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50 댓글 1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느림보 엄마와 목욕

영종도 해수찜방

by 지우 Feb 23. 2025

    우리 엄마 별명은 '제시카 여사'다. 어릴 때 보던 티비 시리즈 물, <제시카의 추리 극장>에서 나온 제시카 여사. 명확한 판단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멋진 여성. 우리 엄마는 추리력이 뛰어나 동생이 잘못한 일도, 내가 화난 일도 바로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 우리 제시카 여사도 늙는다. 추리력이 점점 떨어진다. 기억력도 조금씩 나빠진다. 그리고 어느 날, 크게 넘어져 척추가 부러졌다. 소소하게 갈비뼈는 서너 번, 다리를 다치는 건 부지기수, 어느 날은 안 넘어지려다 벽을 짚어 어깨뼈가 부러졌다. 

    당차고 멋졌던 제시카 여사는 점점 작아졌다. 부러진 10번 척추 때문에 키도 작아지고, 잦은 마취로 기억력도 작아졌다. 일련의 사건들을 이용해 큰소리를 당당하게 치는 아버지 때문에 슬프게도 마음도 작아졌다. 어긋나기 시작하니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 이상하게 걷기 시작했고, 점점 느려졌다. 


    그런 제시카 여사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동네 목욕탕 가기.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위험해 제발 좀 가지 말라고 했지만 소용없다. 천천히 걸으면 된다며 지팡이를 짚고 간다. 어느 날은 식혜값을 까먹고 안 주고 오고, 어느 날엔 지팡이를 놓고 온다. 이래저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다. 

    

    "엄마 모시고 해수방 갈래?"


    남편은 끝에 '안 내키면 말고'라는 단서를 꼭 붙인다. 어쨌든 내가 힘들어할 걸 알기에. 하지만 우리 셋은 한 차에 올랐다. 인천 영종도로 가 유명하다는 해수찜방으로 갔다. 꽤 비싼 가격을 치르고 식혜와 맥반석 달걀도 샀다. 찜질 시간은 90분! 가볍게 샤워를 하고 배정된 방으로 어서 가야 한다!


    "니네 아빠가 호들갑을 떨어서 며칠 못 씻었어." 

엄마가 사는 집은 오래된 단독 주택. 겨울엔 무척 추워서 나도 그곳에 살 때는 후드 모자를 쓰고 잘 정도였다. 그러니 감기가 끝물이라 콜록대는 엄마를 못 씻게 했겠지. 엄마는 느릿느릿 옷을 벗고 느릿느릿 샤워실로 향했다. 나는 엄마가 미끌어 질까봐 느릿느릿 따라간다. 느리게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다. 


    "나 샴푸 한 번만 더 줘."

며칠 못 씻어 가려우니 한 번 더 감고 싶으시단다. 마무리를 하고 느릿하게 찜질복을 입는다. 배정된 방으로 느릿느릿 갔다. 남편은 "와, 오래 걸렸다!" 한다. 뒤이어 들어오신 아저씨도 말씀하신다. "아이고 사장님이 오래 기다리셨어요." 그러곤 뜨겁게 달궈진 맥반석을 해수 안에 치익 넣으신다. 작은 히노끼탕(아마도?) 안에 해수가 찰랑이고 그 안에 각종 한약재가 들었다. 엄청 뜨거우니 아직은 손을 넣음 안 된다. 수건을 적셔 바가지로 꾹꾹 짜고 어깨나 다리에 툭 놓으면 뜨겁지만 시원하다. 혹시나 엄마가 못 할까 봐 남편이 수건을 쭉쭉 짜 엄마 어깨에 둘러준다. 그러곤 아까 산 맥반석을 탁 까 드린다. 시원한 식혜도 잊지 않는다.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일은 언제나 예상을 깬다. 엄마는 혼자서도 수건을 물에 넣고 휘휘 흔들어 바가지로 꾹꾹 눌러 아픈 무릎에 툭 올려 놓는다. 뜨거운 기운이 다 갔다 싶으면 또 한 번 더 휘휘 꾹꾹 툭을 반복한다. 예정된 90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샤워실로 향했다. 원래 해수찜 후엔 샤워를 하루 정도 안 하는 거라지만, 엄마는 어차피 집에 가면 추워서 샤워 못 하니까, 나는 찝찝해서 휘휘 물로만 샤워를 했다. 


    "엄마가 못 할 줄 알았어." 남편도 나처럼 불안했나 보다. 물가에 내 놓은 것같은 엄마가 혹시나 다칠까봐. "생각보다 툭툭 잘 하셔서 뿌듯하드만!" 그래, 나도 뿌듯했어. 이제 우리 엄마 독립시켜도 되겠네 싶어서. 



브런치 글 이미지 1



일요일 연재
이전 02화 발렌타인 데이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