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스친 생각
"굉장히 저렴한 식당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어구이 한 상이 만 이천원. 돌솥밥이 나오고, 제육볶음이 따라 나온다. 주문을 하면 사장님이 직접 냄비를 들고 와 불을 탁 켜주신다. 돌솥밥과 생선 구이가 완성될 동안 조용히 제육을 볶으면 된다.
전에 없이 여유롭고 편안한 제주여행을 즐기던 중이었다. 먹고 싶은 건 다 먹을 수 있다.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갈 수 있고, 사고 싶은 것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간 몇 십년의 절약의 절약 생활이 몸에 베어 있어 뚜렷한 기준이 있는 우리는 과소비를 하지 못 한다. 그야말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분명한 우리다.
그런 우리에게 '통옥돔구이 한 상'은 그저 딱 좋은, 아주 잘 만난 밥상이었다. 가격도 아주 적당한 1인 16,000원. 퀄리티는 제대로! 튀기듯 구운 통옥돔 네 마리가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었다. 말그대로 겉바속촉이었다. 제육에 쓴 고기도 제대로 야들야들했다. 어느 반찬 하나 버릴 것없이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제법 덩치가 좋은 부부가 예닐곱살쯤 되는 딸 둘을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아빠는 메뉴판을 훑더니 한 치의 고민없이 "고사리 해장국 하나랑 제육볶음 두 개요"라고 말한 후 딸 손을 잡고는 "아빠랑 화장실 가자"하고 다정히 말하고는 일어서 화장실로 가버렸다.
고사리 해장국 만원. 제육볶음 8천원. 그들은 긴축재정이었을까. 나와 함께 글을 쓴 손혜미 작가님처럼 <짠내투어> 중일까. 어린 딸들이 매워서 못 먹을 거 같지만 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메뉴를 주문하고는 저리 밝은 미소로 화장실을 가버릴까. 나에겐 안타까움을 남겨놓고.
다행히 메뉴판을 뚫어져라 보던 아내가 찾아냈다.
"여보, 고등어 구이 한상에 제육 볶음이 따라 나온데!"
휴, 다행이다. 내 마음이 훅 떨어졌다. 아가들도 따신 밥에 고등어 한 점 먹을 수 있겠네.
여행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저렇게 웃었던가? 나는 비겁하고 겁이 많아 결혼조차 망설였었는데, 저들 부부는 주어진 환경에도 감사하고 있을까. 어린 날의 나처럼 힘들게 일하고 조금씩 모아 겨우겨우 온 제주여행이었을까. 내가 뭘 해 줄 수도 없는데, 생각만 많은 며칠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재벌 3세였다로 끝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