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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이씨 Dec 20. 2023

회사를 졸업하려 합니다

퇴사 D-30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이 되었다. 


8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직장 상사도 만났고 화장실에서 숨죽여 눈물도 훔쳐봤다.


인정받아보겠다고 악을 쓰며 일해 보기도 했고, 그러면서 운 좋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잊지 못할 추억과 관계도 쌓았다.


두 곳의 회사와 세 곳의 부서를 겪고서도 아직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그만 둠'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누군가에겐 엄청난 금수저, 복에 겨운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선택은 그저 내가 오래전부터 당연한 인생의 수순처럼 생각해 왔던 일이다.


우리는 회사를 왜 다닐까?


대부분의 이유가 돈이겠고 나 또한 그 이유로 다녔지만,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회사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겐 첫 도전이리라. 누군가에겐 자신의 정체성, 누군가에겐 그 역할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던 존재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회사를 정류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잠시 거쳐가는 곳정도로 말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입시를 준비했던 학생 시절. 남들 따라 대학에 들어간 후 당연하다는 듯 회사에 들어간 나.


내 주관이라 할 만한 것을 세울 시기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채 그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들 따라 살다 보니 지금 위치에 와있다.


다행히도 회사라는 곳은 생각할 시간을 길게 주는 곳이었다.


회사라는 곳을 다니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얼 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고 싶은 사람인지.


처음으로 '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할까?


그렇게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해 갈 때쯤 회사가 나에게 바라는 역할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가를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시기가 왔을 때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을 책임질 만한 마음가짐이 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퇴직원을 냈다.


오늘은 퇴직 전 리프레시 연차를 낸 뒤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이다.


< 그림 설명 > 회사 졸업 학사모와 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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