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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자 Mar 10. 2024

면교 가는 길 : 끝나지 않는 싸움

'24. 3. 10. (일)

토요일에 공주를 만나고 나서, 일요일에 시험을 보러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공주가 아파서 병원을 가야 한다고 일요일에 오라고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시험을 보고, 공주를 보러 갔다. 


며칠 전, 전 사람이 얘기하길, 어린이집에 제출하고 걸어둘 가족사진이 필요하다고 사진을 찍자고 했었다. 사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공주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래서 내가 집에 가면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삼각대나 카메라를 식탁에 두고 찍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 나가서 찍어줄 사람도 없고, 같이 나가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 사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다른 애기들은 사진관에서 찍는 사진을 제출하는데, 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디 나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나 보다. 


물론, 그러면 참 좋겠지만, 공주를 위해서 그러면 좋겠지만 내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서로 이야기도 안되었다 보니, 각자 생각하는 게 역시나 달랐다. 할미가 같이 오니, 할미한테 찍어달라고 하고 싶었나 보다. 근데 나는 그것도 싫었다. 어떤 어머니가 이혼한 자식의 가족사진을 찍어주면서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사진은 나중에 찍자고 하고, 이어서 도착한 할미, 할비와 함께 공주를 데리고 키즈카페로 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키즈카페 간지가 꽤나 된 공주. 그래도 키즈카페에서 재밌게 논다. 


그런데, 두 돌이 지나면서 사람을 알아보고 말도 트여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2주 만에 보는 공주의 말문이 생각보다 많이 닫혀있다. 2주 전에 동생네 놀러 가서 재미있게 놀았던 것에 비해 조용하다. 두 돌이 갓 지난 아기에게 2주는 말문을 열기에 꽤나 긴 시간인 것 같다. 


키즈카페에서 나와서, 밥을 먹고 나가려고 하는데 전 사람에게 카톡이 왔다. 어디 카페에서나 지금 밥 먹는데서 찍자고 한다. 그냥 집에서 찍고 싶었는데.. 여기로 온다고 하기에, 집에 가는 길 놀이터로 오라고 했다. 살짝은 추운 날씨, 감기에 걸려서 콧물이 계속 나오는 공주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올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다. 


공주는 찡찡대기 시작한다. 엄마 올 거라고 했는데 왜 안 오냐고. 그리고 콧물이 계속 흐른다. 


왜 안 오나 했더니, 다른 놀이터에 가 있다. 최대한 말을 줄인 카톡의 의사소통 속에서, 그리고 나는 카톡을 잘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소통의 부재가 원인이다.


"왜 안 와"

전화가 온다. 


"토끼 놀이터"로 간다고 하지 않았냐고. 

왔는데, 어디냐고. (나는 공주 때문에 카톡을 확인 못했다.)


"내가 토끼 놀이터가 어딘지 어떻게 알아. 가는 길에 있는 놀이터라고 하면 여기지. 그냥 집에서 찍어"


잊고 있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전 사람의 짜증이 갑자기 시작된다. 


이혼을 하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그 사람이 짜증을 낼 때, 그냥 아무 소리하지 않고 참고 참다 보니, 관계의 불평등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아마 예전의 나 같으면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절대 짜증을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삭이면서 이야기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도 말이 곱게 안 나간다. 

"네가 여기로 온다고 해놓고서는, 잘 모르겠으면 물어봐야지 엄한 데 가서는 왜 짜증이냐고..."


결국 만났다. 기분은 상할 대로 상해서는 사진을 찍는다. 뭐 표정이 좋을 리가 없다. 썩소를 지어보지만 쉽지 않다. 간만에 들은 그 사람의 짜증은 트라우마처럼 나를 굳게 만든다. 저 짜증을 듣지 않으려고 이혼을 한 건데, 간만에 들으니, 멘털을 잡기가 쉽지가 않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참는다. 그냥 그 사람도 조용하길 바랬다. 


하지만 역시나 조금 지나자, 장문의 카톡이 오기 시작한다. 


"평소에 잘 못 만나는 아빠면서 사진도 하나 제대로 못 찍어주느냐."

"다른 집들은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제출하는데, 우리 공주만 사진이 허접해서 애가 기가 안 산다."

"작년에도 사진관에서 찍으려고 예약했는데, 네가 안 찍는다 그래서 허접한 사진 내지 않았느냐."

"이러니까 네가 나한테 소장을 날리지"

"맨날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하니까... 애 생각을 했으면 네가 소장을 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름 멘탈을 잡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이 공격에 감정과 손가락이 반응한다. 그리고 그냥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건 과거의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기에 무시하지 않고 대응하다 보니...


끝이 없다. 더욱이,

"너 네 친구들한테 이혼한 이야기 안 했나 보더라. 네 친구 와이프들한테도 연락 오는 거 보니."


이건 또 뭔 말인가. 

이 말이 카톡 미리 보기에 뜨는 순간부터는 카톡창을 누르지 않았다. 누르면 정말 끝이 없을 것 같다.


뻑하면 이혼하자고 말하던 사람이, 소장을 먼저 날렸다고 이혼이 내 탓이라고 한다. 공주가 2~3시간만 밖에 있어도 엄마를 찾으면서 징징대는데, 면접교섭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고 아빠 자격이 없다고 한다. 공주를 보는 것 말고도, 직장에서 잘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 대느냐 본인보다 상대적으로 공주를 못 봤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고 한마디로 정리한다. 그러고서도 자격이 있느냐고. 


본인은 하나도 잘못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본인은 미안한 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항상 이야기했다. 역시나 그 베이스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모든 잘못은 다 타인이 만드는 사람이다. 


나도 잘한 건 없고, 그 사람도 잘한 건 없다. 


냥 우리가 맞지 않았던 것이고,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맞추려고 하지 않고 방관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훅 들어오는, 난리법석을 간만에 듣고 나니 결혼기간 내내 싸웠던, 공주를 낳고 나서 싸웠던 그 레퍼토리가 그대로 이어진다.. 어후...


나도 잘 한 건 없다. 

그 사람도 잘 한 건 없다. 

우리가 잘못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직도 자신이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잘잘못을 따지고 싶진 않다. 이미 깨진 잔, 엎질러진 물인데 누가 깨고, 누가 엎질렀는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사람도 혼자 공주를 보느냐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운명인걸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운명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그렇게 살았던 걸. 


그 사람의 미친듯한 잔소리와 '이노센트 마인드'가 너무 힘들어서, 그로 인해 나와 우리 부모님, 우리 동생까지도 힘들어해서 결심했던 이혼이다. 이제 와서 저렇게 이야기를 한들 무슨 소용 있는가. 소용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은데. 간만에 헛힘을 빼서 참 지친다. 


언제까지 이 이별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계속 될까. 이제 그만하고 싶다. 


공주를 보면서 사랑을 해주고, 사랑을 통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느끼고 싶었지만 이번 주말은 실패다. 


더 이상 기분이 나빠질 것이 예상되는 카톡은 열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도, 의무도 없으니까. 차단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읽지 않은 채로 카톡방을 나간다. 


나는 내 인생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짜증을 내고 *랄을 한다고 해도, 이제는 나대로 살아갈 거니까. 더 이상 그 사람의 나르시시즘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미안해 공주. 다음에 아빠랑 같이 사진관 가서 사진 찍자. 엄마 없이 찍으면 더 밝은 표정으로 행복하게 사진 찍을 수 있어. 안 그래도 아빠도 공주랑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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