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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을 그린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미켈란젤로는 뛰어난 조각가이기도 하다. 주 무대는 르네상스 시대였지만 그의 작품들은 현대 조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미켈란젤로를 조각사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미켈란젤로 조각의 큰 특징은 종교적 성인을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즉 고통받고 절망하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작품에 담아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사람의 신체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 조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미술을 시작한 인물로, 그가 살았던 시기는 정치적으로 혼란하여 시민들 사이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만연했을 때였다. 기독교의 세력으로, 즉 신의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를 식민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나가며 미켈란젤로는 전쟁과 혁명, 그리고 권력의 추악한 실체를 보고 살아갔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따라 미켈란젤로는 정치적 흐름에 많이 동요되었는데, 특히 자신을 후원해 주던 메디치가가 추방되며 미켈란젤로 또한 여러 국가를 떠도는 생활을 하며 평화롭지 않은 일생을 보냈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미켈란젤로의 정신적 고뇌는 무척이나 컸을 것이며, 따라서 그의 개인적 고통 등이 작품 속에 그대로 구현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초창기 그의 작품에서 고대 남성 조각의 조형미와 이상적 신체를 구현하였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인물의 해부학적 구조가 무너지고 불균형적인 작품을 만드는 등 변화를 보인 것에서 그의 정신적 고뇌와 모멸감 가득한 심리를 엿볼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그의 작품 <피에타>와 <론다니니 피에타>를 통해 확인해 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슬픔에 빠진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재현한 조각이다. 마리아의 섬세한 옷주름과 죽은 예수의 시신이 축 늘어진 근육묘사는 대리석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사실적인 묘사의 단계로 이끌었다. 피에타는 피라미드형의 안정된 구도를 지니고 있는데, 미켈란젤로는 이 안정감을 만들기 위해 마리아의 어깨와 치마폭을 조금 더 넓게 잡았다.
성모 마리아가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은 - 그것이 단지 슬프고 인간적인 절망이 아니라 - 마리아는 예수가 어떤 존재이고 예수가 앞으로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성한 모습이다. 즉 인간적 차원이 아닌 초월적 형상을 미켈란젤로는 조각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수많은 작품을 미완성으로 끝내고 대다수의 조각들에 서명 또한 남기지 않았는데, <피에타>는 그가 사인을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현대의 사람들이 완성된 <피에타>를 보며 감탄하는 것처럼 미켈란젤로 또한 자신의 작업에 상당히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가능하다. 서명은 마리아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에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이 <반디니 피에타>는 동일 인물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1499년도 조각했던 <피에타>와 확연히 다른 외양을 보인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요셉(혹은 미고데모)이 안고 있으며, 왼쪽에는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오른쪽에는 마리아가 위치해 있다. 조각이 전체적으로 곧지 못하고 휘어진 형태이며, 예수가 본인의 몸을 통제하거나 가누지 못해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반디니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말년에 후회화 모멸 같은 감정을 느낀 시기를 보내며 만들어진 작품이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신성에 투입시키는 심리적인 사상이 반영되었으며, 예수의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새겨 놓은 것으로 보아 예수상에 미켈란젤로 본인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시도를 한 것을 엿볼 수 있다.
<론다니니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죽기 며칠 전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던 작품이다. 예수의 시신은 길게 늘어져 있고 그런 그를 부축해야 할 마리아는 오히려 시신에 업혀 있는 듯 불안정하기만 하다. 여태까지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상은, 예수를 마리아가 안고 있는 구도였다면 <론다니니 피에타>에서는 예수가 성모를 지탱하는 모습인 것이다.
이 조각에서는 과거 미켈란젤로의 조각에서 보이던 인물들의 이상적인 외관이나 해부학적 구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즉 재현적 가치는 파괴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추구해 오던 고전의 미,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미의 개념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인체의 외형은 이 시기의 미켈란젤로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론다니니 피에타>에는 오로지 정신과 관념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은 오히려 결과적으로 '피에타' 작품의 의미와 내용을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1499년 작품 <피에타>보다는 <론다니니 피에타>에서 인간적 고뇌와 정신적 공포가 더 크게 다가오고, 관람자들은 그러한 예수와 마리아를 더욱 인간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상은 변형된 인체와 매끄럽지 않은 표면을 내용적으로 보완해주기도 한다. 더불어, 오늘날의 현대 조각은 자신의 경험이나 사상 혹은 정신세계를 주로 구현하는데, 여기서 자신의 내적 심리를 투영시킨 미켈란젤로 조각의 현대성이 드러났다고 보는 입장 또한 존재한다.
이처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은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변화를 겪어 왔다. 세 가지 <피에타> 중 어떤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셋 중 어떤 작품이 더 훌륭한지, 혹은 어떤 작품이 좋지 못한 지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켈란젤로가 인체가 바로 만물의 유추적 적도이며, 이상적 미를 함축하고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피에타>나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적/시대적 흐름 속에서 정신적 고뇌를 안고 본인을 예수에 투영하여 조각한 <반디니 피에타> 그리고 피에타의 정신과 관념이 집약된 <반디니 피에타> 모두 미켈란젤로의 삶 하나의 파편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서양미술사, 이은기,김미정 지음, 미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