후 아이 엄마로서 아내로서 늦은 나이에 학생으로 바쁘게 살다 보니 나의 정서를 느껴보지 못하고 살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 어린 시절 정서적 여행을 하다 보니 물론 경제적으로 넉넉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한 결핍은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집착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고 자율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셨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돌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우리 자녀들에게는 그런 아픔을 경험하지 않게 하려고 어릴 때부터 나름대로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지나친 통제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해받고 수용 받는 느낌보다 통제받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정서적 여행은 나의 인지 왜곡으로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지도 못하고. 우리 아이들을 통제했던 지난날을 깨닫게 해준 기쁨의 여행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